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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보다 더 미국적"...기초부터 탄탄히
"미국보다 더 미국적"...기초부터 탄탄히
  • 민경국 강원대
  • 승인 2005.04.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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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진단: 경제학에서 '독일의 미국화'와 '한국의 미국화'는 어떻게 다른가

2차 대전 후 미국경제학은 독일경제학에 매우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것은 미국경제학이 한국에 미친 영향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이 다름 속에서 한국경제학의 발전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역사학파의 몰락과 함께 독일에서 경제학의 진공상태가 있었다. 이 기간에 신고전파 미시경제학과 그리고 거시경제학이 독일 학계를 지배했다. 1960년대 이후 미국경제학은 비록 주류는 아니지만 버지니아 학파의 공공선택론과 헌법경제론, 그리고 다양한 제도이론을 탄생시키는 등 다양하다. 오스트리안 학파의 진화론과 제도이론, 경쟁이론도 빼놓을 수가 없다. 독일 경제학의 미국화를 말할 때 이런 경제학을 미국경제학에 포함시켜야 한다. 물론 이런 분야는 미국에서는 주류를 형성하는 분야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주류경제학’이라는 용어가 존재하지 않을 만큼 다양하고 이런 다양성 형성에 미국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독일경제학과 미국경제학의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경제이론과 경제정책론의 엄격한 구분이다. 교수 채용과 학위과정도 이런 구분에 준한다. 미국에서는 경제정책론은 이론의 간단한 응용으로 여기는 응용경제학이다. 이론에서 인과 관계를 찾고 경제정책론은 이런 ‘원인-결과’를 ‘목표-수단’으로 전환시킨다. 이런 식으로 경제정책이론을 이해한다면 경제정책론이라는 학과목이 불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경제학이 미국화되는 과정에서 경제정책론이 학과목에서 탈락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독일 경제학에서 경제정책론은 경제사상을 의미한다. 국가철학, 법철학이 전부 경제정책론에 포섭된다. 그 대표적 교과서가 오이켄(W. Eucken)의 저서 ‘경제정책의 기본원리’(민음사 刊)이다.

그런데 경제정책론에서 말하는 國家象과 현실의 그것은 현격하게 다르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발견하면서 독일에서는 경제정책론의 무용론까지 나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규범적인 국가이론 또는 국가윤리학이 아니라 경험적인 이론이다. 이런 경제정책이론의 위기를 극복해준 것이 미국의 버지니아 학파의 공공 선택이론이다(뷰캐넌, 다운스, 털록 등). 이것이 독일 경제학의 미국화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신고전파적인 균형이론적 공공선택론에 대하여 불만을 가진 경제정책이론가들이 등장하며 오스트리안 학파의 진화론적인 공공선택론이 개발됐다. 이 역시 미국이 주도했다.

경제학자 일을 정치학자가 대신해
한국경제학은 이런 공공선택론의 교육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재정학에서 간단히 언급할 뿐이다. 재정학도 뷰캐넌 등이 극복하고자 했던 신고전파의 후생경제학을 기반으로 한다. 오히려 행정·정치학자들이 공공선택이론을 중시하고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한국경제학의 중요한 결함이 아닐 수 없다. 

독일경제학이 미국경제학에 의존하는 또 한 부분은 경쟁이론이다. 그 하나는 미제스-하이에크 등의 전통을 발전시킨 미국의 오스트리안 학파의 경쟁이론이 그것이다(Kirzner, 1972).

다른 한편은 하버드 학파의 산업조직론으로 신고전파 이론이다. 경쟁이론을 가격이론으로 축소시킨 것.  전부 그 뿌리가 미국인 이 두 가지 이론이 독일에서 경쟁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오스트리안 학파의 경쟁이론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다. 대신 신고전파의 미시경제학을 전제한 하버드 학파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에도 ‘오르도(ORDO) 경제학회’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독일적 학회라기보다는 하버드학파의 산업조직론에 가깝다.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오르도’라는 매력적인 이름을 하버드 학파의 산업조직론으로 저락시키고 있다.

