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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53] 지드를 오독한 학생과의 대화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 53] 지드를 오독한 학생과의 대화
  •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 승인 2021.07.27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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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지드

퇴직하고 3년 동안 가장 아쉬운 점은 학생들과 만나 대화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학생들과의 대화를 되새김질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 중 하나가 ‘법과 예술’이라는 나의 수업을 들은 어느 여학생과 나눈 앙드레 지드에 대한 대화다. 어려서부터 존경했다는 교회 목사의 추천으로 읽은 『좁은 문』과 『전원교향악』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면서 기독교인으로서 당연히 그런 플라토닉러브를 꿈꾼다고 하는 그 학생에게, 그리고 부모를 비롯하여 주변의 기독교인들이 모두 그런 플라토닉러브를 했다고 말하는 학생에게 지드의 그 소설들은 플라토닉러브를 찬양하기커녕 저주한 소설이라고 했더니 너무나 놀라워하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러나 학생의 놀람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앙드레 지드(Andre Gide, 1869~1951)

 

어쩌다 법대 교수를 지낸 덕분에 엄한 가부장이나 도덕군자니 도그마주의자니 보수주의자니 따위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앙드레 지드의 아버지도 법대 교수였고 어머니는 청교도였는데 지드의 문학은 그런 부모에 대한 반항으로 시작되었다. 아버지가 일찍 죽은 뒤 어머니는 철두철미 엄격한 종교교육을 지드에게 강요했다. 뒤에 그 교육은 자기혐오와 죄의식을 남겼을 뿐이었다고 회상한 지드는 그것들을 극복하고자 19세부터 창작을 시작하였다. 죄의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자각하고는 더욱 심해졌으나 죄의식의 뿌리였던 기독교의 원죄를 부정하고 기독교의 본질을 영육의 합치를 통한 삶의 충만으로 새롭게 보면서 죄의식에서 어렵게 벗어났다. 물론 그 과정은 전혀 쉽지 않았고 평생토록 이어졌다. 그의 모든 작품은 그러한 극복과정의 흔적이기에 절실하다.

 

사회주의자 지드의 에고티즘(Egotism)과 무소유

 

지드가 창조한 인물들은 대부분 그 자신의 분신인 아나키적인 이단아들로 개인을 얽어매는 규율과 제도, 교육과 같은 체제 질서에 반항하며 오로지 자신에 충실하고자 한다. 특히 종래 일본에서처럼 『배덕자』로 번역된 『반도덕주의자』(동성식 교수의 새로운 번역 제목이다)의 주인공은 현모양처의 극단적인 희생으로 건강을 회복하지만 도덕과 질서에 반항하고 자신에게 충실하고자 아내를 배신하고 타락하여 파멸한다. 이기주의라고도 잘못 번역되는 에고티즘의 전형인 주인공을 통해 ‘소유한다는 것은 곧 소유당하는 것’이라는 이유에서 철저한 반소유를 주장함에도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위에서 말한 학생이 놀라워했듯이 말이다. 한때 유행한 ‘무소유’는 앙드레 지드에서도 찾을 수 있는 것이었음에도.

 

 

반소유를 ‘헐벗음’에 대한 옹호라고 말하는 지드는 그것이 종교 본래의 가르침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버리고 종교를 완전히 세속화하여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족쇄로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권력과 물질에 속박되지 않은 자아의 진정한 해방인 ‘헐벗음’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지드의 반항적인 반소유는 산속에 칩거하여 도를 닦는다는 무소유와는 다르다. 세상을 피해 세상 밖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세상에 반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이나 국가, 명예나 물질, 사상이나 주의 같은 어떤 외부적인 것에도 속박되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성을 확보하자는 것이 그의 에고티즘이다. 그러니 그것을 이기주의는 물론 개인주의라고 번역해도 무리가 있다. 나는 ‘자아주의’라고 번역함이 옳다고 본다. 우리에게는, 아니 나에게는 여전히 자아주의가 부족하다고 느끼기에 그 정확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드의 반소유가 이른바 무소유와 다른 점은 반자본주의라고 하는 점이라고 하면서 지드가 사회주의자라고 말했을 때, 학생은 더욱 놀라워했다. 반소유에서 오는 해방감은 타자와의 연대로 나아가는 점에서도 개인의 수련에 그치는 무소유와 다르다. 그래서 지드는 내가 행복하려면 만인이 행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만인의 행복은 반드시 개인의 속박과 희생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고 본다. 지드의 자아주의는 공동체에 봉사하는 것이고 공동체는 개인을 존중한다. 따라서 1930년대부터 지드는 스탈린을 비난했으나 개인의 자유를 전제하는 사회주의 자체에 대한 믿음은 평생 변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지드는 그 후 백 년 동안의 여러 가지 인간적 사회주의의 원조가 된다.

