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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반론: 박병기 교수의 반론(교수신문 제350호)에 답한다
재반론: 박병기 교수의 반론(교수신문 제350호)에 답한다
  • 김선욱 숭실대
  • 승인 2005.04.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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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도덕적인가에 대한 사색부터

김선욱 / 숭실대·철학

한여름, 심신이 더위에 지쳐 시원한 그늘에서 낮잠을 청하는 것이 가장 하기 좋은 때라 생각 될 즈음에 혹시 주무시지나 않으실까 생각하며 법정스님을 찾았던 어떤 불제자가 칼로 대나무를 깎고 계시는 스님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어느 순간에 득도를 할지 모르니 한 시라도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다소 느긋한 마음으로 쓴 신문의 칼럼에 반론이라니, 화들짝 놀란 마음은 마치 낮잠을 자다 방문객을 맞은 꼴이랄까. 그래도 박 교수는 차분히 글을 읽고 분석을 해주어 많은 배움을 얻게 되었다.

이 시대를 유신이나 폭력적인 독재정권의 시대와 비교할 수는 없다. 오늘의 도덕교육도 그 시대의 도덕교육에 비교할 수는 없다. 교과서 끝에 연구진과 집필진, 심의진의 명단과 소속이 나열되어 있고, 더욱이 집필진의 경우는 장별로 명시가 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같은 열린사회에서 이들이 불순한 내용을 도덕교과서에 담아 어린 학생들의 정신을 흐리고 있을 것이라고 감히 의심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런 가운데 필자가 “중 고등학교에서 시행되는 도덕교육 자체가 파시즘을 재생산하는 기계”라고 공언을 해버렸으니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도 파시즘의 문화가 완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는 필자의 지적에 공감을 해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폭력적 소비구조와 불평등이 이러한 현상의 주요 원인이며, 또한 대다수의 젊은 도덕 교사들이 전통사회의 수직적 질서의식으로부터 상당히 자유롭다는 지적도 공감할 만 했다.

그러나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점을 굳이 드러내 본다면 내 이름 앞에 붙인 표현인 ‘철학자’의 관점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무슨 대단한 철학자이어서가 아니다. 다만 필자가 철학과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윤리는 무엇보다도 철학의 한 분과로서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해서만이 제대로 된 도덕적 사유, 윤리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가르치는 입장에 서 있기 때문이다.

철학개론 첫 시간에 철학은 크게 세 분야, 즉 형이상학(또는 존재론)과 인식론, 그리고 윤리학으로 구성된다고 소개한다. 윤리학의 규범적 또는 비규범적 주장은 형이상학적, 인식론적 전제들과 밀접하게 설명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윤리학적 훈련은 전통사회의 덕성을 제시하고 사회의 일원으로 어떤 덕목을 가질 것인가에 대해 ‘훈육’으로서가 아니라, 왜 그런가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더불어 이루어진다.

중고등학교의 도덕교과서를 읽으면서 필자가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던 부분은, 예컨대 현대사회와 전통도덕의 관계에 대해, 민족의 발전과 민족 문화 창달에 대해, 올바른 애국, 애족의 자세에 대해 어쩌면 그토록 분명한 어조로 제시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학생들에게 도덕적 사유의 근거와 윤리적 규범의 정당성 문제에 대한 고민을 안겨주지 않고, 사색의 기회를 주지 않은 채 수많은 암기 거리와 실천 거리들을 내놓은 부분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이것이 필자가 현재의 도덕 교육에 대해 가장 근본적으로 제기하는 의문이다.

물론 곳곳에 삽화처럼 좋은 생각하기가 끼어 있고 철학적 사유를 위한 질문들이 양념처럼 던져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거리들이 오히려 중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두터운 외투처럼 아이들의 사유를 저어하는 내용들은 과감히 던져버리고, 아이들을 생각의 깊이로 이끌어 들일 때, 주당 두어 시간 밖에 되지 않지만 이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정신적 홀로서기를 할 수 있고, 획일성을 극복하고 유행에 휩쓸리지 않을 개성을 형성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정신이 형성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생각할 시간을 줘 어떻게 살 것인가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보는 가운데 학생들의 내면에 진정한 도덕성과 윤리성이 이룩될 것이다. 이것만이 학교폭력을 근원적으로 해결해 내고, 우리들의 삶에 녹아 있는 파시즘적 문화를 진정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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