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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비평 특집: (3) 동양고전 읽기
고전비평 특집: (3) 동양고전 읽기
  • 김시천 숭실대
  • 승인 2005.04.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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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닫힌 경전에서 열린 텍스트로

김시천 / 숭실대·동양철학

어느 시대, 어느 문화권의 고전이든 고전은 고전이기에 누구에게나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생각은 누구나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 동의의 정도는 사람에 따라 커다란 격차가 있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 전통 사회에서 비교할 수 없는 권위를 누려 온 "논어"를 읽는다고 하자. 철학을 전공하는 학자와 역사를 전공하는 학자에게 "논어"는 동일한 의미와 위상을 갖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교인들의 입에서 나온 "공자님"

게다가 기독교인이 개인적인 관심에서 "논어"를 읽는 것과 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읽는 "논어"의 의미와 가치는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언젠가 기독교 관련 야간대학원에 강의를 나간 적이 있다. 수강자들은 대개가 직장인이면서 교회에서 시무하는 독실한 신앙인이 대부분이었다. 처음 마주한 자리에서 사람들은 모두 설교를 하는데 편리하도록, 유교나 도교, 무속 신앙 등이 이단으로서 갖는 문제점을 중심으로 요약해 달라고 주문하였다.

요구에 부응할 수가 없었기에, 나는 전통을 이단이라고 비판하기 이전에 그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먼저 살피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논어"를 읽을 것을 제안하였다. 조금 강압적이었지만 끝내 설득하였고, 한 학기 내내 ?학이?(學而)편의 반 정도를 읽은 것으로 기억한다. 한 학기 내내 강의자가 끼어들 틈도 없이 수강자들 사이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즉 "논어"에 비추어 교회 조직, 기독교 신앙인의 자세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논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루 아침에 신세 뒤바뀐 장자

의외의 반응에 당황하면서도 강사로서가 아니라 토론의 수동적 진행자 역할만을 수행하며 한 학기 내내 즐거웠다. 수강생들이 나보다 더 "논어"를 통해 재미있게 비판적으로 사색하였기 때문이다. 강의가 끝날 무렵 수강생들은 공자가 아닌 공자님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유교를 신앙하는 것도 아니고, 공자를 성인으로 존경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다만 "논어"를 통해 자신들이 처한 문제를 되돌아보게 하는 일종의 자극이 되었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의 태도가 변하자 "논어"는 금기시되는 이단의 책에서 삶의 지침이 되는 유익한 고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현상은 전통 동양고전이 20세기 내내 겪어야 했던 여러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아마 "장자"처럼 극단적인 평가가 되는 상황을 연출한 고전도 드물 것이다. 특히 19-20세기 서세동점의 상황과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으로 어수선하였던 상황에서 "장자"는 뜻하지 않은 운명에 부딪혔고, 장주가 다시 태어났다면 억울할 정도의 일이 벌어졌다.

위진(魏晉) 시대 이후 중국과 조선에서 "장자"는 현실에 상처받은 지식인들에게 가장 위안을 주는 책이었다. 정치적 좌절을 겪은 사람들에게 "장자"는 현실에 대한 조소, 정신의 초월, 내면으로의 침잠을 가능케 하였던 이른바 머리맡의 책이었다. 그랬던 "장자"가 20세기 중반이후 중국에서는 이른바 패배자의 철학의 전형으로 비쳐졌다. 어떤 학자는 "장자"가 중국 민족의 패배를 낳은 <아Q정신>의 원천이라고 지목하며 비판하였다. 또 어떤 이는 "장자"가 "노자"와 더불어 중국 유물론의 효시라고 극찬하기도 하였다.

유신정권에 대한 풍자로 이용

읽는 사람의 상황이 바뀌자 읽혀지는 "장자" 또한 예전과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중국과는 정반대의 해석이 주류를 차지한다. 송 나라의 임희일의 해석을 통해 "장자"를 수용한 조선에서는, 이단이지만 나름의 일정한 의미를 갖는 책으로 인정받았고 더 나아가 한원진 같은 이는 또 다른 방식으로 유학의 논의를 뒷받침하는 책으로 평가하기도 하였다. 일정부분 공자의 정신을 계승하였다는 것이다.

