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04:30 (금)
[해외통신] 영국학계 페미니즘의 위상
[해외통신] 영국학계 페미니즘의 위상
  • 이택광 / 영국통신원
  • 승인 2001.05.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05-29 17:44:12
이택광 / 영국통신원·셰필드대 박사과정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은 같은 것인가? 이런 愚問을 페미니스트들에게 던지는 것도 반여성적 태도일까? 여하튼 페미니즘 역시 이론인 이상 오래 전에 이상화되었던 이론과 실천이라는 변증법적 관계설정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다. 무릇 그러하듯 항상 실천의 열기가 싸늘해지는 곳에서 이론이 태어나기 마련이라면,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로 19세기 이래로 지속되었던 서구의 여성운동을 그늘 삼아 삶터를 잡은 것일 게다.
그러나 영국의 대학당국이 이론을 천시하던 그 시절에, 당연히 이 페미니즘이라는 ‘보상논리’가 발붙일 곳은 없었다. 구조주의를 가르치던 교수가 전격 해임되는 난센스를 겪은 지가 그렇게 오래된 일도 아닌 것 같은데, 어느새 영국의 대학은 유명한 이론가들이 제법 수업시간에 호명되는 이론의 요람이 된 듯도 하다. 이런 격변에 힘을 보탠 세력 중 하나가 페미니즘이었다는 사실은 지금 현재 대학의 커리큘럼만을 훑어봐도 그 내막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페미니즘, 영국대학 전략과목으로 부상

영국에서 발견되는 페미니즘이 ‘문화적’이고 ‘탈구조적’인 프랑스에 비해 ‘사회경제적’이고 ‘구조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관심을 끌만한 사항은 이런 페미니즘 이론이 거의 모든 대학의 영문학과에서 정식 과목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다양한 석사과정을 마련해놓고 있기로 유명한 영국 대학들은 성차(gender) 연구나 페미니즘 문화비평을 주요 전략 과목으로 지정해놓기도 했다.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충실한 교육사업의 형식이 말해주는 것은 그만큼 페미니즘 자체가 인기가 있다는 현실이 아닐까? 또한 놀라운 것은 이들 영국의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프랑스의 포스트구조주의보다는 오히려 라깡이나 프로이트 쪽에 더 가까이 서 있는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들에게 큰 힘을 불어넣어 준 에너지원은 바로 푸코였지만, 그래도 한때 알뛰세의 세례를 받고 자란 세대가 대학을 점령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여전히 내딛는 행보는 조심스러움을 떨쳐버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단순한 보수주의가 이런 지체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닐 터.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결국 영국 여성 인텔리들을 붙들어매고 있는 이 페미니즘은 기실 자본주의적 경제체제 자체가 가부장적 질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지극히 단순하나 결정적인 요인에 대한 분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최근 런던에서 개최되었던 ‘국제 라깡 학회’ 같은 곳에서 논의되는 새로운 상황에 맞는 새로운 분석 틀은 다분히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이 하나로 이어지는 길목을 예비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가 루카치의 지적처럼 물화의 관계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페미니즘 역시 일종의 ‘문화적 실천’으로 인식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인텔리 집단 모태로 출발한 한계

이런 맥락에서 페미니즘은 단순한 보상심리의 산물이 아니며, 오히려 자본주의 경제체제라는 환원적이고 전일적인 폭력에 대항하는 적극적인 이데올로기 운동이다. 따라서 페미니즘은 단순하게 여성의 권리 찾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체제에 파열구를 내는 활동을 통해 새로운 구조를 생성하는 운동으로 번져가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런 실천의 양상은 문화적일 수밖에 없는데, 쥴리 리브킨이 지적하듯이, 그동안 페미니즘은 1960년과 70년대 개화했던 여성운동을 자양분 삼아 대학이라는 인텔리 집단을 근거지로 했기에, 다분히 문화적 실천형태를 지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겠다. 물론 이런 한계가 페미니즘의 딜레마로 작용하기는 하겠지만, 반대로 영국의 경우처럼, 평생교육이 보장된 조건에서 본다면, 여성들에게 교육이나 연구를 통해 사회의 실상을 깨닫게 한다는 것은 중요한 실천적 과제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데올로기는 현실에 대한 논리화이긴 하지만, 결코 이성적인 것은 아니다. 영국의 페미니스트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먼저 그 현실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는 원칙은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성적 성찰이 곧 현실을 변화시킬 힘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묵묵히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