 

좌우 어느 유파와도 거리둔 자아주의 지식인

 

그런 지드가 스탈린을 비판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음에도 1930년대에 한반도에 건너온 지드는 그 점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찬반 논쟁에 휩싸였다. 평등 사회에 동의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의 절대 권력에는 찬성하지 않은 지드는 국가나 국민을 숭상하는 우파나, 당파나 계급의 갈등을 조장하는 좌파나, 센티멘탈리즘에 젖어 비현실을 갈구하는 상징주의 등등 당대의 어떤 유파와도 거리를 두었다.

인간을 고정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항상 변하고 생성하는 존재라고 믿은 지드는 자기를 억압하는 것들에서 벗어난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학수고대하면서 평생 기성의 질서와 규율에 대한 반항을 계속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점에서 지드는 제행무상과 집착에서의 해방을 말하는 불교와도 가깝지만 역시 전통이나 질서에 대한 영원한 반항을 주장한 점에서는 불교와 다르다. 지드는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부단한 유동성을 뚫고 영원한 열정을 몰아가는 자는 행복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가정이나 가족은 물론 우리가 안심하고 쉴 수 있고 기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미워한다. 그리고 변함없는 애정, 일편단심의 사랑, 사상에 대한 집착을 싫어한다. 그러면서 올바름을 훼손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대기상태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

1930년대 유럽에서 유명세를 탄 지드의 작품은 거의 같은 시대에 한반도에서도 극소수 문학도 사이에서 유행했지만 그것은 그의 본령인 소유에 대한 반항, 진정한 개인주의로서의 자아주의, 구세대의 모든 체제에 대한 증오라는 점들보다도 그의 사상 전향 문제를 둘러싼 것이어서 황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이 당대의 국가, 당파성, 정치 등에 의해 위축된 개인의 주관성이나 개성을 옹호하고자 한 것이라고 해도 그렇다. 이를 무엇보다도 개성을 억압하는 가정이나 학교나 교회 등의 여러 제도에 대한 반항이었던 지드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고 볼 수 있을까?

 

 

외국문학 작품으로는 매우 빠르게 1948년에 우리말로 처음 번역된 『좁은 문』과 『전원교향악』은 지드가 그 전 해 말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과 관련이 있었고, 당시의 평가도 지드의 반항보다는 성실성의 교훈이라는 점에 중점이 주어졌다. 그래서 지드는 여전히 혼인빙자간음죄나 간통죄를 존치한 목표인 플라토닉러브의 작가 정도로 오해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위 좌우나 신구나 종파의 대립이 있어도 충효나 플라토닉러브는 여전히 우리의 공통된 이상이 아닌가? 그것도 법으로 강요한 사랑 아닌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을 더럽힌 것이 아니었는가?

 

주관을 긍정하고 자신의 반항을 받아들이기까지

 

어려서 소년소녀문고로 『좁은 문』과 『전원교향악』을 읽고서 오로지 정신적인 사랑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성적 욕망에 죄의식을 가지고 가출은 물론 자살까지 시도한 적이 있는 나는, 가정이나 학교에 대한 반항을 하면서도 항상 죄의식을 수반했는데, 같은 경험을 쓴 지드의 『지상의 양식』이나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으면』을 읽은 것은 똑같은 경험을 하고 난 훨씬 뒤였다. ‘나’의 ‘주관’이나 ‘개성’ 등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도 서른이 훨씬 넘어 처음으로 월급이라는 것을 받고 난 뒤에야 가능했다. 동시에 아버지가 되어 아이들의 반항을 받아내야 했던 내가 스스로의 반항을 완전히 긍정한 것은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였다. 그처럼 60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나는 마음의 해방을 느꼈지만 여전히 평생 충효를 강요한 아버지 아바타 같은 어머니가 곁에 있어서 항상 눈치를 본다. 아이들에게는 절대로 효도를 강요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지만 조부모의 충효 교육은 손자들에게도 뿌리 깊게 박혔다.

 

 

그런 내가 30여년 학생들을 가르치고 여러 권의 책을 쓰면서 지드가 플라토닉러브를 미화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반대라고 하며 지드처럼 반항아로 살라고 말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나와 지드를 이야기했던 그 학생이 그 뒤 어떤 사랑을 하고 결혼을 했는지, 부모와 목사의 명에 따라, 아니 신의 명에 따라 고시를 했는지, 아니면 혹시 지드처럼 고민했을지 몹시 궁금하다. 고시 공부를 권하지 않고 비판적 지식인이 되기를 권한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그 학생은 아마도 평생 내 글을 읽지는 않겠지만, 혹시 이 글을 읽는다면 꼭 소식을 전해주기 바란다.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저술가

일본 오사카시립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 영국 노팅엄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에서 연구하고, 일본 오사카대, 고베대, 리쓰메이칸대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영남대 교양학부 명예교수로 있다. 전공인 노동법 외에 헌법과 사법 개혁에 관한 책을 썼고, 1997년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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