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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제 14회 심산상 수상자 장회익 서울대 교수
인터뷰 : 제 14회 심산상 수상자 장회익 서울대 교수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1.05.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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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29 09:34:12
유림 출신의 진보적이며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긴 心山 金昌淑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心山賞’(심산사상연구회 회장 김시업)의 14번째 수상자로 물리학자인 장회익 서울대 교수(물리학과)가 선정돼 화제가 되고 있다.
‘민족 사회의 정의와 창조적 역량을 고양하는 학술 및 실천 활동에서 공로가 큰 분에게 주는 상’이라는 설명대로, 장교수의 ‘심산상’ 수상은 다소 의외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장교수의 노작 ‘삶과 온생명’, ‘과학과 메타과학’에 담긴 장교수의 사유를 엿보면, 수상을 쉽게 수긍하게 된다. 수상식은 28일 오후 4시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열렸다.

△자연과학자로서는 처음으로 ‘심산상’을 수상하게 됐는데, 소감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 무슨 상을 받을만한 업적을 이루어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학문적 업적 여부를 넘어서 심산 선생의 고결한 삶을 본받기에는 아직 너무도 못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제가 감히 이 상을 받아도 될 자격을 가졌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 남은 생애를 통해 선생의 높은 뜻을 조금이라도 이어받아 제 부족한 부분을 메워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물리학과 성리학의 이질적인 두 학문을 감싸는 독특한 사유를 시도했습니다. 이런 방식은 오늘날 학자들에게 쉽지 않은 작업으로 비쳐질텐데, 이런 시도를 하시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과 심산은 같은 동갑나기(1879년생)라는 사실만 빼면, 아무 연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은 일반상대성이론의 예측을 통해 창조적 지성으로, 또 한 사람은 기미 독립운동을 계기로 준엄한 비판적 지식인으로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한 시대를 산 것이죠. 그런데 이 두 분의 학문이 우리 세대에 이르러서조차 영영 평행선을 긋는 것이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불현듯 했습니다. 동양과 서양에서 각각 빚어낸 인류 지성의 정수라고도 할 이 두 학문의 내용들이 끝없이 평행선만 달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도 이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먼저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착수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 이 학습을 시도한 것입니다.”

△선생님의 그런 생각과 사유의 얼개는 이 땅의 교육 체제와 무관하지 않아보입니다.
“앞에서 말한 두 분의 경우에서, 창조적 지성이든 실천적 지성이든 일단 그 학문적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는 자력에 의한 날카로운 지적 수련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오늘 우리 교육 체제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교육 체제 안에서 과연 이런 지성이 길러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을 고민할 때 암담한 느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삶과 온생명’, ‘과학과 메타과학’이 ‘심산상’ 수상대상 저술입니다. 특히 ‘삶과 온생명’에는 문명과 생명에 대한 선생님 특유의 사유와 고뇌가 묻어 있지요.
“저의 ‘온생명’의 개념은 특히 21세기로 들어서면서 현대 문명이 지닌 많은 문제점을 조명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생태계의 파손 문제를 비롯, 현대 인류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우리 생명이 지닌 온생명적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인류 문명의 여러 측면들을 온생명과 관련하여 이해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거죠. 특히 이 온생명 안에서 인간이 점유하고 있는 위치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우리 전통 학문 속에 온생명에 대한 이해가 암묵적으로 담겨있는 듯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굳이 현대 과학을 통한 온생명의 이해에 이르지 않더라도 우리의 전통 학문들을 재음미함으로써 현대 문명이 지닌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얻을 소지를 발견하게 되겠죠. 이러한 점은 다시 현대 과학과 동양의 전통 학문을 연결해 보려던 저의 시도가 온생명 개념을 통해 한층 더 새로운 이해의 차원을 열어줄 수도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심산의 청결한 지조를 높이 평가하는, 정년을 바로 앞에 둔 물리학자 장회익 교수는, 더욱 큰 ‘나’를 위해 작은 ‘나’를 기꺼이 내던질 자세로, 한 걸음 더 힘을 내어 진전하라는 채찍으로 ‘심산상’ 수상의 소회를 밝혔다. 그의 겸손은 修辭가 아니었다.
최익현 기자 ihchoi@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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