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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비평 특집: (4)좋은 고전번역의 특징
고전비평 특집: (4)좋은 고전번역의 특징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5.04.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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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학 철학 겸전 필수..."공동작업으로 재해석한다"

고전읽기에 있어 어떤 고전을 읽을 것인가 만큼이나 사람들을 고민에 빠뜨리는 것이 누구의 번역본을 읽을 것인가이다. 현실적으로 고전번역이란 작업이 너무 수고로운 까닭에 완역했다는 자체만으로 치하받기도 하지만, 그러나 잘못된 번역본은 고전읽기를 가로막는 제1의 장애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번역자마다 고유의 특성이 있고, 어떤 점을 강조해서 번역하느냐에 따라서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고전번역의 유형을 대강이라도 익혀두고 그 기준에 따라 골라서 읽을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도 중요
현재 유통되고 있는 동서양 철학, 문학, 역사 등의 고전번역서들은 좋은 번역의 조건을 얼마나 갖추고 있을까. 우선 그리스 고전문학 쪽에선 20여전 전부터 ‘독불장군’으로 희랍 원전번역을 해온 천병희 前 단국대 교수를 먼저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천 교수는 최근 펴낸 ‘변신이야기’에서부터 ‘그리스신화’, ‘일리아스’, ‘아이네이스’ 등 십수 권의 그리스 비극이야기들을 우리말로 옮겨왔다. 그는 좋은 번역의 선결조건으로 꼽히는 ‘원전 충실’을 만족시키고 있다. 장영란 한국외대 연구교수(서양고대철학)는 “그리스문학은 특히 서사시가 많아 중역본일 경우 오류를 피할 수 없다”라며, “천 교수의 번역이 있어서 한국 독자들은 그리스 문맹의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라고 평한다.

그러나 그리스로마 신화는 원래 재미있게 읽는 이야기다. 원문에 충실하다보니 “대학생 강독수업에 읽기에도 어렵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장영란 교수는 “문장이 딱딱해 전공자들 외엔 읽기 쉽지 않고, 1세대 번역가이다보니 한자어가 많다”라며 아쉬움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전문번역가 이윤기 씨의 번역본들이 “술술 잘 읽힌다”라는 평가를 받긴 하지만, 완역도 아니고 전문성도 떨어져 좋은 번역의 예로 꼽긴 어려울 듯하다. 천 교수의 번역본에 대해서는 그 선구적 업적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워낙 강해서 학계는 비평적 코멘트를 아끼는 편이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오래 연구한 이상섭 연세대 명예교수는 “천 교수의 문학관이 나와는 정반대라서 그의 번역을 참고하지 않았다”라고 공언한 바도 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딱딱하고 부드럽고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그리스 철학 중에선 가장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간 게 플라톤의 ‘국가’(서광사 刊)일 것이다. ‘국가’의 대표 번역주자는 박종현 前 성균관대 교수다. 역시 원문번역의 장점을 갖췄지만 김귀룡 충북대 교수(서양고대철학)는 “박종현 번역본에서 희랍어와 한국어의 언어적 차이에서 오는 부자연스러움이 어쩔 수 없이 발생한다”라고 지적한다. 선배의 노고를 인정하지만 새롭게 번역의 필요성이 제기되어서인지, 지금 플라톤전집 번역에 새롭게 도전장을 내민 후학들이 이정호 방송통신대 교수가 이끄는 ‘정암학당’이란 곳에 모여 있다. 눈길을 끄는 건 공동번역이라는 점. 이들은 “개인번역에선 자칫 묻히기 쉬운 논쟁거리들을 토론을 통해 명확히 해가면서 그 결과를 논문으로도 발표한다”라며 공동번역을 강조한다. 이들의 ‘국가’ 번역은 “기존의 번역본의 내용과 판이하게 다른 혁명적 내용을 담게 될 것”이라고 하니 일단 그 결과물을 기다려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중국철학·문학 쪽은 서양보다 번역의 인프라가 훨씬 약하다. 1990년대가 이후에야 이들 학문분야가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흔히 좋은 고전으로 추천되는 왕양명의 ‘전습록’은 그래도 다양한 번역본이 나와 있다. 안길환(명문당 刊), 정차근(평민사 刊), 정인재·한정길(청계 刊), 김학주(명문당 刊, 신완역본), 송하경의 것이 있다. 각각의 번역이 일장일단을 갖고 있겠지만, 김세정 충남대 교수(동양철학)는 “완역서로는 정인재·한정길의 것이 유일하고, 특히 철학적 의미를 함께 잘 짚고 있다”라고 평한다.

한학자에 준하는 한학실력 뿐 아니라 철학적 지식까지 갖춰야 양명학과 주자학 가운데서 균형된 시각을 취할 수 있고, 그래야만 좋은 번역이 나온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그러나 정인재·한정길 번역본도 아쉬움은 남는다. 고전번역은 번역자가 상세한 주를 달아 이해를 돕는 것이 필수인데, 이들 번역본의 각주는 번역진들의 것이 아니라, 진영첩 전습록의 주를 그대로 번역해서 실었다는 것이다.

