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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_『한국의 중산층』 홍두승 지음| 서울대출판부 刊| 192쪽| 2005
논쟁서평_『한국의 중산층』 홍두승 지음| 서울대출판부 刊| 192쪽| 2005
  • 신광영 중앙대
  • 승인 2005.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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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무엇을 분석했는가"

사회학은 복합적인 사회현실을 분석적 개념을 통해 논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학문이다. 사회현실에 내재된 논리인 사회적 논리(social logics)를 찾아내기 위해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개념을 사용하고, 그것을 통해 사회 현상을 설명하고자 한다. 즉 일상적인 용어가 아닌 분석적 개념을 통해, 그리고 일상적인 방법이 아닌 수년간의 교육을 통해 습득된 분석 방법으로 일상적인 사회현실을 분석하고자 한다.

최근에 출간된 ‘한국의 중산층’은 이러한 사회학적 분석과는 다른 접근을 취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하나는 ‘중산층’이라는 비사회과학적 용어의 실체를 탐구했다는 점이다. 사회과학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용어가 아니라 저널리스트들에 의해서 먼저 사용된 용어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개념과 이론의 확산 과정과는 반대의 과정을 보여준 책이다. 다른 하나는 계급집단으로서의 ‘중간계급’과 생활양식과 명예에 기초한 지위집단으로서의 ‘중산층’을 구분하고 이에 대한 사회학적 실체를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중간계급을 다루는 1부와 지위집단으로서의 중산층을 다루는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중간계급이론의 연원과 발전, 중간계급분류와 중간계급의 내부구성에 관한 논의로 이뤄졌다. 흥미로운 부분은 중간계급분류 비교에 관한 부분으로 라이트의 초기 계급분류, 골드소프의 계급분류, 홍두승의 계급분류를 모형을 비교하고 있다. 이것은 중간계급에 한정된 비교는 아니며, 전체적인 계급분류 모형을 비교한 것이다. 현재 서구 사회학계 계급론에서 중심적인 이론가인 라이트와 골드소프의 계급분류를 자신의 계급분류와 비교하고 있다는 점은 사회학 이론의 토착화 시도라는 관점에서 바람직한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계급분류의 타당성에 관한 논의가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면 더 흥미로운 논의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2부는 중산층 판별기준과 범위, 중산층 귀속의식과 이념성향과 생활양식을 다루고 있다. 중願?판별기준으로 가구주의 계급지위, 가구소득과 주택 소유 여부와 본인의 교육 정도 등 네 가지 기준을 사용해 가구를 중산층, 주변적 중산층과 비중산층으로 구분했다. 중산층의 범위는 서울의 경우 75.9%가 중산층(중산층+주변적 중산층)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중산층은 내부적으로 이질적이고, 중산층의 의식은 “비판적이고 진보적이지만, 행동에는 소극적”(132쪽)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중산층은 이해관계와 관련된 영역에서는 매우 적극적이며, 내적 결속도 강하게 이루어지고 때로 집단행동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주장해(164쪽), 전체적으로 이 책에서 제시된 중산층의 이념성향은 그다지 분명하지는 않다. 그것은 중산층이 내부적으로 대단히 이질적이기 때문이며 또한 이념 성향은 변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욱 진전될 중산층에 관한 논의를 위해, 세 가지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여기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이 개념적인 혼란을 낳고 있다. 먼저 ‘중산층’과 ‘중간계층’이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책의 1부에서는 “중간계층을 계급론적으로 접근”하고, 2부에서는 “중간계층을 계층론적”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중간계층을 ‘중산층’과 같은 지위집단으로 보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또한 계급별 귀속계층으로 ‘중간층’과 계층별 귀속계층으로 ‘중층’ 등의 용어를 구분해 사용하고 있어서, 계급론적 접근과 계층론적 접근의 구분이 불분명해지고 있다. 중간계층과 중산층 혹은 중층을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하는 경우 굳이 저널리즘적인 용어인 중산층이라는 용어를 사회학적인 논의에 사용할 필요 자체가 없어진다. 반대로 두 용어가 서로 다른 개념으로 사용된다면, 두 용어 사이의 관계가 논의돼야 한다. 저자가 주하는 것처럼,  “‘중산층’은 ‘중간계급’도 아니고, ‘중간소득계층’도 아닌, 그러면서도 이들이 속성을 함께 아우르는 우리나라의 대중적 용어”라면(17쪽), 대중적 용어를 사회학적 분석에 사용하기보다는 사회학적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실제 분석에서 중산층과 비중산층의 경계가 생활양식과 명예에 근거하기 보다는 계급적 지위, 임금소득, 자산(주택)과 교육수준에 근거하고 있어서(96~100쪽), 개념적인 논의와 경험적인 분석상의 불일치가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경험적인 분석에서 편의상 있을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지만, 이 책에서 구분하고 있는 중간계급과 중산층이 구분이 모호해질 수 있다. 

세 번째로 설문 조사를 통한 의식연구에서 등장하는 문제는 ‘문화적인 속성’이 설문조사자와 피조사자간에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욘 엘스터가 자기기만(self-deception)이라고 부른 것으로 중간층이 아니더라도 중간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을 덜 불행하게 생각하게 하려는 인지불일치 해소과정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 “보통 정도로 산다” 혹은 “중간 정도로 산다”라고 답하는 것은 이러한 심리적 과정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대부분의 유럽 사회들에서 중간계급 정체성이 50%를 넘지 않는 이유는 바로 문화적인 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중산층’은 실체가 불분명한 ‘중산층’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향후 유사한 연구의 주춧돌이 될 것이다. 또한 동시에 이 책은 ‘중산층’이라는 용어를 사회과학자들이 계속 사용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도 한 셈이다.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중산층이라는 용어가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을 뭉뚱그려 지칭하는 막연한 저널리즘 언어라는 사실이 더욱 구체적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신광영 / 중앙대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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