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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_독도라는 아이러니
문화비평_독도라는 아이러니
  • 이택광 광운대
  • 승인 2005.04.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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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아이러니다. 실질적으로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라거나, 실질적으로 독도가 국가간 경제적 이해관계의 첨예한 대립지점이라거나, 실질적으로 독도가 근대 국가적 민족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격전지라고 할지라도, 확실히 독도는 아이러니다. 물론 이 아이러니는 상징적인 거다. 독도라는 상징공간은 그래서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암시한다.

굳이 이걸 “강박”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다. 민족주의는 강박이라서 미안한 게 아니다. 민족주의에게 강박은 존재적 운명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의 서사는 기본적으로 로망스다. 그래서 이토록 강고해 보이는 서사는 이행기의 공포와 염원을 그대로 담고 있어서 문제적이다. 민족주의는 타자를 규정함으로써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는 담론이기에 겉보기와 달리 그 내부는 취약하다. 문제는 이 강박을 불러오는 원인에 있지 민족주의 자체에 있는 게 아니다. 증상을 꾸짖는다고 임상학적 치유가 가능한 게 아니다. 문제는 그 증상의 근본원인부터 밝혀야 한다.

 
그리하여 독도는 상징과 실재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로 꼬여 있는 저 아이러니의 바다에서 파도를 맞고 있다. 일본인 일부가 ‘다케시마’라고 부르는 독도는 갑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지렛대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초국가적으로 민족의 경계를 넘나들던 자본조차도 이 민족주의 선언에 동참하고 있다. 아니 적어도 동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 호라는 파란 많은 배를 함께 타고 좌와 우에서 서로 조타수를 잡겠다고 으르렁거렸던 진보와 보수도 하나가 되어 “독도는 우리 땅”을 외쳤다. 아니 외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외침에 동참했다가 황급히 자리를 걷고 나가버린 민주노동당의 해프닝은 예외로 하자. 어차피 이건 독도의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은 실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독도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민족주의가 지배 담론으로 기능하지 못한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다. 독도를 둘러싸고 분출하는 ‘민족적 의분’은 그러므로 한국이 충분히 민족주의적이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독도는 한국이 충분히 민족주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거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냉전이데올로기를 통해 억압되어온 쾌락이다. 말하자면, 한국인에게 민족주의는 금지된 욕망이다.

최근 극우논객들이 친일파를 둘러싸고 보여주는 행태들은 이런 거세된 쾌락의 출몰에 대한 공포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을 두렵게 만드는 건 북한도 노무현 정권도 아니다. 오직 이들은 쾌락의 분출을 통해 기성의 상징질서가 무너지는 걸 무서워할 뿐이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독도 되찾겠다고 손가락 자르고 남의 나라 국기 불태우는 걸 선진국 사람들이 본다면 한국을 야만국가라고 생각할 거다.” 이건 대타자의 상징질서를 내세워 쾌락을 통제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과연 이런 시도가 과거처럼 지금도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바야흐로 탈냉전시대를 맞이한 세계체제의 변환은 이제 한국인에게 ‘쾌락의 평등주의’에 눈뜨도록 만들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은 바로 이 가치체계를 상징적으로 한국인에게 각인시켰다. 붉은 악마 현상은 마침내 민족주의를 절대적 쾌락원칙으로 승인한 ‘근대적 한국인’의 출현을 의미하는 거다. 독도 문제를 둘러싼 민족주의의 분출이 과잉의 결과가 아니라 결여의 효과인 건 이런 까닭이다.

21세기 한국의 민족주의는 당위에 근거한 근대적 쾌락원칙이다. 민족주의는 모든 쾌락의 해방을 뜻하지 않는다. 민족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다하는 범위에서 이 쾌락은 허락된다. 그러므로 민족주의의 쾌락은 이 쾌락원칙을 넘어가는 향락의 거세를 전제하는 거다. 건전한 쾌락을 위해 비정규직이나 여성,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의 병리학적 쾌락은 제거되어야한다. 독도는 이런 병리학적 쾌락을 지워버린 자리에서 솟아오른다. 이 자리에서 독도는 민족주의자들에게는 너무 부족하고, 냉전세력들에게는 너무 과잉이다. 그리하여 독도는 통합된 민족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민족주의와, 좋았던 과거가 다시 올 수 없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냉전세력 모두에게 부족함을 채워줄 수 없는 아이러니한 대상이다.

이택광 / 광운대 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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