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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특집_이탈리아 오페라와 독일 오페라의 차이
예술특집_이탈리아 오페라와 독일 오페라의 차이
  • 이용숙 오페라평론가
  • 승인 2005.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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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언어'와 '철학적 언어'를 위한 음악형식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 ©
오페라의 식탁이 이만큼 풍요로웠던 해는 일찍이 없었다. ‘아이다’, ‘라 트라비아타’, ‘토스카’, ‘투란도트’ 등 이탈리아 거장 베르디와 푸치니의 대표작 일색이었던 국내 오페라 공연 레퍼터리가 올해 들어 독일 쪽으로 폭을 넓혀가고 있고, 프랑스와 영국 작품 몇편도 공연될 예정이다. 이탈리아 오페라 중에서도 국내에선 좀처럼 공연되지 않던 작품들도 나올 예정이다.


4백여년 전에 ‘오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곳이 이탈리아인 만큼, 세계 어디서나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가 가장 많이 공연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 각국의 오페라들이 나름의 스타일과 개성을 지니고 있으니, 50년 넘는 오페라 수용사를 지닌 우리도 이젠 지나친 ‘이탈리아 편중’을 벗어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3월22일~26일까지 국립오페라단이 볼프람 메링 연출로 공연한 베버의 ‘마탄의 사수’는 독일 오페라의 독특한 매력을 일깨워준 작품이다. ‘구름은 하늘을 가려도’라는 카바티나와 ‘사냥꾼의 합창’ 같은 노래로 유명한 이 낭만주의 오페라는 향토색 강하고 교훈적인 독일 징슈필(Singspiel: 연극처럼 대사가 많은 노래극)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지만, 이번 공연은 초현실주의와 극사실주의를 교묘하게 접목시킨 기괴하고 몽환적인 무대로 독일 징슈필 특유의 유치함을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 이처럼 관객을 매혹한 ‘마탄의 사수’는 올 6월 무대에 오를 바그너의 ‘탄호이저’와 9월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에 대한 기대를 더욱 증폭시킨다.


이탈리아 오페라가 독일 오페라보다 대중에게 훨씬 인기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언어의 아름다움에 있다. 세상의 어떤 언어보다 이탈리아어는 음악적이다. 독일어나 영어와 비교하면 모음이 훨씬 밝고 힘있게 들리며, 언어의 리듬감도 독일어나 영어와는 비교안될 정도로 뛰어나다. 인간의 기쁨과 슬픔, 격정과 분노와 절망 같은 감정상태를 음악으로 옮기기에 가장 적절한 언어인 셈이다. 푸치니의 ‘라 보엠’에서 주인공이 ‘희망la speranza’이라고 외치는 순간, 그 의미에 꼭 맞는 선율에 실린 그 단어는 감상자에게 큰 감동을 일으키는 마술을 연출한다. 이탈리아 오페라를 독일어나 한국어로 번역해놓으면 언어의 리듬이 달라져 본래의 맛을 즐길 수 없게 되는데, 자막이 있는 원어공연이 정착되기 전에 국내번역 혹은 번안 오페라가 대중을 설득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바그너의 발퀴레 ©
독일어권 작곡가면서도 ‘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 ‘코지 판 투테’ 등 대부분의 걸작 오페라를 이탈리아어로 작곡한 모차르트는 음악적 스타일 면에서도 스스로를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로 인식하고 있었다. 오페라 작곡할 기회를 원했던 1778년 모차르트의 편지에도 “그러나 독일어가 아닌 이탈리아어로 작곡하고 싶습니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단어 하나하나가 복합적이고 심층적인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탈리아어에 비해 모음보다 자음이 훨씬 두드러진 독일어가 오페라 작곡엔 부적절한 언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독일어로 된 모차르트의 징슈필 ‘후궁탈출’이나 ‘마술피리’는 독일 음악극을 이탈리아 오페라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런 평가는 모차르트 시대까지만 해도 독일 오페라가 이탈리아 것보다 음악적인 면에서 훨씬 낮은 수준이었음에 대한 반증이다.


