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4 21:40 (수)
화제의 책: 『호응린의 역대 한시 비평』(호응린 지음, 기태완 역주, 성균관대출판부, 1152쪽
화제의 책: 『호응린의 역대 한시 비평』(호응린 지음, 기태완 역주, 성균관대출판부, 1152쪽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5.04.2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계 최초로 완역...정밀한 고증과 적확한 품평

중국 宋代에 엄우의 ‘창랑시화’가 있었다면, 명대에는 호응린의 ‘時藪’가 있었다. 이 둘은 과거 양나라 때 종영의 ‘시품’이나 당나라 사공동의 ‘이십사시품’과 달리 독자적인 體裁를 세운 시평론 전문 저술로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호응린의 ‘시수’는 그간 문인학자들에 의해 중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동양삼국에서 완역이 시도된 바가 없었다. 그런데 이 저작이 국내에서 공동번역으로 드디어 빛을 보게 됐다. 일본에서도 아직 10% 정도를 選譯한 책이 있을 뿐이고, 중국의 경우 표점본을 간행했을 뿐 현대적 주석이나 白話譯이 시도된 바가 없다. 이번 번역본은 4년에 걸쳐 진행된 작업으로 1천5백77항목 전체를 완역했을 뿐만 아니라, 5종의 판본을 상호 교감하고 인용된 시마다 상세한 주석을 붙였다.

호응린이란 인물은 5살 때부터 글을 외우기 시작해 곧 시의 대구를 지었다. 9살 때 고문상서, 주역, 시경, 장자, 열자 등의 서책과 굴원·사마상여·사마천·두보 등의 시문을 섭렵하는 등 어려서부터 시에 명민했다.

이후 만력 4년에 향시에 합격해 擧人이 된 이후 회시에는 낙방하였고 평생 관직에는 진출하지 못한채 왕사정의 詩社에 적극 참여하는 등 문인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또한 4만여 권에 달하는 장서를 쌓아두고 독서와 저술로 평생을 보냈다. 호응린이 사서에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은 순전히 친구를 잘 둔 덕분이지만, 아무튼 그의 저작은 역대의 전적을 폭넓게 참조해, 고증이 정밀하고 품평이 적확하다는 정평이 나 있다. ‘시수’는 조선후기에 목판본으로 간행돼 널리 읽히기도 했다. 

‘시수’의 체재는 내편 6권, 외편 6권, 잡편 6권, 속편 2권으로 구성된다. 내편은 시체별로 비평을 가한 시학개론이고, 외편은 주대의 시부터 송대의 시까지 시대별로 시의 특징을 논한 詩史이다. ‘잡편’은 내편·외편에 대한 보유이고, 속편은 당대 명나라의 시와 시인에 대한 평론으로 구성돼 있다. 또 각권의 첫 1, 2조는 개론에 해당하고, 이하 각 조는 그것을 실증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

서술방식은 근본적으로 당시 전후칠자의 한위와 성당의 시를 중시하는 기풍 위에 서 있다. 그러나 호응린은 “法과 悟, 이것은 모두 千古 詞場의 대관건이다. 그런데 이 두가지는 한쪽으로 치우칠 수 없다”라며 ‘법’과 ‘오’의 조화를 꾀했다. 또한 시의 바른 격조를 중요시하면서도 시대마다의 變調의 가치를 적극 인정하고 있다. 즉 그는 詩體를 구분해 격조를 살폈고, 시대를 구분해 그 변화를 논했던 것이다.

호응린의 ‘시수’가 중국에서 처음 간행된 때는 1590년이다. 이로부터 불과 30여년만에 조선에서 ‘學時準的’의 중요한 지침이 되었음을 볼 때, 조선후기 시단에 미친 영향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며, 오늘날 연구자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연구서일 것이다.

특히 이번 역주본은 주석뿐 아니라, 언급된 작품 전체를 제시하고 있어 연구자들과 한시를 공부하는 초학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