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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영토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섬
문화비평: 영토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섬
  • 김진석 인하대
  • 승인 2005.04.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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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 인하대 철학 ©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제1장 3조에 따르면 독도는 기껏해야 한반도에 부속된 섬이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주민이 한명도 살지 않는 섬. 그런데 졸지에 그 섬이 대한민국 영토의 자존심을 살리거나 죽이는 ‘핵심’ 영토로 떠올랐다. 이상하지 않은가. 독도가 영토에 관한 자존심의 상징이라서? 설혹 그런 상징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가.

탈영토화론이 인기를 끄는 시대에 더 이상 영토에 얽매일 필요가 없을 듯하건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여전히 영토에 목을 매야 한다. ‘탈영토화’야말로 생뚱맞게 보일 지경이다. 근대 이후 처음으로 제 영토를 추스르기 시작한 한국의 민족주의는 한가롭게 탈영토화에 장단을 맞추기보다는 (재)영토화에 신경을 써야할 판인 듯하다. 그러나 왜 그런가. 독도가 영해의 설정과 관계될 뿐 아니라 수면 아래에 거대한 자원을 갖고 있어서?

독도는 그저 단순히 귀한 물리적 영토로 그치지는 않는다. 독도는 한국 민족주의의 외롭고 뜨거운, 돌덩이처럼 단단한 시험대다. 지난해 중국은 동복공정을 통해 한국의 역사적 영토 고구려를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시키려 했을 뿐 아니라, 다가올 남북통일을 겨냥해 한반도의 영토 경계를 확실하게 하려 했다. 이미 중국이 그 영토를 점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할 일은 그저 절치부심과 항의뿐이었지만, 그나마 지나간 지도 위의 영토문제였기에 그 정도로 봉합됐다. 그와 달리 독도는 비록 주민 한명 없는 ‘무인도’ 라고 할 수 있지만 민족국가, 더구나 경제규모로 세계 10위권에 들어서면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강성해진 민족국가의 얼굴을 대변한다.

여기에 핵심이 있다. 유례없이 강성해진 민족국가는 이제 훨씬 강한 이웃나라와 대치하게 됐는데, 이 이웃나라는 아직도 식민지 역사를 제대로 쓰지 않는 그 나라다. 아니 그 나라 탓만 할 수없다. 한국인 스스로 아직도 자신의 핵심 영토라는 한반도의 식민성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가 축복이었다고 말하는 정신 나간 교수를 논외로 치더라도, 한반도가 일본 때문에 번영했는지 아니면 그저 수탈당했는지 우리는 아직 역사적으로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그뿐인가. 식민지로 전락하기 전 대한제국의 국가적 부실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도 아직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 주 영토인 한반도는 그렇게 더러웠을 뿐 아니라 아직도 더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는 청산되지 못한 영토인 셈이다.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해서만 그런 것도 아니다. 빛나는 현대화는 비록 우리 모두 피땀 흘려 이룩한 성과이지만, 동시에 박정희 정부의 군사 개발주의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토의 핵심인 한반도는 발전을 빙자해 더러워졌고, 더러워진 채로 놀랍게 성장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정색을 하고 영토를 깨끗이 씻지 못한다. 부속도서가 아닌 본 영토 한반도는 그렇게 더러움에 내맡겨진 채, 발전하고 있다. 어쨌든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강대국 사이에 옴짝달싹못하게 꽉 끼여 있잖은가. 좋다, 더러운 발전이어도 좋다. 그렇게 발전하면서, 그렇게 성장하면서만, 더러움을 털어내는 방식밖에 없었다. 영토 한반도는 더러운 발전, 더러운 교과서, 더러운 다카키 마사오를 깨끗이 털어내지 못한 채, 빠르게, 묵묵히,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독도는 다르다. 사람이 살지 않았지만, 아니 더러운 역사에 휘둘린 사람이 살지 않았기에, 최소한 여기서 민족주의는 더럽지 않다. 더러웠던 반도에서 분을 삭였던 분노는 여기서는 비실비실 물러설 수 없다고 생각한다. 더러워진 본 영토 반도에서 사는 사람들은 더럽지 않은 영토의 이미지를 먼 바다 위 독도에 투사한다. 독도는 더러웠던 한반도의 영토를 씻어내는, 상징적 영토다. 물리적으로 독도는 한반도에 부속된 작은 섬이지만, 상징의 차원에서 독도는 오히려 본 영토 한반도를 이끌고 간다. 영토 바깥 멀리 있는 독도는, 영토를 상징하는 깨끗한 얼굴이다. 먼 바다 외로운 독도가 영토의 부끄러움과 더러움을 씻어내고 있다. 씻어내는 독도의 파도는 높다. 더러운 영토가 잘 씻기지 않을 때, 파도는 웅웅대며 더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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