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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노동을 쉽게 말하지 않는 연습
한 사람의 노동을 쉽게 말하지 않는 연습
  • 정고은
  • 승인 2021.08.20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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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지난 6월 26일, 서울대 기숙사를 청소하던 한 여성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2019년 여름 이후 또 발생한 죽음이다. 일반적으로 대학에서의 일자리는 위험하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지만, 대학이 누군가에게는 죽음에 이를 만큼 열악한 노동현장임을 깨닫게 하는 사건이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면서 부당한 업무 지시를 감내해야 했던 대학 청소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해고를 당해 학생들과 연대하며 싸웠던 것이 2000년대 후반의 일인 것을 떠올린다면 그로부터 십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고인과 유족, 그리고 연대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서울대 청소노동자의 죽음을 대하는 상반된 태도를 보여주는 글을 읽었다. 첫 번째는 학생들의 제보를 익명으로 실어주는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었다. 누군가, 부당한 대우를 참으면서까지 일을 하는 것은 그만큼 이익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학이 정말로 살인적인 노동환경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통계를 확인해야 하며, 이렇게 객관적인 지표로 검토해야 하는 것은 ‘산 자의 책임’을 따지는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청소란 누구나 할 수 있고 아무데서나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청소노동자는 재취업이 쉬우며, 사실 청소 자체가 힘든 일도 아니라고 적었다. 노동쟁의는 결국 돈을 더 달라는 말이라고도 했다. 

다음으로 대학 청소노동자였던 자신의 어머니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낸 글을 접했다. 이 글을 읽으며, ‘나의 어머니도 청소노동자였다’, ‘나의 어머니도 마트노동자였다’, ‘나의 어머니도 돌봄노동자였다’로 시작하는 수많은 이야기들과 그녀들이 일하는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노동문학 연구자로서 노동자의 글과 인터뷰를 읽다 보면, 2000년대 이후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한 여성노동자의 목소리가 특히 자주 들린다. 90년대 후반의 경제위기를 거치며 여성들은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가장 먼저 해고됐으며,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리게 됐다. 그녀들은 마트에서, 병원에서, 학교에서 ‘아줌마’ 소리를 들으며, ‘반찬값을 벌러 왔으면 이정도는 감수해야지’라는 시선 속에서 일한다. 이에 맞서 여성노동자들은 부당한 처우를 개선하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동료들과 노동조합을 만들고, 기나긴 싸움을 시작했다. 이렇게 싸움을 시작하고 나서야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그녀들의 일이 가시화되고 ‘노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진다.

대학 내 노동도 마찬가지다. 팬데믹 이후 배달음식 주문으로 인해 음식물쓰레기 처리 등 지저분하고 번거로운 일들이 늘어났을 것이며, 사람의 손이 닿는 곳을 모두 소독액으로 닦아야 했을 것이며, 청결에 더 많은 신경을 쏟았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늘어났지만 무심하게 외면해온 일들을, 누군가 외롭게 일하는 모습을, 우리는 한 사람의 죽음 이후에야 뉴스에 보도된 CCTV 자료화면을 통해 어색하게 마주하게 된다. 
며칠 전 불필요한 복장 지시와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필기시험을 강요하는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는 근로감독 결과가 나왔다. 그제서야 서울대 총장은 유족에게 사과를 했다. 그러나 고인과 유족은 노동조합에 휘둘리고 있다거나, 심지어는 조의금을 돌려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들어야 했다. 

일부 대학 구성원들이 상상하는, 노동조합에 이용당하는 ‘순진한’ 노동자와 유족은 없다. 청소노동자가 받은 모멸감, 팬데믹 이후 높아진 노동강도, 그리고 죽은 아내의 동료들만큼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기를 바라는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어느 노동자의 죽음에 대하여 경제학의 언어나 상투적인 노조혐오 레토릭으로 반박할 필요는 없다. 대학 안에서 우리가 기대고 있는 노동을 폄하하는 것을 멈추자. ‘산 자의 책임’은 피해자 코스프레를 운운하거나 타인의 노동을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노동을 존중하는 연습에서 시작된다. 

 

정고은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0년대 노동소설에 재현된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계속해서 노동문학과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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