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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의 ‘시민종교’에 대한 반성
역사, 한국의 ‘시민종교’에 대한 반성
  • 김성보
  • 승인 2021.09.02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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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인문학자라면 누구나 학문의 길에서 조울증을 겪기 마련이다. 때로는 자신이 몸담은 학문으로 세상의 이치를 다 밝히고 무너지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 것처럼 흥분하다가, 때로는 이런 학문을 왜 하나 하는 생각에 자조하게 된다. 당장에 이익이 되지 않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학문이니 그럴 만하다.

인문학의 한 축을 맡아온 역사 연구자들도 예외는 아닌데, 다만 이들에게는 울증보다 조증이 심한 편이다. 글쓴이는 조증이 많다가 나이가 들수록 울증이 높아지는 중이다. 나한테 역사를 왜 공부하느냐고 물으면 으레 근사한 답을 내놓고는 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한다”는 모범답안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기에 오늘의 문제를 파헤치고, 오늘을 잉태한 과거를 탐구한다”는 식의 답이다. 굳이 함석헌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국인들은 자신의 역사를 수난의 역사로 인식해왔다. 현재의 수난을 견뎌낼 수 있었던 데는 미래의 자식 세대에는 더 나은 세상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근현대 한국인에게 역사는 하나의 ‘시민종교’였다. 역사학계는 한국의 시민종교를 지키는 목회자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해왔으며, 이단자를 몰아내는 재판관의 역할까지 맡아왔다.

앞으로도 한국인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쉽게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랜 수난과 극복의 역사 속에 한국인들의 내면에는 열패감과 자부심이라는 모순적인 이중심리가 자리 잡았다. 이 이중심리는 치열한 세계 경쟁 속에서 한국인들을 단결하고 분발하게 만드는 동력으로 계속 작용할 터이다. 빈약한 자원과 협소한 국토에다가 분단국가로 나뉘어있는 한국이 갑자기 세계에서 1등을 할 리는 만무하니, 한국인들은 계속 현재를 비판하며 더 나은 미래를 꿈꾸어 가리라. 잊을 만하면 이웃 나라 일본에서 과거의 침략과 수탈을 부정하는 발언이 나와 심기를 건드리니, 제국주의 침략에 반대하는 비판적 역사의식은 쉽사리 약해지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이대로면 족한가? 이렇다면 한국에서 역사학은 본령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쓸모 있는 학문이라고 해도 좋은가?

지금 한국사회는 역사전쟁 중이다. 하나의 과거를 두고 전혀 다른 해석이 충돌한다. 식민지 지배, 분단, 전쟁, 산업화, 민주화 등 근현대의 역사 전체를 놓고 상반된 해석이 치열하게 대립한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통해 각자 자신이 처한 위치를 정당화하며 자신이 주도하는 미래만이 옳다고 주장한다.

역사학자의 한마디 발언, 한 편의 글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청중은 이제 찾기 힘들다. 자신의 귀에 거슬리면 내치고, 유용하면 선택적으로 수용할 뿐이다. 역사학자가 민족과 민중, 민주의 관점에서 역사 서술을 하면 그저 편향된 학자로 치부할 뿐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역사교과서의 국정화에 반대하다가 오랜 친구에게 용공 아니냐고 비난 받고, 절교하기도 했다. 근현대사 연구자만 난처한 상황이 아니다. 누구나 조선왕조실록 번역본을 인터넷으로 볼 수 있게 된 세상이 되면서, 역사학자는 역사 해석의 독점권을 상실했다. 이제 더 이상 이 땅의 역사학자들은 목회자도 재판관도 아니다. 실제로 이제 재판관 노릇은 그만 하는 게 어떠냐고 넌지시 조언해주는 다른 전공 학자들을 접한 적도 있다.

세상이 바뀐 탓인가, 아니면 역사학자들이 나태했던 탓인가? 세상이 바뀌었음은 탓할 바가 못 된다. 그만큼 세상이 민주화되어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고 정보 접근성이 놀랍게 확대되어 학문이 학자의 독점 영역이 아닌 세상이 되었으니, 이는 진보의 결과이다. 그럼 역사학자들이 나태한 탓인가? 적어도 나를 돌이켜보면 맞는 말이다. 과연 나는 어떠한 편견도 없이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해왔나? 그렇지 못하다. 글쓴이의 역사관은 여전히 1980~90년대의 민중사관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여전히 나한테 한국의 근현대사는 침략과 억압에 맞선 민중의 ‘저항사’이며, 한반도의 통일은 분단의 장기지속을 선호하는 외세와 국내 남북 정치권력에 맞설 때 비로소 이룩할 수 있는 역사적 과제이다.

그러나 이제 한 가지는 분명히 안다. 민족해방운동의 역사가 북한 권력의 초기 정당성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재의 장기지속을 뒷받침하는 권력 정당화의 도구로 악용되어 왔듯이, 이제 민주화 운동사도 어느 한쪽의 권력 정당화에 악용될 수 있는 수준까지 한국의 역사가 진전했다는 점이다.

이제 역사학자가 역사라는 시민종교에서 목회자와 재판관의 역할을 맡던 시대는 끝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 연구자로서 역사학의 본령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자문해보고자 한다. 과거가 현재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한, 역사학자는 그 모든–좌우,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정당화에 끊임없이 비판의 시선을 견지하며 그럴 힘이 없는 약자의 시선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일, 그것이 역사학의 본령이 아닐까? 그 본령에 충실하면 청중은 다시 돌아오리라 믿는다. 사실 돌이켜보면 오늘날 존경 받는 선학 역사학자들은 그 누구도 당대에 호의호식한 적은 없으며 치열하게 온갖 비아냥을 무시하며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분들이 아닌가? 감히 그들과 동렬에 설 수 없기에 역사학자라는 호칭조차 부담되어 그저 역사 연구자라고 자처하는 한 조울증 환자의 자기 반성문이다.

 

 

김성보

연세대 국학연구원 원장

연세대 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역사비평 편집주간,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운영위원을 역임 중이며 『남북한 경제구조의 기원과 전개』(역사비평사, 2000), 『북한의 역사1』(역사비평사, 2011) 등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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