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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 오디세이] 1 대 120, 인도의 언어 전쟁
[글로컬 오디세이] 1 대 120, 인도의 언어 전쟁
  • 김용정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HK연구교수
  • 승인 2021.08.26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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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오디세이_한국외대 인도연구소
힌디어와 영어를 비롯해 인도에서 통용되는 언어들로 발행된 인도의 신문들. 사진=AP연합
힌디어와 영어를 비롯해 인도에서 통용되는 언어들로 발행된 인도의 신문들. 사진=AP연합

 

인도의 라따 망게슈까르(Lata Mangeshkar)를 비롯한 이백여 명의 가수들이 코로나 상황의 최전선에서 맞서 싸우는 의료진과 심신이 지친 국민을 위로하는 의미로 송가를 지어 15개의 언어로 불러 발표했다. 15개의 언어라니! 단일 민족에 뿌리를 둔 우리에게는 15개라는 숫자가 많아 보인다. 지정어(Scheduled Languages)가 22개인 것을 감안하면 인도인은 오히려 7개가 부족했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2011년 센서스 조사에 따르면 인도인들이 모어라고 답한 언어 수는 1만9천569개이다. 중복되는 언어를 제외하면 실제 모어 수는 1천369개에 달한다. 1천369개의 모어를 다시 1만 명 이상의 사용자를 기준으로 재분류하면 121개의 언어가 된다. 이렇듯 수많은 언어가 숨 쉬는 곳에서 인도를 대표하는 ‘국어(National Language)’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언뜻 대답하기가 어려워진다. 실제로 ‘국어’가 없다. 인도 헌법은 국어 대신에 공용어(Official Language)로 힌디어와 영어를 규정하고, 22개의 지정어를 명시한다.

 

인도를 통합하라 vs 언어의 공존을 허하라

 

‘한민족, 한국어, 한글’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다소 어색하게 들리겠지만 다언어, 다인종, 다문화 국가인 인도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단 하나의 무언가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인도 아대륙에는 전통적으로 여러 민족들이 각자의 영토에서 왕국을 영위해왔고,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인도는 과거 토후국들의 영토를 인도연방에 통합했다. 독립 과정에서 인도를 통합하는 하나의 국어를 선정하는 것은 간디와 네루 등의 지도자들에게 주요한 과제였다. 가장 넓은 지역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힌디어였기 때문에 힌디어를 국어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은 당연해 보이기도 하겠으나,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 과정에서 언어는 국가, 민족, 집단, 종파 등을 상징하는 정치적 도구화가 되기도 했다. 이에 언어정체성을 띄는 국어 대신에 공무상의 기능을 강조한 공용어와 지정어를 선정함으로써 갈등을 봉합했다. 이렇듯 인도는 세속주의 기치를 내걸고 다양성에 무게를 두며 출범했다. 그런데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2014년에 집권한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추진한 힌디어 우선 정책은 타지역어권의 반발을 불렀다.

국내∙국제무대에서 힌디어의 위상을 높이려는 언어 정책이 인도를 통합하여 강한 인도를 구현하겠다는 가치를 표방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면에 힌두민족주의(Hindutva)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국의 언어를 국제무대에서 인정받게 하려는 노력은 많은 국가들이 하는 노력일 텐데 ‘힌디어 패권주의’라며 비난하니, 소수의 논리도 정치와 결합되면 만만치 않은 듯하다. 힘과 정치의 논리가 말, 글, 얼에 개입되면 인도에서는 통합을 이루는 데에 영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 같다.

 

UN 공용어의 꿈과 ‘바라뜨와니’ 프로젝트

 

인도에는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가 있는데 그것이 힌디어이다. 인도에서, 인도어들 중에서 가장 많은 사용자인 6억 명이 힌디어를 사용하고 있다. 산스끄리뜨어, 쁘라끄리뜨어, 아쁘브란시어를 거쳐 발전하였기에 힌디어는 언어문학적인 유구한 전통을 자랑한다. 인도 외무부는 힌디어를 UN의 공식 언어(영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아랍어, 중국어, 프랑스어)로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다. 추산에 따르면, 인도는 세계 각국 수도와 UN에서 힌디어를 홍보하기 위해 4억8천400만 루피(670만 달러)를 지출했다. 2018년 3월 인도는 UN에서 생산하는 힌디어 콘텐츠의 양과 빈도를 늘리기 위해 UN사무국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인도에는 유네스코에서 분류한 소멸 위기에 처한 언어가 191개 있다. 2016년 인도 정부는 인도의 소수 언어와 소수 언어의 지식을 보호하고 축적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소수민의 언어인 카시어, 가로어, 호어부터 소멸 위기에 처한 인도어에 이르기까지 총 234개의 언어로 지식을 축적하는 작업이다. ‘바라뜨와니(Bhāratavāṇī)’라고 불리는 이 프로젝트의 이름에서 바라뜨는 ‘인도’를 뜻하고, 와니는 ‘말, 소리, 지혜의 여신’을 뜻한다.

힌디어도 소수어도 저마다 가슴 뛰게 할 수 없을까? 정쟁을 떨어내고, 서로를 끌어내리지 않고, 소수의 소리도 다수의 소리도 넉넉히 담아내며 새 시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지혜가 인도의 말, 글, 얼에도 깃들길 희망한다.

 

 

김용정
한국외대 인도연구소 HK연구교수

인도 델리대학교 힌디어과에서 힌디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힌디어, 힌디문학, 인도어문학에 관심을 두고 연구와 번역을 하고 있다. 주요 논문과 저역서에는「19세기 중엽 힌디어의 정제(整齊)와 담론의 근대성」, 『힌디어 단어형성법Ⅰ』(공저), 『인도 언어 지도』(공저), 『카라반의 종소리』(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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