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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념사: 우리는 스승으로 당당한가
창간기념사: 우리는 스승으로 당당한가
  • 이영수 발행인
  • 승인 2005.04.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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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의 화사함으로 날아갈 듯 한 여의도를 지나면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던 한 시인의 통찰이 얼마나 오묘한 것인가 깨닫게 됩니다. 13년 전 1992년 4월, 교수신문을 창간하고 초창기를 견뎌내는 일은, 엘리어트(T.S. Eliot) 읊었듯이 “죽은 대지에서 라일락꽃을 피워내는 일”이었습니다. 신문제작 경험도 없고 재정적으로 무능한 교수들이 오직 ‘옳은 의기’하나만으로 시작한 일이니 어찌 ‘끔찍한 일’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나마 많은 교수님들과 대학을 비롯하여 기업, 단체, 따뜻한 개인들의 도움이 ‘봄비’가 되어 대지를 적셔주었기 때문에 그나마 제 몸 하나 건사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간 교수사회도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규모면에서 2배가량 확대되었고 각종 평가제도가 도입되어 정말 ‘좋았던 시절’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제 우리 교수들도 시장의 장인처럼 시간에 맞춰 물건을 생산해야 하고, 그러지 못하면 저자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대학은 성장하고 있는 것 같지만, 교수의 신분과 역할은 오히려 위협받고 거세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마 가장 위협적인 상황은 ‘대학의 학원화’라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대학에서 졸업하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인재를 키우라고 닥달하고, 교육당국은 졸업생들의 취업통계를 전산화하여 공개하겠다고 협박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목도하며 다시 한번 ‘대학이 무엇이며, 대학교육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대학교육이 수많은 업종과 기업의 요구에 따라 좌우될 수는 없음에도 ‘시장의 논리’가 우리 사회에 팽배하고 있으며 심지어 일부 대학에서 별다른 고민 없이 시장의 요구에 추종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 교수사회가 ‘스스로 반성하고 성실해지는 일’(反身而誠)에 태만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정말 우리의 공부와 삶을 교수로써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그리하여 학생들의 시간과 땀에 부끄럽지 않는 선생인가. 입시경쟁에 치이고 취업전쟁에 내몰린 학생들이 앎에 대한 열정으로 깨달음의 희열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는가. 그들이 인생의 갈림길에 방황할 때, 인생의 선배로서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도록 행동하고 있는가. 만약 교수가 강단에 서는 일이 밥벌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면 우리는 학생들에게 무슨 말로 스승의 권위를 요구할 수 있는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얼마만큼 당당할 수 있을까요. 우리 교수신문이 이러한 반성과 고민의 계기를 마련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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