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22:15 (목)
"당신의 삶이 우리의 역사입니다"
"당신의 삶이 우리의 역사입니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03.2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술사 특집: 학문적 흐름

▲ © 이상원 作, '동해인', 장지에 유채와 먹, 82*126cm, 2001
구술사 연구는 미국과 유럽에서 출발했다. 미국에서는 미국사 연구 분야에 흑인사와 南部史라는 오랜 구술사 연구의 전통이 있다. 남북전쟁 이전부터 노예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기록하여 출판했으며, 1930년대에는 사업촉진국(WPA)에서 원래 노예 신분이었던 2천명을 인터뷰해 그 결과가 책으로 출판됐다. 1948년에는 역사학자인 네빈스(Allan Nevins)의 노력으로 콜럼비아대에 구술사 연구소가 설립돼, 이를 계기로 미국 전역에 유사한 연구소가 만들어졌다.

영국에서는 1973년에 톰슨(Paul Thompson)을 중심으로 ‘Oral History Society’라는 구술사 연구학회가 결성돼 정기간행물을 발행하고 있다. 특히 이 연구학회의 결성을 주도한 톰슨의 ‘과거의 목소리(The Voice of the Past)’는 구체적인 연구방법론을 포함해 이제까지의 구술사 연구를 집대성한 고전적 저작으로 평가된다.

구술사를 현재의 위치로 올린 선구자는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모리스 알바시(Maurice Halbwachs)다. 그는 뒤르켐의 영향을 받아서 ‘집단적 기억’(collective memory)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는 한 개인의 기억은 가족, 친족, 마을, 종교집단 그리고 국가와 같은 사회 그물망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가 집단적 기억이란 개념을 주장할 당시만 해도 기억은 개인의 심리적 요인과 관련지어 보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러한 분위기 아래서 알바시는 개인의 기억도 사실은 사회적·계급적 제도의 영향을 고려하여야 한다는 점을 주장했다. 알바시의 연구는 1970년대까지는 프랑스를 제외한 지역에서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70대 이후 역사가들과 사회과학자들이 기억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그의 연구는 프랑스 밖에서 재평가 받았다. 이러한 연구가 발달하면서 집단기억을 포함하여 보다 넓고 구체적인 범위에서 사회적 기억(social memory)의 문제가 다뤄지기 시작했다. ‘대항 기억’ 개념을 발전시킨 터디만(Richard Terdiman)은 아직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는 19세기의 기억에 대한 두 가지 논제를 제시했다. 첫째는 전통적인 기억의 형태가 대대적으로 파괴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기억의 기능 자체와 기억의 제도, 즉 역사가 현재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피에르 노라(Pierre Nora)는 이렇게 역사에 의해 장악된 기억에 주목했다. 노라는 “기억을 추구하는 것은 곧 사람의 역사를 찾는 것이다”라고 했다. 푸코도 또한 대중의 기억에 대한 경합이 정말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중의 기억을 다시 프로그램 하는 수단들, 즉  TV 와 영화들은 너무나 효과적이어서 과거와 현재를 해석하는 틀을 대중들에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대중들은 과거의 그들 자신이 아니라 과거의 그들 자신으로서 기억해야 하는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과거의 신비적 요소를 제거하는 것도 또한 기억이라는 작업을 통해서이다.  그래서 기억을 소유하고 통제하고 경영하고 그것이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을 지시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된다. 이것이 기억이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를 해석하는 것, 즉 역사쓰기에서 경합의 초점이 되는 이유이다.

대중기억연구회(Popular Memory Group)에 따르면 기억의 사회적 생산은 공적인 재현(public representation)과 사적인 기억(private memory)의 두 가지 방식으로 일어난다. 역사의 공적인 재현에서는 과거에 대한 여러 해석들의 경합을 통해 지배적인 기억이 나타난다. 지배적인 역사적 재현은 매우 이데올로기적이고 전형적인 신화에 가장 가깝다. 과거에 대한 공식적인(official) 재현은 국가와의 관계에서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다. 민족사와 민족 유산은 국가가 차용하는 지배적인 공식적 기억의 대표적인 예다. 공적인 미디어도 또한 공적 재현의 주요한 원천이다. 사적 기억은 일상적인 생활 중에 만들어진다. 그러나 사적 기억은 “기록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침묵되어진다.” 사적 기억은 개인의 종속된, 또는 사적인 삶의 경험을 반영한다.

