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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터뷰]『세계관 충돌과 한말 외교사, 1866∼1882』(문학과지성사 刊) 상재한 김용구 서울대 교수
[저자인터뷰]『세계관 충돌과 한말 외교사, 1866∼1882』(문학과지성사 刊) 상재한 김용구 서울대 교수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1.05.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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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30 15:34:42

근래 복잡다기하게 전개되고 있는 한-미관계나 한-일관계를 보면, ‘외교’라는 것은 광범위한 정치 행위임이 분명하다. 역사는 언제나 반면교사의 역할을 하게 마련이며, 이런 점에서 과거로부터 귀중한 경험을 얻어내게 된다. 최근 김용구 서울대 교수(외교학과)가 상재한 ‘세계관 충돌과 한말 외교사, 1866∼1882’(문학과지성사刊)도 이런 지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김교수는 한말의 숨가쁜 외교사를 천착하면서, 당대의 ‘세계관 충돌’ 결과 오늘갈까지 이어지는 대외 인식 태도의 ‘변경 사고 방식’이 출현한다고 지적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이 책에 이어 『양절체제와 한말 외교사, 1882~1892』·『‘세계’외교사와 한말외교사, 1892~1905』를 계획중이다. 김교수를 지면으로 초대했다.

△이번 저작에서 ‘한말 외교사’에 눈을 돌리게된 계기랄까, 학문적 동기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또 현재 국내 학계의 외교사 연구 현황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해주시지요.
“외교사는 외교문제에 대한 연대기가 아닙니다. 세계외교사는 근본적으로 문명들 사이의 충돌의 역사라는 것이 제 기본 관점입니다. 여러 문명권들 속에는 그에 공통된 ‘세계관’, 또는 ‘대외인식 태도’가 존재합니다. 따라서 세계외교사는 이런 세계관들의 충돌 역사입니다. 그리고 그런 세계관은 열강들의 未刊, 旣刊 외교문서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들 문서들을 분석하면 그들의 세계관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외교사 연구의 기본 자료는 열강들의 외교문서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초적인 명제가 현재 한국 외교사 학계에서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 의심입니다. 세계외교사와 한말외교사를 어떻게 접목시켜야 하는지도 아직 연구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세계 외교사를 문명권 충돌의 역사로 파악하고 계십니다. 헌팅턴류의 문명충돌론을 연상시켜주는 발상인데, 세계 외교사를 ‘문명권 충돌의 역사’로 설정했을 때, 이러한 접근이 과연 의미 있을까요.
“헌팅턴의 견해에 대한 비판은 제 1장에서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세계외교사를 문명권 충돌의 입장에서 볼 때 비로소 그 동안 세계외교사 서술이 지닌 ‘유럽중심주의’ 사관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말외교사의 정확한 흐름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열강의 외교문서는 단순히 글자들이 적혀있는 문건들이 아닙니다. 그 열강들의 대외인식 태도를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문서를 분석하는 데에는 보는 사람들의 일정한 사관이 필요합니다. 그 사관을 문명권의 충돌에 입각해야 된다는 것이 제 입장입니다.”

 

△흥미롭게도 선생님께서는 이번 작업 내내 ‘유럽 중심주의’에 대한 불편한 심정을 지니신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외교사’를 ‘열강의 외교 문서를 분석하는 학문’으로 규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유럽중심주의에서 탈피한 ‘주체적’ 외교사란 과연 가능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심각한 질문입니다. 그 동안의 세계외교사 연구의 주류는 유럽의 세계팽창 과정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들 외교문서가 담고 있는 다른 문명권들에 대한 천대, 멸시를 분석하는 데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유럽중심주의에 입각한 그들 문서 해석을 먼저 타파해야 됩니다. 이런 타파 위에 그들의 한반도에 대한 역사적인 인식태도를 재구성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의 전편을 통해 선생님께서는 각각의 문명권은 그에 특유한 ‘정신구조’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우리의 ‘대외 인식 태도’는 禮와 公法의 충돌이 시작된 1860년대 이후 한반도에서 형성된 세계관에 입각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를 가리켜 ‘오지 사고 방식(hinterland thinking)또는 ‘변경 사고 방식(border thinking)’이라 명명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신구조’는 수 백년 동안 지속됩니다. 1800년부터 싹트기 시작한 오지 사고방식―그 이전에는 세계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고도의 정신적인 사고 방식이 오래 지속되었습니다.―이 아직도 존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부정적인 측면이 지양되기는커녕 더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저는 이런 정신적인 구조를 역사적인 전염병이라고도 불렀습니다.”

 

△21세기 국제사회의 문제를 19세기의 문제에서 역으로 풀어내고 계신 것 같습니다. 예컨대 ‘근대 국가’의 형성과 같은 문제 말입니다. 과연 ‘근대 국민 국가’를 형성한다면, 우리가 걸어온 고통스러운 냉전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지요. 거기서부터 21세기 탈근대 과제를 수행할 수 있다는 뜻입니까.
“어려운 질문이고 제가 몇 년 전 일본 근대사 학회에서 발표했을 때에도 같은 질문이 나왔습니다. 해방 후 근대국가를 형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독립된 행위자(acto)r로 활동하지 못하여 더욱 오지 사고 방식이 심화되었습니다. 하나의 행위자가 되어 세계의 냉전시대를 살아오지 못했습니다.
통일이 되어도 우리 주변의 냉전구조가 한 동안 종식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의 행위자가 되더라도 스스로 주변의 냉전구조를 해소시켜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과정을 밟을 때 세계는 새로운 세계정치 구조 속에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고민은 3세기에 걸쳐있습니다. 이런 고민을 어떻게 해결해야 되느냐 하는 것이 한국 지성인들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최익현 기자 ihchoi@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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