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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장춘익 교수를 추모하다...여성주의 교육실천을 묻는 학술대회 열리다
故장춘익 교수를 추모하다...여성주의 교육실천을 묻는 학술대회 열리다
  • 탁선미
  • 승인 2021.08.24 11: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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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대학의 안과 밖 – 어떤 여성주의교육 Feminist Pedagogy인가?’ 학술발표회 열려

故장춘익 교수(1959∼2021)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2006)과 루만의 『사회의 사회』(2012)를 번역한 사회철학자로 학계와 일반독자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가 춘천의 한림대학 철학과에서 20여 년간 ‘여성주의철학’을 묵묵히 강의해온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여성주의교육의 성과와 의미를 객관화하기 위해 결성된 ‘장춘익교수 여성주의철학 교육실천연구회(이하 연구회)’는 지난 20일(금) 오후 그간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전문가들과 토론하는 온라인 학술대회 ‘대학의 안과 밖 – 어떤 여성주의교육 Feminist Pedagogy인가?’를 개최했다. “페미니즘은 단순히 성별 이해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로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포괄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사회정의와 공동체정신의 문제”라고 연구회는 밝혔다. 

이젠 고인이 된 장춘익 교수는 여성주의교육과 철학을 실천했다. 사진=신혜선 작가

주제발표에 나선 필자는 1990년대 후반 개화한 여성학이 그동안 우리 사회에 심층적 가치변화를 불러오지 못한 이유를 밝히기 위해 ‘여성주의교육’ 자체를 다시 물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故장춘익 한림대 교수(철학과)의 「여성주의철학」 수업은 “첫째, 철학과라는 교육공동체를 배경으로 신뢰자원을 가진 전임교원의 전공교과목으로 운영되었다는 점, 둘째, 종단사적 영향 연구가 가능한 매우 드문 장기적 교육사례라는 점, 셋째, 여남학생 비율이 균형을 이룬 수업집단을 대상으로 남성교수가 여성주의교육을 실시하였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사례라고 발표했다. 
 
남겨진 많은 교안과 과제물들, 그리고 20년 전체 기간의 수강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시적 설문조사(나영정·권율수) 및 심층인터뷰(조한진희) 결과를 자세히 분석한 후, 필자는 장춘익 교수의 ‘여성주의철학’이 “수평적 의사소통을 중심으로 하는 관계경험적 교육”이었다고 정의 내린다. 또한 그의 ‘여성주의철학’이 어떻게 남학생들에게 성평등 가치를 교육했는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춘익 교수의 여성주의철학, 수평적 의사소통과 관계경험적 교육

특히 필자는 “수업에서 남학생들이 매우 활발하게 토론에 참여했으며, 여학생들 역시 남학생들과의 활발한 토론에 큰 흥미를 느꼈음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런 개방성과 상호 발견은 여성주의교육에서 매우 바람직한 구도”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필자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남학생들은 장춘익 교수의 ‘여성주의철학’을 ‘일상을 여성주의 관점으로 생각하게 되는 첫 경험’, 또는 ‘남성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면 생각조차 해보기 어려운 지점들’이 있는데, ‘살면서 가본 적 없는 길로 생각의 물꼬가 트이는’ 경험으로 회고하며, 이후 이들은 여성혐오에 반대하고 구조변화와 약자의 편에 서기로 결심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여성해방이후 남성성의 위기는 불가피한데, 성차별적 남성주체성을 강요하는 사회·문화질서의 변화에 참여하는 시민의식을 발휘함으로써 오히려 남성은 정체성의 위기를 방어적으로 고착시키지 않고 새로운 통합적 도덕성으로 나갈 수 있다”라며 “장춘익 교수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바로 대학의 여성주의교육이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패널에 참석한 학자들. 상단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노성숙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교수, 정희진 박사(여성학),  오정진 부산대 교수(법과대),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 김은희 경인교대 교수(윤리교육과), 이현재 서울시립대 교수(도시인문학연구소). 사진=연구회

 

여성주의교육이 새로운 통합적 도덕성으로 발전

이어 토론에 나선 정희진 박사(여성학, 『페미니즘의 도전』의 저자)는 “현재 우리사회 페미니즘이 한편으로는 관료행정화,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주의화 경향을 보이며 연대의 가치가 약화되는”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하였다. 두 번째 토론자인 오정진 부산대 교수(법과대)는 정책과 담론을 넘어서 지역에 밀착한 페미니즘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장춘익 교수가 그런 교육실천을 한 것으로 평가했다. 

세 번째 토론자인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인권범죄인 반여성폭력범죄에 대한 대응뿐 아니라 사적이고 사회적인 일상에 내재한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문화규범들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대학교육이 바로 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 번째 토론자인 김은희 경인교대 교수(윤리교육과)는 자신의 「성의 철학과 성윤리」 수업을 예로 들면서, “존 롤즈의 ‘반성적 평형’ 이론을 활용한 사고과정의 역동화를 통해 대형 교양강의에서도 규범을 비판적으로 상대화 하는 훈련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현재 서울시립대 교수(도시인문학연구소)는 현재 고도화한 이론과 디지털 세대의 소통방식 사이의 괴리로 인해 교착상태에 빠진 여성주의 담론에서 학문분과로서 철학의 기여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대학 여성주의철학의 역량 제고를 주장했다. 

왼쪽 나영정 씨(한림대 철학과 1997년 입학, 가족구성권연구소), 조한진희 씨(한림대 철학과 1996년 입학,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저자). 사진=연구회

한편 학술대회를 참관하던 김경민 한림대 철학과 학생은 “장춘익 선생님은 그냥 ‘나는 이런 페미니즘이 옳다고 생각한다’며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셨고, 그런 관계에서 학생들은 페미니즘에 공감했다”고 전하였다. 전체 토론을 이끈 노성숙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경민 학생의 발언은 우리 대학 교수들이 어떤 자세로 여성주의 가치와 세계관을 미래세대에게 교육할 것인지 반성하게 만든다”고 총평하며 학술대회를 마쳤다.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연구결과 및 좌담회 내용은 내년 2월 곰출판에서 책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탁선미 
한양대 독어독문학과 교수(전 한양대 양성평등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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