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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천하의 중심에서 만국의 하나로
중국, 천하의 중심에서 만국의 하나로
  • 김현주
  • 승인 2021.08.06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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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만국공법』 헨리 휘튼 지음 | 윌리엄 마틴 한역(漢譯), 김현주 옮김 | 인간사랑 | 352쪽

중화·서구질서가 만나 근대 국제질서로 편입
세상의 중심이 더 이상 중국이 아님을 깨닫다

만국공법은 어떤 책인가?

만국공법은 덴마크와 프러시아 대사를 지냈던 미국 외교관 헨리 휘튼(Henry Wheaton, 1785-1848)이 저술한 『국제법원리(Elements of International Law with a Sketch of the History of the Subject)』를 중국에 선교사로 와 있던 미국인 선교사 마틴이 중국어로 번역한 책이다. 휘튼이 썼던 『국제법원리』는 비교적 두꺼운 전공서적이었지만, 그 안에 여러 가지 외교적 사례들을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그 중에서 중국의 외교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은 내용만을 추려 엮은 것이 『만국공법』이다. 『만국공법』은 동문관의 교사로 있었던 마틴이 동문관 학생들의 도움뿐만 아니라, 『만국공법』의 서문을 남겼던 중국 관리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 만큼 『만국공법』이라는 얇은 책은 동양과 서양의 사상과 제도가 함께 녹아들었다고 볼 수 있다. 『만국공법』은 한 마디로 중화질서와 서구질서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왜 만국공법을 번역하였을까?

만국공법을 번역하기 전, 유명한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아편전쟁이다.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난 아편전쟁에서 청나라는 철저하게 패배하였다. 그 결과 중국으로서는 굴욕적인 조약을 연달아 맺게 되었다. 당시 중국의 정치가들에 의하면, “수천 년 간 처음 있는 비상사태”(李鴻章), “오천 년이래 가장 큰 변화”(曽紀澤), “과거에도 있어 본 적이 없었던 기변”(張之洞)이었던 큰 충격 그 자체였다. 

아편전쟁이 일어나기 전, 청나라는 거드름을 피우며 세계 질서를 천하, 즉 “중화질서”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그런데 모든 것이 바뀌었다. 세상의 중심은 더 이상 중국이 아니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바로 『만국공법』 첫 머리에 실린 지도이다. 지도는 동반구와 서반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미국인인 마틴이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두 상반된 세계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이 세계 여러 나라 중의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게 됨으로써, 중국은 이제 세계 속의 여러 나라 중의 한 나라라는 것을 인정하고, 근대 세계의 주역인 서양 국가들의 국제법과 그것을 통해 만들어진 국제질서를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떻게 국제법은 ‘공법’으로 번역되었을까?

어떻게 중국인들, 특히 기존의 질서로부터 혜택을 받고 있고, 그래서 더욱 더 기존의 질서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 관료 계층을 설득하여 서구의 국제법과 질서를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었을까? 현대와 서양으로 상징되는 근대 국제 사회로 가야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중국인들이 곧장 투항할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그것은 중국적 사고의 원형을 제공한 ‘춘추’ 질서로 포장되었다. 그것이 곧 ‘춘추’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춘추시대와 유사한 그 어떤 질서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 셈이다. 청의 지식인들에게 『만국공법』은 전국시대의 혼란이 오기 전에 춘추시대를 지탱했던 예악질서, 그것으로 비쳐진 것이다. 그것은 국제법을 만국공법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함으로써 더욱 분명해졌다. 중국에게 국제법은 하나의 천리(天理)로서, 인간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준칙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공”이라는 단어를 차용함으로써 더욱 강조되었다. 중국의 전통사회에서 ‘공’은 ‘사(私)’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고,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성격이 더 강하다. ‘사’를 지향한다는 것은 서양의 개인이라는 중성적 의미로 이해되지 않았고,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여 결국은 공적 이익에 해가 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런 만큼 국가들의 사회인 국제사회에 적용되는 법과 질서에 전통적 개념인 ‘공’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중국적 도덕관념이 『만국공법』 해석에 반영되었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또한 그것은 중국의 바램을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중국은 자신들이 받아들여야 할 국제질서가 어느 한 나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특히 중국을 침략한 열강 중 한 나라의 것이 아니라 『만국공법』의 내용처럼 공적 원칙에 의해 규율되기를 바란 것이다. 

 

만국공법을 통해 중국은 무엇을 배우게 되었을까?

과거에 대한 중국인들의 미련은 오랫동안 계속되던 중화질서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국제법을 공법으로 이해하고, 국제질서를 춘추질서로 이해하면서 서양의 국제법과 국제질서를 받아들인 것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변화이다. 중화질서로부터 근대의 국제질서로의 전환이 얼마나 큰 변화였는지, 그리고 왜 중국인들이 국제법을 도덕적으로 이해했는지는, 중국의 전통적 외교정책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중국의 전통문화는 예(禮)를 중심으로 발달했고, 그것은 대외관계에까지 적용되었다. 전통적 중화질서는 ‘천하’를 범위로 하지만, 그 중심은 언제나 중국이었다. 그리고 중국과 그 주변국은 예(禮)를 바탕으로 위계적인 관계를 맺어왔다. 중국전문가 페어뱅크는 그런 이유를 들어 중화질서가 국제질서는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만국공법』을 번역할 당시 중국인들은 외교를 잘 해야 국가를 지킬 수 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이홍장 휘하에서 일했던 마건충(馬建忠)은 국가 간의 교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느꼈다. 정관응은 한 발 더 나아가 더 이상 중국이 천조국이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스스로를 만국의 하나로 여겨야”(『易言·公法』)한다고 얘기했다.

그것을 위해 중국인들은 서구 국제질서를 배워야할 필요가 있었다. 『만국공법』을 통해 중국인들은 그들에게 생소한 개념들을 배우게 되었다. 공법이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성법, 공사, 법사, 국회, 제헌, 영사, 주권, 법치, 민주, 공화, 삼권 분립, 권리 등등 대부분이 낯선 개념들이었다. 물론 이런 단어들은 모두 한자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완전히 낯선 것은 아니었지만, 전통적으로 사용해오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낯이 익은듯하면서도 낯선 단어들이었던 것입니다. 

중화질서에서 벗어나 근대 국제질서로 편입하면서, 중국의 세계관은 새롭게 재조정되어야 했다. 권력의 중심이 더 이상 중국에 있지 않다는 것도 마치 대동세계로의 진화로 미화되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역으로 서양의 정치, 경제, 사회를 보여주는 개념들이 중국에 자연스럽게 전파되었다. 

 

왜 지금 『만국공법』인가?

현대를 살고 있는 19세기 중국이 처했던 아편전쟁과 같은 물리적이며 폭력적인 경험을 겪고 있지는 않지만, 그에 버금가는 글로벌 위기에 직면해 있다. 4차 산업이라는 글로벌 산업혁명의 충격은 물론이고, 2019년 12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 또한 그 중 하나이다. 이것은 세계관과 세계질서의 재편을 필요로 한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이제 위기는 개인적 차원은 물론이고, 일국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세계가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종, 성별, 민족, 지역, 계급 등 다양한 원인들로 반목하고 대결하고 있고, 그 해결과 타협은 요원한 듯 보인다. 그런 우리들에게 『만국공법』은 불가능해 보이는 엄청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우선 변화가 필요하다는 우리 자신의 자각이 있어야 하며, 그리고 우리의 시각과 입장에서 역사와 현실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미래의 비전을 세계와 함께 구상해야 할 것이다. 

 

 

김현주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인문한국플러스(HK+)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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