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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이 창궐할 때는 깊은 고독이 유용
전염병이 창궐할 때는 깊은 고독이 유용
  • 유무수
  • 승인 2021.07.2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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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치명적 동반자, 미생물』 도로시 크로퍼드 지음 | 강병철 옮김 | 김영사 | 364쪽

각 시대의 최고 권력자가 아니라
미생물이 배후에서 역사를 조종했다

페스트가 궤멸의 타격력으로 중세 유럽을 강타했을 때 아무도 작은 미생물의 존재를 몰랐다. 두려움과 공포, 온갖 돌팔이의 미신과 효력 없는 치료법이 난무했다. 감자잎마름 병이 아일랜드 감자의 90%를 휩쓸고 굶주림과 추위가 몰아쳤을 때 사람들은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추위를 막기 위해 부둥켜안고 지냈다. 그 순간 그들은 몸니(body lice)에 의해 발진티푸스를 옮기는 ‘리케챠’라는 치명적인 미생물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더욱 쉽고 빠르게 전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흑사병이 나돌 때 교황 클레멘스 6세는 주치의의 조언에 따라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서재에서 격리생활을 유지하며 살아남았다. 전염병이 창궐할 때에는 깊은 고독을 선택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미생물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유행병의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이 제기되고 있었다. 1546년 이탈리아의 의사 지롤라모 프라카스토로(1478∼1553)는 유행병은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파되는 씨앗에 의해 옮겨진다고 주장했다. ‘세균설’이었다. 이 가설은 1676년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라는 직물상이 개발한 렌즈에 의해 힘을 얻는다. 그는 옷감의 밀도를 확인하기 위해 제작한 현미경으로 후추를 관찰하던 중 아주 작은 ‘극미동물(animalculae)’이 돌아다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이후 그는 어디에서든 극미동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람의 치아를 긁어내어 들여다보자 아주 많은 벌레가 바글거리고 있었다. 키스 전의 야무진 양치질은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제너의 우두접종법으로 천연두 사망자 급감

1880년 프랑스 군의관 샤를 루이 알퐁스 라브랑은 말라리아에 시달리던 병사들의 혈액을 관찰할 때 충격을 받았다. 환자의 혈액 속에서 검은 색소가 부풀어 올라 터지면서 10여 마리의 미생물을 방출했다. 혈액 속에서 미생물은 미친 듯이 나대고 있었다. 오한과 발작에 시달리다 사망하는 말라리아 환자의 대부분은 어린이였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당도했을 때 약 800만 명이었던 히스파니올라(오늘날 아이티) 원주민은 전에 없었던 전염병의 작용으로 40년 뒤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 주민의 언어와 문화도 영원히 소멸했다. 그러나 백신접종의 물꼬를 처음으로 튼 에드워드 제너의 우두접종법을 인해 천연두 사망자가 1801년에 2천명에서 1822년에 단 11명으로 감소했다. 그 이전 천연두의 (환자 1명이 새로 감염시키는 평균 환자 수, 1보다 크면 큰 전염병 가능성 있다)는 5~10이었고, 유럽에서 매년 4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의학미생물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각 시대의 최고 권력자들이 좌지우지했던 것처럼 보이는 인류 역사의 배후에 미생물이 가했던 결정적인 작용(알렉산더, 나폴레옹, 십자군, 징기즈칸 등의 전쟁 중단, 로마의 몰락), 미생물의 기원(40억 년 전 단세포생물 탄생)과 미생물이 창궐할 수 있는 환경조건(전쟁, 교역, 여행, 밀집생활, 비위생적 환경), 미생물로 인해 발생한 전염병(말라리아, 수면병, 홍역, 주혈흡충증, 아테네 역병, 안토니누스 역병, 유스티니아누스 역병, 림프절 페스트, 천연두, 매독, 콜레라, 감자잎마름병, 발진티푸스, 장티푸스, 결핵, 에이즈), 그리고 세균학·생물학·분자생물학·의학 분야의 연구자들이 찾아낸 ‘유레카의 순간들(전자현미경 개발, 전염병 감염경로 파악, 우두접종법, 페니실린 발견)’으로 속수무책으로 절망하던 사람들에게 어떤 희망이 전해질 수 있었는지를 서술했다. 

신체는 과거에 마주친 병원체와 같은 병원체에 다시 감염되지 않는 특징을 지녔다. 그 발견 다음, 사멸시키거나 약화시킨 미생물을 미리 주입하여 자연적으로 감염에 걸린 것처럼 신체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 면역학의 유레카가 없었다면 오늘날 백신주사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며,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중세 시대의 대책 없는 페스트의 공포를 재현했을 것이다. 자주 손 씻기는 지저분한 미생물과 접촉하는 가능성을 줄인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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