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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자들의 위장술에서 벗어나기
신자유주의자들의 위장술에서 벗어나기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1.05.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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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29 17:45:27
‘자유주의’란 적어도 국내에서는, 갖가지 함의를 포함한 오염된 어휘다. 더군다나 지난 몇 년간 ‘신자유주의’라는 단어의 대안을 찾고 있던 일부 ‘경제적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훼손된 단어다. 그 뿐 아니다. 몇 해 전 시사평론가 유시민씨와 전 자유기업원 공병호 원장 사이에 오갔던 논쟁에서, 자유는 경제이외의 범주에 적용되지 않는 제한된 말이기도 했다. 물론 ‘자유’기업원 공 원장의 ‘자유로운’ 자유주의 해석이어서 유씨의 논박에 부합하지 못했지만. 더우기 한국철학사상연구회(회장 김교빈 호서대 교수)가 ‘자유주의 철학 사상의 재검토’를 주제로 6월 2일에 개최할 학술대회 자리에서라면 여지없이 논파될 어휘일 뿐이다.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을 신자유주의자로 분류하는 김성우 성균관대 교수의 ‘로크, 자유주의, 신자유주의’라는 발표문의 결론은 신자유주의를 혐오하는 일반의 소박한 입장과 닮았다. 김 교수는 가령, “(신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고유한 의미의 자유주의는 소유의 자유를 개인적 자유의 모델이자 전제조건으로 간주한다. 이런 식으로 소유적 자유라는 계급 차별적 단어를 자유라는 보편 언어로 기술하는 것은 일종의 기만이다”라고 주장한다. 특수를 보편으로 가장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위장술과 기만에서 벗어나기를 김 교수는 종용하고 있다.

황희경 성심외대 교수의 발표문, ‘현대 중국의 자유주의 이해’는 김 교수와 대립된다. 그러나 실상 그 대립은 무의미할 수 있다. 황 교수의 관심은 문화혁명과 자본주의이며, 문화혁명의 상처가 중국의 자유주의자와 ‘신좌파’들과의 괴리를 낳은 원천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즉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신좌파’들의 주장이 문화혁명을 겪은 자유주의자들에게서는 통하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인간의 주동성, 선택성, 자기 운명을 스스로 지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주었다는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다.” 따라서 황 교수에 의하면, ‘國情’이라 불리는 중국의 현실규정에 따라 중국의 ‘신좌파’와 자유주의의 해석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사뭇 다른 분위기 하나. 문성원 부산대 교수의 발표문 ‘자유주의와 정의의 문제’는 알렝 투렌의 명제인 ‘어떻게 자유주의에서 벗어날 것인가’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질러가자면, 문 교수의 자유주의 논의란 결국 그간 진행된 자유주의 논의 비판을 통해, 자유를 “자유주의의 형식적 틀을 벗어나 타인에 대한 배려 및 원조와 연결될 수 있”도록 만들어보려는 ‘전략적’ 우회로이다. 문 교수는 “세계화에 편승하거나 소극적인 대응밖에 할 수 없는 자유주의적 발상에 안주할 수 없”는 인간들에게 필요한 도덕을 제시하려 한다. 그것은 문 교수가 일전 발간한 책제목과 같은, ‘배제의 배제와 환대’이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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