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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 『전환기 한국의 정치와 사회』(임현진 지음, 집문당 刊, 430쪽, 2005)
본격서평: 『전환기 한국의 정치와 사회』(임현진 지음, 집문당 刊, 430쪽, 2005)
  • 박길성 고려대
  • 승인 2005.03.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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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참여형 거버넌스 제안…자본을 변수로 삼았어야

박길성 / 고려대·사회학

‘한국사회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관해 이미 걸쭉한 책을 여러 권 출간한 바 있는 임현진 교수가 이번에는 전환기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관통하는 키워드에 방점을 찍으면서, 동태적으로는 한국 정치 사회의 심대한 구조와 흐름을 파악하며, 정태적으로는 현재의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면밀하게 파헤치는 작업을 내놓았다.

저자는 한국사회의 변동을 분석함에 있어 네 가지 주요 개념들을 중심으로 살펴 볼 것을 제안한다. 국가, 민족, 계급, 문화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사회를 설명하는 핵심요소로서 단일민족성의 신화와 국가중심성, 문화적 동질성과 집단주의의 원리, 계급주의와 민주주의의 대치를 지적한 점이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계급주의의 민주화 기능, 저평가

그는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라는 신화, 그리고 오랜 시기 동안 형성된 국가중심주의는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양상을 낳고 있으며, 유교적 원리에 입각한 문화적 동질성은 집단주의라는 사회통합기제에 크게 기여함으로써 국가주의와 더불어 권위주의적 경향을 강화시켰음을 사회변동의 밑그림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서구 근대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유용한 개념인 계급주의는 한국 현대사에서 민족주의에 밀려있었으며, 한국의 민주주의에 미친 계급주의의 역할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논지다.

오늘날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놓여 있는 한국사회의 구성원리에 대한 저자의 진단은 명쾌하다. 전지구적 세계화의 경향과 시민사회의 성장은 기존의 국가주의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그간의 한국사회의 통합기제로서 작동하여 왔던 집단주의 역시 권위주의와 맞물려 사회변화의 장애로서 인식되고 있다. 계급타협의 기반을 결여한 상태로 진행되고 있는 민주주의 역시 그 종착지가 어디인지 감을 잡기 어렵다. 지금까지 한국사회를 구성하던 원리들이 모두 해체되고 있으며, 그리고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리는 정립되지 않았다. 그 결과는 오늘날 한국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엄청난 사회갈등의 양상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저자는 시민참여형 거버넌스로서의 제4정부 부문을 제안한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시민참여와 국가능력을 조화시킬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갈등조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네 가지 복합 설명개념 주목돼

한국사회에 대한 기존의 분석들은 대체로 한국사회의 변동과정을 하나의 개념 틀에 의한 단원론적 접근방식을 취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국가, 민족, 계급, 문화의 네 가지 복합 설명개념에 의존하는 과단한 기획 틀을 제시한다. 과단한 기획인 만큼 논란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각 설명개념 사이의 연관성은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지, 각 설명개념의 논리적 근거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가장 자주 언급되면서 모든 단위에 걸쳐 해석되는 자본, 시장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사실 분석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면서 모든 단위에 걸쳐 해석되는 자본이 제외되면서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상당부분 저하시킨 것으로 보인다. 매우 흥미롭게도 저자는 국가, 시민사회의 역량은 매우 높게 평가하는 반면, 자본의 영역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설령 저자가 국가-시민사회의 2분법에 입각하여 논의를 전개했다 하더라도 한국사회의 변동을 설명하는 데 있어 자본을 별도의 독립변수로 고려하지 않은 것은 무언가 허전하다.

해방 이후 현대사의 전개과정에서 자본 영역은 시민사회의 영역과 마찬가지로 점점 국가의 영역으로부터 분리되어 왔다. 자본의 영역은 시민사회의 영역과도 확연히 구별된다. 시민사회가 일반적인 사적 이익을 대변한다면 경제 영역은 자본의 이익이라는 특수한 사적 이익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 영역의 논리는 전통적으로 개인주의 및 자유주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전통적 구성원리였던 국가주의 및 집단주의와는 첨예한 대립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자본영역의 독립 및 강화는 필연적으로 국가능력의 약화 및 집단주의의 위기를 불러 일으켰다. 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변동양상은 국가로 부터 자본영역과 시민사회 영역이 독립하여 서로의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여 국가, 자본, 시민사회가 서로 경쟁, 갈등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어 왔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한국 사회의 변동에서 자본의 논리가 작동했던 측면들을 지나치게 간과하고 있는 저자의 분석은 논쟁의 거리로 남겨진다. 

세계사와의 연결고리도 약해

저자도 적절하게 인식하듯이 세계화의 추세는 지구상의 모든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문명사적인 거시 변동은 비단 세계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계화, 정보화, 민주화의 사회변동은 일국에만 작동하는 사회변동이 아닌 범세계적인 현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거시변동의 흐름은 개별 사회의 역사적 상황조건(historical contingency)과 맞물려 그 사회의 개별적 사건들을 창출하게 된다. 따라서 일국적인 사건으로 보이는 사회현상의 이면에도 세계사적인 보편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세계사적 흐름을 간과하고 있다는 손쉬운 지적을 받을 만큼 허술한 논지를 펼 리가 만무하지만, 세계사의 보편적인 흐름들과 연결 고리를 잡아내는 일은 상대적으로 약해 보인다. 저자가 강조하고 있는 시민사회 성장의 상당 부분 역시 국제사회의 규범 및 영향력에 힙 입은 바가 크다. 국제사회의 합의와 규범의 중요성이 나날이 증대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그것에 반하는 방향으로 한국사회가 나아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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