유신 독재 시절 함석헌은 "장자"의 수많은 조소와 풍자를 이용하면서 박정희 정권을 야유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무력 사용을 통한 전쟁 반대를 외치는 "노자"를 인용하며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고 갈파하는가 하면, 정치적 간섭없는 자유에의 외침으로 "장자"의 수많은 구절들이 이용되기도 하였다. 함석헌이 과학을 긍정하였던 퀘이커로서 도가 사상과 현대 과학의 친화성, 다원주의자로서 기독교와 동양 사상의 화해를 외친 것은 오늘날 우리의 도가 이해의 터닦이에 해당하는 작업이었다.

이 두 이야기 속에서 만나는 고전은, 어떤 고전의 권위에 의한 것도 해설자의 독창성에 의한 것도 아니다. "논어"나 "장자"가 그 책을 읽는 사람의 현실의 어떤 면과 조응하거나, 또는 그 책을 통해 현실의 어떤 면을 드러내주는 일정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기에 빚어진 현상이다. 달리 말해 어떤 고전이든 그것이 고전이라고 불려왔기 때문에 우리가 반드시 읽어야 할 필요성은 없다는 것이다. 영원한 고전이란 있을 수 없다.

고전의 경전화가 탈고전화의 주범

"논어"는 공자 사후에 편찬된 후부터 지금까지 내내 최고의 고전이었던 것은 아니다. 한대에는 오경(五經)이 가장 중요했고, 위진남북조 때에는 삼현경(三玄經)이, 남송 이후에는 사서(四書)가 중시되었다는 상식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또한 이와같은 논의는 철학 전공자가 아닌 경우에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다른 수많은 역사 고전이 들어갈 수도 있고, 두보나 이백과 같은 시인의 문집이 들어갈 수 있다. 또 일반 독서계에서는 소설 "삼국지"만한 고전도 없다.

오늘날 우리는 문인(文人)이 지배하던 전통 사회에 살고 있지 않다. "논어"나 "장자"와 같이 고전 한문에 능통해야만 읽을 수 있는, 지식과 신분이 일치하는 사회가 아니다. 동양의 古典은 영원한 이상적 전범이란 의미의 고전이기보다 옛(古) 책(典) 정도의 의미 밖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 각 기관에서 추천하는 고전 도서 목록, 대학에서 읽어야 하는 교양 도서 목록 속에 나열되는 것이 고전이지, 우리의 삶의 전범으로 누구에게나 유의미한 것은 아니란 말이다.

동양 고전이 단순한 박물관식 나열이거나 이른바 추천도서라는 명목으로 존재하는 까닭은, 고전이 읽기에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논어","맹자", "노자", "장자", "주역" 등등 이른바 고전들은 고전이기에 당연히 읽어야 하는 그 무엇이라고 말한다. 도대체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우리는 고전이니까 라는 답 이외에는 별다른 이유를 대지 못한다. 고전이니까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자들이 추천하는 고전과 독자가 보는 고전 또한 다르다. 학자들은 누구나 자신이 전공한 고전이 최고의 고전이라 찬양한다. 그래서 "노자"는 여성, 환경, 소수자, 전쟁 등 현대 문명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있는 듯이 이야기되고, "논어"는 현대인의 도덕적 해이와 파탄, 범죄와 황금만능주의 등을 치유할 묘책이 들어있는 듯이 이야기 된다. 이른바 전공주의나 원전중심주의는 특정 사상이나 한문의 신비 속에서 모든 답을 정당화하려 한다.

"이게 바로 내 생각이군"

바로 이런 문제들이 동양의 고전을 탈고전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인된 고전 목록들, 즉 ‘경전’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호흡할 수 있는 ‘텍스트’들이다. 고전이 모든 문제에 대해 답을 갖고 있다는 태도보다, 우리의 문제를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이 어느 텍스트에 들어있는가라는 선별력이 더욱 필요하다. 그 거울을 동양 고전 속에서 찾을 수 없다면 서양의 것이어도 무방하다. 아마 우리의 독자들이 찾고 있는 고전이란, “정말 훌륭한 말씀이야!”라는 수긍보다는 “이게 바로 내 생각이야!”하는 탄성을 발할 수 있는 책이 아닐까. 고전은 그런 의미에서 전해져 온 경전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텍스트일 뿐이다.

필자는 숭실대에서 ‘‘노자’의 양생론적 해석과 의리론적 해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착종된 근대 : 서구의 동양철학 연구서 번역에 나타난 근대와 전근대의 이중주’ 등의 논문이, ‘철학에서 이야기로-우리 시대의 노장 읽기’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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