오페라를 생동감 넘치는 종합예술로 새롭게 창조한 17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거장 클라우디오 몬테 베르디는 “언어는 (음악적) 하모니의 주인이지 시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가창에 우선적인 비중을 두고 오케스트라가 선율을 따라가게 하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이 시작됐다. 17세기~18세기 전반까지는 신화나 영웅담을 소재로 삼은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 진지한 오페라)가 이탈리아 오페라를 지배했지만, 상업 오페라 극장이 늘어가고 평민들이 오페라 주 관객층이 되면서부터는 오페라 세리아에 삽입됐던 막간극이 크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희극적이고 일상적인 내용을 담아 평민의 입맛에 맞췄던 이 막간극은 오페라 부파(opera buffa: 희극 오페라)라는 형식으로 발전해 오페라 세리아를 압도했고, 모차르트를 거쳐 조아키노 로시니(대표작: ‘세비야의 이발사’)라는 ‘부파의 거장’을 낳았다. 가볍고 빠른 입놀림을 가능케 하는 이탈리아어의 특질은 로시니 희극 오페라의 희극성을 더욱 극대화시켜, 듣는 이들에게 理性의 웃음을 선사한다. 


벨리니와 도니체티 같은 19세기 이탈리아 작곡가들은 오페라 세리아의 전통에서 발전한 비극 오페라를 ‘벨칸토’ 창법으로 더욱 아름답고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베르디는 전통을 종합하면서 오페라의 연극적인 면을 살려 이탈리아 오페라의 정점에 오른 거장이 됐다.


공교롭게도 베르디와 같은 해인 1813년에 태어난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자신의 오페라 대본을 스스로 써서 작곡했다. 뛰어난 劇作 감각을 지녔던 바그너는 무엇보다도 언어의 문제에 천착해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적할 철학적인 독일 오페라의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독일인의 성대구조로 이탈리아 오페라를 노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탈리아어 말고는 다른 어떤 언어도 모음을 사용해 그토록 감각적인 쾌락을 만들어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언어에 대한 바그너의 이러한 자각이 독립적인 독일 오페라 확립의 필연성을 일깨웠다. 바그너는 이탈리아 오페라와 구분하기 위해 자신의 오페라에 ‘악극(Musikdrama)’이라는 새로운 장르명을 붙였다.


체계적인 가창이론을 확립하지는 않았어도 바그너는 자신의 가수, 더 정확히 표현하면 자신의 악극 연기자에게 가창과 관련해 상세한 주문을 했다. 특히 대사를 명료한 발음으로 선언하듯 전달하라는 것이 중요한 요구였다. 언어의 차이를 염두에 둬, 모음을 최대한 활용하는 이탈리아 오페라 창법의 콜로라투라나 멜리스마를 포기한 것도 바그너 악극의 중요한 특징이다. “멜로디는 가사에서 유기적으로 발전된다”는 것이 바그너 작곡의 원칙이었고, 이 원칙은 그의 ‘무한선율 기법’을 이끌어내는 토대가 됐다. 바그너의 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에서 남녀 주인공은 사회적 도덕과 의무가 지배하는 낮의 세계를 거부하고 밤의 세계에 살기를 원하며 결국 죽음으로 완벽한 합일에 도달하는데, 이런 텍스트의 내용과 전적으로 일치하는 무한선율의 형식은 감상자를 종종 병적인 도취상태에 빠져들게 한다. 뿐만 아니라 바그너 악극에 담긴 민족주의와 신비주의는 나치에 악용돼 후대의 비판을 받았다.
오케스트라의 음량과 성악가들의 중량감 있는 목소리가 감상자를 압도하는 바그너 악극의 종교적 분위기는 철저히 세속적인 이탈리아 오페라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시대와 문화조류에 따라 오페라 형식도 다양하게 발전해왔기 때문에, 이탈리아와 독일 오페라의 차이 역시 시대 배경 없이 일괄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양쪽의 상이한 언어에서 출발한다. 물론 격렬하게 감정을 분출하거나 유머감각으로 넘치는 이탈리아 오페라와 엄숙하고 장중한 파토스로 가득한 독일 오페라의 차이는 둘의 대조적인 민족적 기질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이용숙 / 오페라평론가
필자는 프랑크푸르트대에서 ‘권터 그라스’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오페라, 행복한 중독’, ‘사랑과 죽음의 아리아’ 등이 있고, 역서로는 ‘음악이 들린다 클래식이 보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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