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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열등의식
차별과 열등의식
  • 정규환 성공회대
  • 승인 2005.03.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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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 국내 학위 차별과 대학의 식민지성

▲정규환 성공회대 비정규직교수·영어영문학 © 교수신문
한국의 대학에서 국내 학위자가 극심한 차별을 받는 이유로, 사학 경영주 등 인사권자들이 부리는 치기 어린 허영심을 다들 손꼽는다. 그런데 이 허영의 관행을 만들어낸 핵심 요인은 대학 교수 사회의 구성원들이 대개 사로잡혀 있는 열등의식이다. 이 열등의식의 연원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 또는 더 위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한국의 대학 교육은 식민지 경영의 주인 나라에서 공부한 유학파들이 장악했다. 일제 패망과 해방 이후로 조성된 신식민지 상황에서는 유학지가 미국 일색으로 바뀌었다.

한국에 정치경제, 군사적으로 가장 심대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로 유학하여 박사학위를 취득해와야만 한국 대학 사회에서 주류로 확실하게 편입될 수 있다는 사대주의가 한국의 지식인 사회를 단단히 움켜쥐고 있다. 이 정신적 사대주의는 주로 대학을 거점으로 삼아 활동하는 이 나라 지식인 개개인과 그들의 집합체인 교수 사회의 집단의식에 밑바탕으로 자리잡은 심층심리적인 것이므로 그 병폐는 중증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 미국과 일부 유럽에서 학위를 받고 국내 대학에 교수로 채용된 사람들은 국내 학위자들에 대해 한껏 우월의식을 만끽하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왜냐면 이 표면적 우월의식의 이면에는 골 깊은 열등의식이 주화의 양면처럼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구미 대학 학위자들은 학문의 종주국 또는 절대 강국이라고 여기는 곳에서 배우는 자의 자리에만 서 있다가 돌아왔지, 가르치는 자의 처지를 몸소 겪어보지 못한 탓에 그들의 우월감이란 국내 학위자에 대해 상대적으로 느끼는 제한된 우월감일 뿐이다.

몸담은 대학에서 학문 연구와 강의를 한다고 하지만, 이들이 선호하는 것은 학부가 아니라 대학원 강의이다. 학문을 직업으로서 선택한 자를 체계적으로 훈련시키는 대학원 교육, 곧 학문 후속세대를 양성하는 기관인 대학원이 제 기능을 상실해버린 곳에서 이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가? 그것은 껍데기 형식만 유지한 채 부실한 교육 내용을 은폐하고 있는 대학에서 일자리를 지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지적 노동만 들이는 역할이다. 대학 사회에서 국내 학위의 가치가 상품 광고 전단지와 별로 다를 바 없는 현실에서 교수들의 속내가 부질없이 후학 양성에 공들여 뭐 하냐는 자조, 또는 자괴감 밖에 없다면 그런 상황에서 대학원을 운영한다는 것은 사기성 짙은 장삿속 밖에 더 되는가.

국내 대학과 대학원을 학문의 본산으로서 신뢰하지 않거니와 자기가 가르치고 지도하여 배출한 국내 학위자의 학위를 빛 좋은 개살구로 취급하는 지적 식민지 의식에 얽매인 사람으로서는 제자더러 교수가 되려면 국내에서는 대학원 과정만 마칠 것이요, 미국에 가서 새로 시작하여 학위를 받아오도록 종용하는 것을 지극히 상식적인 안내로 여기게끔 되었다.

결국 현재 한국의 대학 교수 사회는 신임교수의 실력을 검증할 능력이 없으므로 그 무능력과 결여된 자신감을 구미, 특히 미국 학위자에 대한 무조건적 신용으로 대체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내에서 학위를 마치고 강사를 하는 사람들은 전임교수가 되는 취업문에서 구미 학위자 선호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할 뿐더러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을 수행하는 교원노동자로서 역할을 인정받지 못하고 신성한 지식노동의 임금마저 무자비하게 착취당하고 있다. 학문 연구와 강의를 직업으로서 택한 자의 미래가 불안하기 그지없는 사회에서 과연 누가 그 뒤를 이어 모멸과 냉대의 가시밭길을 걷겠다고 나서겠는가. 한국의 대학은 이미 학문의 자생적 생산 능력을 잃어버린 지 오래이다. 이 망국적인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첫째, 대학강사를 법정 교원으로 인정하고 처우를 개선한다. 둘째, 지적 사대주의에 사로잡힌 지식인 대중이 인식의 전환을 맞기 이전에 먼저 교수 채용에서 국내 박사 할당제를 의무화한다. 셋째, 조속히 전임교수의 법정 충원율을 95% 이상으로 높인다. 이 법정 교수 충원율에는 교육부가 기만적으로 시행하는, 무늬만 전임교수인 갖가지 계약제 교수를 포함시키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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