사회적 기억이 생산되는 과정에는 두 가지 종류의 관계가 있다. 첫 번째는 학계를 포함하여 공적인(public) 분야에서 나타나는 지배적인 기억(dominant memory)과 대항기억(counter-memory) 사이의 관계이고, 두 번째는  현대 국가 체제에서 공적인 담론들과 생활문화에서 생성된 좀더 사적인 기억 사이의 관계다. 과거에 대한 다수의 공적인 재현 사이에서 끊임없는 경합이 일어나고 그 중에서 하나가 지배적인 기억이 되면, 다른 것들은 대항 기억이 된다. 이 두 가지 형태의 기억은 그것들이 만드는 역사적 진실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두개의 대립되는 역사적 해석을 내놓는다. 따라서 헤게모니 쟁취를 위해 지배적인 기억과 대항 기억과의 사이에 계속적인 경쟁이 일어나게 된다.

지배적인 기억의 재현들은 국가 기구들에 의해 공식적인 역사 속에서 계속 형식화되고 재생산된다. 그러나 공식적인 기억과 삶의 경험에서부터 오는 사적 기억과의 사이에는 잠재적인 괴리가 있다.8)  이 괴리는 대중들의 대항기억이 출현할 수 있는 가능한 공간을 만든다. 대항 기억은 종속되거나 억압받는 사람들의 사적이지만 집합적인 기억이다. 지배적인 기억과 대중들의 기억과의 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협상된다. 이렇게 사적인 기억은 헤게모니적인 기억과 담론에 대항하는 대항담론을 구성하는 대항기억으로서 하나의 공적인 역사의 재현이 될 수 있다.

따라서 기억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다. 기억은 단지 과거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관계다. 왜냐하면 과거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것은 과거가 현재에 살아서 현재 사회적 관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정치적 지배는 헤게모니 투쟁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사에 대한 정의를 수반한다. 역사는 정치적 투쟁의 장이다. 따라서 역사와 정치의 관계는 별개가 아니라 내적인 것이다. 그것은 역사의 정치학이고, 정치의 역사적 차원이다. 역사와 정치 관계의 중심에 있는 것이 현재의 시각에서 과거를 이해하고 진리를 생산하기 위해 역사를 재창안하는 토대로서 바로 기억이다. 

구술사에서 또 하나의 핵심은 ‘생애사’다. 대표적인 학자인 덴진(Denzin 1989a)은  생애사 연구방법의 기본적인 가정은 행동과 경험을 행위자의 관점 내지는 주관적인 관점에서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생애사 수집의 주관적이며 해석적인 틀은 생애사의 주관성에 초점을 둔다. 해석적인 틀에서는 생애사에 대한 해석을 화자의 나(self), 삶, 경험 등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이에 대한 연구자의 이해의 과정으로 본다. 이러한 생애사 연구방법의 핵심은 개인적인 경험과 경험의 의미에 의존하게 되므로, 연구대상자의 경험에 따라 그리고 연구자의 경험에 따라 해석적인 틀은 다양하다. Personal Narratives Group(1989)은 생애사에 대한 해석을 맥락, 서술의 형식, 화자와 연구자의 관계 등 세 가지 측면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맥락은 개인이 환경에 영향을 주고 환경이 개인의 삶을 형성하는 역동적인 과정을 말한다. 개인의 삶과 그러한 삶이 이루어진 사회문화적 환경의 관계는 생애사를 해석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연구자가 상정한 연구대상자의 삶의 맥락은 생애사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연구자의 선험적인 이해가 된다.

그 외에도 역사학의 아날학파에 의한 ‘생활사’, ‘일상사’적 관점이 구술사에 대한 관심과 접맥된 흐름이 있고, 최근에는 사회복지의 차원에서 ‘심리치료’로서 구술의 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이 인식되고 있다. 역사쓰기가 동시에 기억을 복원하고 영혼을 안정되게 만드는 일로써 인식되는 것이다.

<이 글은 함한희 교수, 윤택림 교수, 유철인 교수, 김용의 교수 등 구술사이론 및 방법론과 관련된 논문에서 주요대목을 발췌해 정리한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