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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조선의 살림하는 남자들
  • 이지원
  • 승인 2021.07.28 16: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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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권 지음 | 돌베개 | 259쪽

 

조선이 가부장제 사회였다고?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회의 한 단면을 마주하다 

 

조선 시대 양반 남자는, 집안의 살림꾼이었다

조선은 철저한 남존여비 사회, 엄격한 가부장제 사회였을까? 실질 생활 속으로 들어가 조선 시대 사람들이 남긴 일기와 편지 등을 살펴보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조선 사회의 한 단면을 마주하게 된다. 살림은 주부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은 언제부터 생긴 것일까?

이 책은 조선 시대 양반가의 생활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영위한 남녀 공존의 역사를 찾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집필되었다. 이 책의 조사 대상이 조선 시대 양반가 남자로 한정된 데는, 유감스럽게도 현재 남아 있는 자료 대부분이 양반 남자들의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자료의 양은 적지만 그 속에서 발견한 유의미한 부분은, 조선 시대 양반 남자가 집안의 살림꾼이었다는 사실이다. 

 

외조하는 조선 남자들 

이 책에서는 조선 시대 양반 남자가 평소 집안 살림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했는지 유형별로 나누어 종합적으로 살펴보았다. 당시 바깥살림의 종류와 그것을 처리한 방식, 또 그들만의 살림 비법과 고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조선은 ‘일기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 시대에는 국가와 개인을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기를 썼다. 현대의 일기가 철저히 개인의 기록인 반면, 조선 시대의 일기는 집안 대소사를 차례대로 기록한 일종의 가족 일지이자 가계부였다. 그래서 대대로 후손에게 물려주어 생활의 귀감으로 삼도록 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살림 노하우를 후대에 물려주고자 했다. 

 

일제강점기에 외재적, 타의적으로 주입된 현모양처 

집안 살림을 여자의 역할로 규정하고 남자는 집 밖 일터에서 오로지 경제 활동에만 종사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이러한 성별 역할 구분은 일제강점기와 현대의 산업화 시대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그것도 내재적, 자발적인 생성이 아닌 근현대의 식민지와 전쟁, 자본주의 산업화라는 외재적, 타의적인 주입이었다. 

남녀 간 역할이 구분된 현대 가부장제의 정착도 마찬가지였다. 일제의 식민지가 되어 강제로 근대화를 겪으면서 우리나라는 집안보다 사회의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다. 또 사회와 집안은 공(公)과 사(私)로 구분되면서 집안은 철저히 사적 영역으로 치부되었다. 그와 함께 사회는 남자의 영역, 집안은 여자의 영역으로 각각 역할을 부여받았다. 조선 시대만 해도 집안 자체가 공이면서 사였는데, 이 시기부터는 남녀의 역할 구분만큼이나 집안과 사회의 구분도 뚜렷해졌다. 이제 남자는 사회에 나가 경제 활동만 담당하고, 여자는 가정에 남아 전업 주부로서 가사를 담당함은 물론 어머니로서 자녀를 양육해야 했다. 일제의 식민지 여자 교육의 목표는 조선인의 황국 신민화와 함께 부덕의 함양을 통한 ‘현모양처’ 양성에 있었다. 특히 중일전쟁을 겪으면서 이런 모습은 더욱 강화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여자의 사회 참여 비율이 남자와 동등한 현대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남녀 모두가 자유롭고 공평하게 사회 활동과 집안 살림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여자의 일-가정 양립 못지않게 남자의 일-가정 양립 역시 중요하다. 언제까지 가부장제 운운하며 현 사태를 관망만 할 것인가. 조선 시대의 자료들을 살펴보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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