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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하나의 역사, 두 개의 역사학』(정두희 지음, 소나무刊)·『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
[책들의 풍경]『하나의 역사, 두 개의 역사학』(정두희 지음, 소나무刊)·『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
  • 교수신문
  • 승인 2001.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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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30 15:39:19
권경우 / 문화평론가

역사는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 이야기는 결국 미래에 대한 밑그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도 역사를 제대로 인식할 때나 가능한 일이라는 점을 알게 되면 현실은 참으로 허망하다. 현재 진행중인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사태에 대한 국내의 반응에서 느낀 옅은 슬픔도, ‘일본 규탄’의 목소리가 높을수록 역사를 바로 세운다기보다는 ‘민족주의’에 갇힌 또 다른 왜곡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물며 남한과 북한처럼 하나의 역사가 둘로 이해되는 현실에서 ‘역사학’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

남북 한국사 개설서의 간극
그런 점에서 정두희 교수(서강대)의 ‘하나의 역사, 두 개의 역사학’은 지금 시대에 있어 역사학의 존재방식을 근본적으로 묻고 있다. 저자는 지난 몇 년 동안 남북한에서 발간된 한국사 개설서들을 읽고 비교 검토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서로의 이해가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를 따져 분석했다. 그 결과는 남북 역사학계의 시각과 서술 내용이 너무나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흔히들 남북한은 오랜 역사를 공유했다고 말하지만, 저자의 결론은 남북한은 ‘역사’를 공유한 것이 아니라 단지 ‘과거’만을 공유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책의 1부에서는 개화기로부터 시작하는 근대적 역사학의 성과를 꼼꼼히 살폈다. 1899년 학부에서 편찬한 교과서 ‘大韓歷代史略’부터 1992년의 ‘한국역사’까지를 살피면서 그 의의와 한계를 짚어냈다. 이때 저자는 『한국사신론』의 이기백을 주목한다. 이기백은 민족주의와 내재적 발전론을 조화시켜 일제 식민주의사관을 극복하고 학자로서 자신의 개설서를 계속해서 개정했다는 점에서 그의 학자적 성실성이 귀감이 된다는 것이다. 2부에서는 북한 역사학의 성격을 여러 측면에서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북한에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역사학이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 체제에서는 역사란 단지 그들이 이룩했다고 믿는 하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었을 뿐이며, 그런 과정을 방해하는 국내외적인 위협에 대한 투쟁의 역사였을 뿐이다.”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3부에서 ‘남북한 역사학의 학문적 통합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러한 학문적 통합의 길은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이 말은 어떤 측면에서는 학문적 통합이라는 전제 자체가 하나의 환상일 뿐이다. 통합의 문제보다 선결 과제는 남북한 역사학에 있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섬세하고 정확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남과 북의 두 국가 체제는 동일한 과거에 대해 너무도 다른 역사 해석에 도달할 정도로 이질적이다. 모든 점에서 다르다면 남과 북의 두 국가가 추구하는 이상도, 이해 관계도 엄청나게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남북 문제에 관한 한, 가슴속에는 뜨거운 민족 동질성에 대한 확신을 품되, 냉철한 이성적 분별력을 가지고 임해야 한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확신하게 됐다.”1999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는 동독과 서독의 통일을 마지막 순간까지도 반대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서독의 자본주의 주도로 하는 흡수 통일의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그라스의 고독한 싸움은 ‘통일’ 담론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와 같은 감성적이고 낭만적인 이미지를 현실화하는 것이 그렇게 녹녹치 않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실 역사학은 본래 ‘하나’라기보다는 ‘여럿’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두 개를 넘어 여럿의 역사학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기꺼이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는 기억이며 동시에 기억과의 투쟁이다. 진실과 아픔을 기억하는 일은 필요하지만 왜곡된 사실을 밝혀내는 작업은 後人들의 또 다른 과제이다. 또한 후기자본주의 시대, 즉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고 소비대중문화의 물결이 넘실대는 이 때에 ‘역사’는 무엇이며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
특히 한 개인의 기억에 의지해서 ‘역사’를 새롭게 복원하려는 것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하지만 그 역도 가능하다. ‘국사’라는 이름의 공식적인 역사가 뒤틀려 있다면 바로 그 공백을 채울 수 있는 힘은 오히려 한 개인의 삶일 수밖에 없다. ‘역사는 남북을 묻지 않는다’는 바로 그러한 책이다. 책의 부제는 ‘격랑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살아온 노촌 이구영 선생의 팔십 년 이야기’. 노촌 선생과 감옥에서 인연을 맺은 신영복 교수(성공회대)는 “(노촌 선생님은) 역사를 과거의 화석 같은 존재로부터 깨워서 피가 통하고 숨결이 이는 살아 있는 실체로 복원하고 생환하게 한다”라고 대담 후기에서 적고 있다.
노촌 선생은 의병 정신, 항일, 계급 투쟁 등의 한국현대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조선 봉건 시대, 일제 식민지 시대, 해방후 건국 시대, 전쟁과 직후의 사회주의 시대, 22년간의 어두운 감옥생활, 신자유주의 시대를 횡단하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감옥에서 나온 후에 ‘이문학회’를 설립, 한문 및 전통 교육에 전념했고, 1993년에는 의병활동을 정리한 ‘湖西義兵事蹟’을 출간하기도 했다. 신영복 교수는 노촌 선생을 이렇게 말한다. “심원한 한학의 온축과 확고한 사관의 토대 위에 굳건히 서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선비의 기개로 해방 전후의 격동을 온몸으로 겪어 오신 분이다.”
생동하는 개인의 삶과 지평
이 책은 개인의 삶이 역사와 길항하는 순간들을 구어체로 생동감있게 펼쳐놓음으로써, 역사와 주체가 서로를 투영하는 역동적 방식을 서술하고 있다. 여전히 불구로 남아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그의 기억은 개인의 것이라기보다는 함께 걸어온 민중들의 것이며 나아가 역사 그 자체의 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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