중국소설 중 4대 奇書라 하면 ‘삼국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가 꼽히고, 여기에 ‘홍루몽’과 ‘유림외사’가 보태지면 6대 기서가 된다. ‘삼국지’만큼이나 추천목록에 오르는 것이 ‘서유기’다. 이것의 완역본은 지난 2003년 임홍빈(문학과지성사 刊)의 것과, 지난해 서울대박사급 연구자들인 ‘서유기번역연구회’의 작업물(솔 刊)이 나왔다.

서경호 서울대 교수는 “임홍빈 교수의 번역은 내용에 충실을 기한 것으로, 주를 상세히 달아 당시의 한문들을 철저히 고증한 번역서다. 반면, 서울대연구진들의 작업은 단순한 내용전달을 넘어서 운문의 리듬을 강조하는 등 복합장르의 특징을 살리는 데 주안점을 뒀다”라며 두 번역간의 차이점을 평가한다. ‘서유기’는 일반소설과 달리 운문과 구어체가 많은데 두 번역진들이 주안점을 달리한 것이다. ‘좋은 고전번역의 조건’에 대해 서경호 교수는 “문학작품의 특성에 따라 초점을 달리해야 한다”라며, 이를테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나 ‘페이터의 산문’ 같은 것들은 낭독형으로 운율과 리듬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고, 19세기 소설들은 내용전달을 충실히 해서 격동하는 시대와 그 속의 삶을 파악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최용철 고려대 교수는 서울대 연구진의 번역이 “이해하기 쉬운 한글말로 번역해 신선함을 높이 살만하다”라고 말하면서도 “어투에서 번역진들간에 조정하다가 미처 없애지 못한 흔적이 남아 어색하다”라며 자칫 공동번역이 원저의 흐름이나 톤을 깨뜨려 문학성을 훼손할 가능성도 있음을  지적한다.

‘금병매’의 원전번역은 강태권 국민대 교수의 작업(솔 刊)을 꼽을 수 있다. ‘금병매’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어렵기도 소문난 책이다. 홍상훈 서울대 강사는 “냉정하게 말하자면 상당한 오역이 있다”라고 말하는데, 특히 인용된 시어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반면 최용철 교수는 “시 전공자들이 보면 시어들의 정확성을 갖고 문제삼을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것이 강태권 번역본의 공적에 흠을 내지 못한다”라며 “오역가능성은 어느 번역에나 있을 수 있”음을 강조한다.

번역에서 ‘등가성’의 원칙을 지나치게 적용시키는 것도 문제가 있다. 그보다는 ‘동적 등가성’ 같은 융통성 있는 범주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최 교수는 좋은 번역의 조건으로 그보다도 ‘현대성’을 든다. 즉 바뀌는 언어환경과 지식환경에 따라 항상 새로운 독자층이 형성되기 때문에, “10년 혹은 15~20년에 한번이라도 항상 새로운 번역본이 나와줘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괴테의 ‘파우스트’ 역시 불멸의 고전이다. 국내에 김정진(신원문화사 刊), 박환덕(서울대출판부 刊), 정서웅(민음사 刊), 강두식(서울대출판부 刊), 이인웅(학원사 刊)의 번역본 등 여러 종에 달한다. 그 가운데 이인웅과 정서웅 번역본이 전문가들로부터 좋은 번역본으로 추천된다. 정서웅본의 특징은 무엇보다 가독성이 뛰어나다는 점. 역자가 희곡을 썼던 경험이 있고, 한국말을 유려하게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파우스트’는 전부 시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말의 구사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작품의 특성 돋보이게 만드는 게 중요
그러나 이인웅본은 정확성 면에서 더 낫다는 평가를 얻는다. 즉 전문연구자들이 보기엔 더 나을 수 있다는 것. 안삼환 서울대 교수(독문학)는 “괴테문학에 한정해서 본다면, 국내에선 아직까지 괴테가 소개되고, 많이 읽혀야만 하는 상황이므로, 현재로선 가독성 있는 번역이 중요하다고 본다”라고 말한다. 즉 각각의 번역적 특징이 있지만, 아직 한국현실은 괴테에 대한 철저한 해석보다는 그것이 문학으로서 향유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에 좋은 번역의 길이 연결된다는 시각이다. 이처럼 좋은 번역의 기준은 복합적이다.

앙드레 르페브르에 따르면, 오늘날 번역에서 가장 큰 문제는 첫째 그 언어와, 둘째 그 번역텍스트가 전제로 하는 담론의 세계, 셋째 그것이 암묵적으로 따르는 이론, 저자와 번역가가 상대한 이념 등이다. 좋은 번역에 대한 검토는 이 범주들을 통과하면서 이뤄질 필요가 있어보인다. 번역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평가하는 안목도 중요하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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