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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이데올로기'가 빚은 촌극
'원조 이데올로기'가 빚은 촌극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04.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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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19단 외우기'와 한국사회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19단을 놓고 ‘설전’을 벌이고 있는 양상이다. 두 언론사의 교육에 대한 가치관의 차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19단’의 허술한 ‘뻥’이 너무 잘 먹히는 한국사회에 대해 언론으로서 ‘올바른 정보제공’의 책임을 느낀 듯하다.

19단이 열풍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나름대로 문화적, 사회적 배경을 가진다. 우선 학생들의 계산능력이 점점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효했다. 미국의 작가 스타인벡은 한 도자기 가게에서 각기 할인율이 다른 그릇 6개의 값을 치르는 데 무려 40분을 허비하고 ‘미국인’이라는 저서에서 ‘문명인’의 ‘지능퇴화’를 개탄, ‘人間幼稚論’을 펼치기도 했다. 19단은 점점 컴퓨터에 의존해 퇴화하는 인간의 계산능력에 대한 처방으로서 사회적으로 등장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주산학원이 다시 부활하면서 때 아닌 ‘복고론’이 펼쳐지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19단으로 암기력이 회복되고 계산능력이 얼마간 축적되더라도 그것의 ‘지속가능성’은 보장 못한다. 있던 컴퓨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산능력’이 부족과 지능퇴화와 연결되는 것도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다. 전준수 서강대 교수(경영학)은 미국유학 시절 “공식에 대입해 간단히 풀면 될 것을, 별 희한하고 치졸한 방법을 다 개발해서 푸는 걸 보고 처음에는 웃었지만 나중에 진짜 머리 쓰는 게 무엇인지 알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재래식이 차라리 낫다’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것에 대한 불신풍조가 배경으로 작용한 감이 있다. 대학신입생들이 ‘기본 수학공식’도 모른 채 입학해 수업이 불가능할 정도라는 점이 이슈화되면서 고등수학을 하기 위한 기본코스에는 익숙해져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요구가 ‘구구단’의 업그레이드 버전에 대한 손쉬운 선택에 등을 떠밀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원조 이데올로기’이다. ‘원조’라면 무조건 숭배하는 분위기 때문에 수를 개발한 수학의 원조국가인 인도에 대해 열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원조를 모방하는 나라는 결코 원조를 따라갈 수 없다는 걸 그렇게 겪고도 모른다”고 최영기 서울대 교수(대수위상수학)는 분개한다. 최 교수는 “원래 19단은 일본의 한 초등학교 교장이 15년 동안 19단을 외운 아이들의 행로를 좇아 그 아이들이 동경대 등에 진학하는 것을 검증하고 나름대로 주장한 것”이라며 “우리 사회도 감각적인 차원에서 찬반론으로 치달을 것이 아니라 뭔가 검증하고, 실증적으로 테스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비판했다.

현재 수원시교육청은 초등학교, 중학교 각각 1곳을 시범학교로 지정해 19단을 가르치고 있으며, 전국 1백곳의 초등학교가 재량학습권에 따라 자투리 시간을 19단 외우기에 쓰고 있다고 한다. 언론이 여론조성의 기능을 넘어, 그리고 사교육비의 쓸데없는 지출을 조장하는 것을 넘어, 공교육의 안마당까지 침투해서 바람직하지 않은 또 하나의 경쟁 패러다임을 외삽시키는 풍경은 우리 시민사회 각 영역의 자율성 정도가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번 ‘19단 열풍’은 우리 사회의 현재를 비추는 거울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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