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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_"환경전염병을 우려한다"
학이사_"환경전염병을 우려한다"
  • 박석순 이화여대
  • 승인 2005.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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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순 / 이화여대 환경공학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대학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한 학과 중 하나가 환경관련 학과일 것이다. 환경공학과, 환경과학과 등의 신설 학과가 만들어지고, 기존의 지질학과나 토목공학과가 지구환경과학과, 토목환경공학과 등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또한, 농과대학이 환경생명과학대학으로 명칭이 바뀌고, 소속학과들이 환경생태공학과 등으로 재정비됐다. 여기에 최근에는 가정대학까지 생활환경대학이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꾸어 달면서 바야흐로 우리나라 대학에 ‘환경’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대학에서 환경에 관한 연구는 이미 1백년 전부터 시작됐으며, 독립적인 학과가 설립된 것도 80년이 넘는다. 1919년에 미국 뉴저지주 럿거스대학교에서 환경과학과를 설립한 것을 최초의 학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학문과 학과의 체계가 정착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960년대 이후였다. 미국 토목공학회에서 위생공학(Sanitary Engineering)의 명칭을 환경공학(Environmental Engineering)으로 변경한 것이 주요 계기가 됐다. 대학의 연구와 교육이 활발하게 이뤄지게 된 것은 미국과 영국, 일본 등에서 환경청이 설립된 1970년부터다. 우리나라도 1980년에 환경청이 설립되면서 대학의 교육과 연구가 활성화됐다. 특히, 제5공화국 헌법에 ‘국민은 누구나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다’라는 환경권이 보장되면서 환경은 국가적 이슈로 떠올랐다.

연구대상은 인류가 직면한 환경문제, 즉 인간에 의한 환경파괴와 오염이며, 학문적 뿌리 보면 크게 세 분야로 나누어진다. 환경과학은 생태학에서, 환경공학은 위생공학에서, 환경보건학은 예방의학에서 발전해온 학문이라 할 수 있다. 환경과학은 인간과 자연의 유기적 관계, 환경문제의 원인규명이 주요 연구주제라면, 환경공학은 문제를 보다 경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 환경보건학은 오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예방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러한 학문들이 초기에는 주로 문제 해결과 사후 대책에만 연구의 초점을 두었으나, 지금은 보다 적극적인 환경관리와 사전 예방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를 다루고 있다.

이 세 분야 외에도 최근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환경을 연구대상으로 하고 있다. 환경문제의 공공성과 정부 역할의 중요성 때문에 환경정책학이 등장했으며, 기업경영에서 환경이 더 이상 비용이 아닌 생존전략이 되어감에 따라 환경경영학이 각광받는 학문이 됐다. 환경교육학, 환경언론학, 환경사회학 등도 교육, 사회고발, 홍보, 사회갈등 해소 등을 통하여 문제해결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오존층 파괴와 지구온난화 등과 같은 지구환경문제가 심화되어 감에 따라 지구과학의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이 모든 분야를 환경학이라는 이름으로 통합하여 연구하고 교육하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21세기가 환경의 세기라 불릴 만큼 환경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환경산업과 기술이 국가의 주요 성장 동력이며, 보다 쾌적한 환경을 추구하는 국민의 욕구는 끝없이 분출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환경을 연구대상으로 학문이 새롭게 탄생하고 환경이 대학이나 학과 명칭에 널리 이용되는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지금 일부 대학에서는 학생 모집을 위해 학문의 자존심도 버리고 교과 내용과 무관하게 명칭만 바꾸는 경우가 간혹 있다. 혹시 대학에 부는 환경 유행병이 학생들에 ‘양두구육’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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