 

▲오이켄 ©
오이켄의 질서 자유주의 가운데 중요한 두 가지 원칙이 있다. 그 하나는 시장을 규제하기 위한 원칙이다.  다른 하나는  시장을 구성하는 원칙이다. 이 후자는 ‘자본주의의 법적  기초’를 말하는 원칙이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 후자의 원칙이다. 소유권법, 계약법 또는 불법행위법(tort law) 등이 그것이다. 질서 자유주의는 이런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런 법적, 제도적 기반에 대한 이론이 없었다. 이런 제도의 생성과 변동을 설명하는 이론을 개발하지 못하고 주어진 여건으로 취급해 버렸다.  

제도경제학의 발흥
독일학자들은 미국의 신제도주의가 등장하자 비로소 제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1980년대 초다. 전에 독일 경제학에서 멀리했던 오이켄을 다시 일깨우기 시작했다. 신고전파의 제도경제학도 문제가 없지 않다. 독일 경제학자들 중에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극복도 미국경제학자들이 해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오스트리안 학파, 문화적 진화이론가, 생물학적 진화 이론가들이 그들이다. 저널 ‘Journal of Institutional and Theoretical Economics’에서는 제도의 문제를 철저히 다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독일학자보다 영미학자가 필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문제와 관련해 한국경제학이 발전하려면코즈(R. Coase) 등의 신고전파 제도이론, 신고전학파의 법경제학 등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된다. 독일 경제학은 신고전파의 미시 경제학과 그리고 거시경제학으로부터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2차대전후 경제학의 공백상태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미국은 한국경제학의 발전에 크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은 독일 경제학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독일경제학이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부분을 미국경제학이 도와줬다.

왜 하필이면 한국경제학은 신고전파 일변도로 미국화 되었는가. 미국경제학에서 수많은 접근법과 연구프로그램들이 공존하고 있음에도 다른 분야를 도입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쉽게 풀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 동안 한국경제학의 미국화를 유일하게 가로막는 역할을 한 경제학이 바로 독일경제학이다. 바로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 이념이다. 김대중 정부는 국정 철학을 사회적 시장경제 이념이라고까지 말했다. 이 정도까지 독일경제학이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친 이유는 독일유학파 때문이기보다는 미국경제학에 대한 불만을 가진 미국유학파 때문이다. 동구 몰락 이후 계획경제를 신봉하던 좌파들은 자신들의 정신적 공백을 독일식 자본주의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독일에서 공부한 경제학자들은 ‘한국의 미국화된 경제학’(신고전파 일색의 그 경제학)을 독일에서 배우고 온다. 한독경상학회에서 발간되는 ‘경상논총’에 수록된 논문을 보면 대번 들어난다. 오늘날에는 그런 학자의 수가 증가일로에 있으니 안타깝다.

인지·심리경제학 통해 기초 다져야
현재 한국경제학의 과제는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다. 미국경제학이 정부의 정책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은 배워야 옳다(Cassel, 2002). 유럽대륙, 특히 독일에서는 기술 관료적(technocratic) 싱크 탱크는  많지만 여론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는 싱크 탱크는 없다. 한국에도 마찬가지인데, 특정 정책을 직접 정부에 건의하는 일 뿐만 아니라 여론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필요하다. 

경제심리학 또는 인지경제학의 중요성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진화심리학과 함께 이들은 모두 매우 중요한 기초 과학이다. 경제학의 가장 근원을 이루는 분야이다. 이런 기초분야를 철저히 연구하고 이를 토대로 하여 미시, 거시 그리고  계량경제학을 근원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기초학문을 기반으로 해 경제와 사회에 관한 이론을 도출하고 동시에 이로부터 경제정책을 구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학의 기초학문을 튼튼히 해야 한다. 자연과학만이 기초과학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회과학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기초분야를 철저히 준비하면, 왜 신고전파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 그리고 계량경제학에 집착해서는 안되는 지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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