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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 동북아문화의 원형탐색
<학술대회> : 동북아문화의 원형탐색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0.11.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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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1-23 11:48:18
동북아시아와 샤머니즘. ‘동북아문화의 원형탐색’이라는 주제로 지난 달 28일 부경대에서 열린 동북아시아 문화학회(회장 강남주 부경대 총장) 2000 국제학술 심포지움에서는 후자를 전자의 원형으로 읽어내려는 시도가 진행됐다. 일제시대와 70년대 권위주의 독재정부 시절, 지워버리려 폭력적인 방법까지 서슴지 않았던 그 샤머니즘이 동북아 문화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그렇다면 샤머니즘이 ‘사회·문화의 문법’이라는 한 서양 학자의 언급은, 우리 역사의 맥락에서 볼 때 오히려 밋밋한 강조일지도 모른다. 식민지 근대 이전, 우리에게 샤머니즘은 기복신앙의 형태로 사람들의 일상을 그대로 드러낸 삶의 표현형이었던 것이다.

이미 늦은 문화원형 탐색작업
당시 샤머니즘과 더불어 소멸돼버렸던 전통문화는 7, 80년대 진보의 이름으로 복원된 바 있다. 세계에서 그 예를 찾기 힘든 전통과 진보의 결합은 우리 문화의 특이성으로 자리잡았다. 지난 해, 고대상고사 복원을 둘러싼 논란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복고적인 민족주의가 구심점으로 작용하는 위험을 지적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절맥의 역사를 발굴하는 작업 자체가 쇼비니즘과 전근대적 행태로 매도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샤머니즘 또한 복원과 원형탐색이 오래 전에 시작돼야 했다. 그렇다면 샤머니즘이 동북아의 보편성이 된다는 주장은, 자칫 ‘과거 동북아에도 문화가 있었다’는 식의 췌사로 들릴 수 있음이 지적돼야 할 것이다. 유독 동북아에만 샤머니즘이 뿌리였겠는가. 어느 대륙, 어느 나라건 샤머니즘이 공백인 채로 고대를 살아온 곳이 있겠는가.
‘동북아 문화의 정체성:샤머니즘의 처지에서’를 발표한 김열규 인제대 교수(국어국문학)는 이 물음을 피해가지 않았다. 김교수는 ‘샤머니즘은 그 자체로 범지구적인 보편성을 지닌다’는 하너의 명제에 기대어, 북아시아 샤머니즘의 지역적 보편성으로 좁혀 들어가는 방법론을 구사했다. 애초에 보편적 현상인 샤머니즘은 논외로 한 채, 그는 동북아시아에만 통일된 샤머니즘의 유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거로 동북아만의 보편성을 주장했다. 퉁구스-만주족, 몽고족, 한국과 일본에서 △샤먼과 신령 사이의 특수한 관계, △샤먼의 사회성과 전통성, △엑스터시의 활용이라는 세 범주가 일치한다는 것이다.
김교수의 문화인류학적 탐침은 원형을 발굴해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동북아문화의 원형탐색’이라고 명명된 이번 학술대회의 의도는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하자는 발굴주의를 넘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영육 이원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행복한 합일의 ‘실락원’이 있었음을 고증하면서 동시에 靈性을 치유하려는 시도의 일단이라 볼 수 있다.

실증과 발굴, 더불어 넘어서기
반면 나카니시 유우지 후쿠오카대 교수(민속학)의 ‘災因 해석에 있어서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목의 발표는 실증에 치우쳐 있었다. 나카니시 교수는 일본에서는 대개 生靈으로 인해 재난이 일어나는데 비해 한국은 조상의 死靈이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 착안해 각각 공시성과 통시성이라는 틀을 내세웠다. 민속문화, 넓게 보면 샤머니즘이 사회적인 현상으로 연구됐던 일본의 연구풍토에서 선회해 시간성을 가미한다면 연구의 시야가 넓어질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풀어낸 것이었다.
알낀 세르게이 러시아 노보시비르크 주립대 교수(인류학)는 ‘동북아 고대 문화에서의 ‘영혼’의 아이디어 문제’에서 고고학적 접근으로 일관했다. 알낀 교수는 “동아시아 문화에서 유충과 어린아이의 탄생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며 한국의 曲玉, 일본의 마가따마, 중국 신석기 시대 출토품에서 나타난 곤충의 형상들을 자료화면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정상박 동아대 명예교수(국어국문학)는 사례의 보편성이 부족하며 유충 이외에도 다른 형태의 유물이 발견된다며 알낀 교수의 논지에 반론을 폈다.
원형을 탐색하려는 시도는 발굴과 실증이 진행되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어려운 과제를 남기며 학술대회는 마무리됐다. 삶 속에서 죽음의 세계를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었던 그 동아시아의 문화는 어쩌면 과거의 풍경으로만 남을지 모른다는 의구심과 함께.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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