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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개편 둘러싼 攻防 치열…상위 10개大 집중투자
미국식 개편 둘러싼 攻防 치열…상위 10개大 집중투자
  • 이종래 경상대 사회과
  • 승인 2005.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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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대학개혁]4. 경쟁의 늪에 빠진 독일대학

이종래 /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사회학)

 독일이라는 나라를 한번이라도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당혹스런 경험을 하였을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번화한 거리라면 흔하게 있는 24시간 편의점조차 제대로 찾기 어려워 밤늦은 시간이면 생수 한 병 사먹기에도 어려운 경험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독일사회를 미국인 혹은 미국적인 생활방식에 젖어 있는 외국인들은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다는 시선으로 쳐다보는 것이 다반사이다. 하지만 각종 규칙과 절차를 중시하는 독일사회의 유연성과 순발력 부족문제는 물론 어제, 오늘의 일이 결코 아니다. 이런 독일사회에서 대학개혁 논쟁은 끊임었이 있어왔다.


'복지국가 재편'과 연결돼

독일대학이 지녀온 전통을 획기적으로 바꾼 최초의 역사적 사건은 1968년의 학생운동일 것이다. 이 시기에 집권한 빌리 브란트정부는 대학교육은 젊은 세대에게 기회균등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장치이자 제도이어야 한다는 정치적 대타협을 일구어 낸다. 대학이 엘리트 교육기관에서 대중교육기관으로 성격을 바꾸게 되면서 대학의 문턱은 말 그대로 사라지게 된 다.

 

이것은 1970-80년대에 이르러 대학생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현실화한다. 하지만 대학교육의 대중화는 또 다른 후유증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독일대학의 구조변화는 이미 예견되어져 왔다. 늘어나는 학생수를 감당할 만큼 교육비용을 누군가 지불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대학의 구조재편을 둘러싸고 현재 벌어지고 있는 독일사회 논란의 핵심은 바로 복지국가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이런 사회적 소용돌이가 이제 정치권으로 비화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에 우선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독일 연방정부를 집권하고 있는 사민당(SPD)정부는 독일의 대학제도를 현대화한다는 거창한 정책을 세워놓고 대학의 기본제도를 사실상 전부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연방정부는 독일의 대학제도가 지나치게 독일적이어서 국제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독일대학의 학사과정인 디플롬(Diplom)이나 마기스터(Magister)의 경우 국제표준적인 학․석사과정과 전혀 일치하지도 않기 때문에 2010년까지 독일대학의 과정을 국제표준화 시킬 계획과 함께 독일대학에서 요구하는 교수자격시험(Habilitation)은 우수인재를 독일 바깥으로 내모는 모순을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교수자격시험제도를 폐지하고 주니어교수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 연방정부 교육부의 정책내용이다.

 

물론 이런 정책의 이면에는 미국적인 규칙이 지구적인 규칙으로 전화하고 있는 현실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다시 말해 독일대학역시 신자유주의적 경쟁압력이 날로 거세어지는 현실을 더 이상 무시하듯이 비껴서 있을 수 없다는 사고가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헌재판결 이후 정치권 논쟁 격화

이런 연방정부의 시도에 대해 보수적인 기민련/기사련(CDU/CSU)이 집권하고 있는 지방정부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독일식 연방제는 연방과 지방정부의 업무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화나 교육은 지방정부가 우선하여 관여 한다는 전통적인 역할 분담을 무시하는 월권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기민련/기사련이 집권하고 있는 바이에른(Bayern), 바덴-뷔르템베르그(Baden-Württemberg), 함부르그(Hamburg), 짜아란트 (Saarland), 작센(Sachsen), 작센-안할트(Sachsen-Anhalt) 주정부는 이런 연방정부의 교육정책을 헌법재판소에 제소하여 지난해 위헌판정까지 받아내었다.

 

즉 헌법재판소는 연방정부가 대학교육제도에 대하여 직접 개입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게다가 헌법재판소는 올해 1월 대학수업료납부제도 도입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기각하여 보수당의 정책에 손을 들어 주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행한 이 두개의 판결은 독일대학의 구조재편을 둘러싸고 정치권의 논쟁을 격화시키는 계기로 된다.


‘시장 적응’목표는 동일…엘리트 육성 합의

수업료제도 도입은 수익자 부담원칙과 위배되지도 않고 재정난에 허덕이는 대학을 구출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보수정당은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집권당인 사민당은 수업료제도를 도입할 경우 지지계층의 이반현상을 염려하기 때문에 이 제도의 도입에는 표면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또한 대학구조의 기본을 이루는 신규교원 충원제도를 두고 보수정당은 지방정부의 관여업무라는 이유로 전통적인 방식을 주장하지만, 사민당은 재정난에 허덕이는 전체 대학의 개혁보다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 주니어 교수제도를 도입하려고 시도한다. 대학교육의 정책을 두고 집권당과 반대당이 마치 정면으로 충돌하듯이 보이긴 하지만 이 둘은 공통적인 하나의 접점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독일식 대학교육전통을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보수정당의 명분론은 수업료제도 도입의도에서 보이듯이 공공재적인 대학교육의 성격을 시장적인 교환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다.

 

또한 지방정부의 교육재정 부족을 연방정부가 충당하려는 집권 사민당의 명분론은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압력을 의식한 성과주의 혹은 업적지상주의의 부산물이다. 쉽게 말해 보수정당은 학생들의 경쟁압력을 고취하려면 수업료 도입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고, 사민당은 세계시장의 경쟁압력에 대응하는 것이 필연적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마치 서로 다른 주장인 듯이 보이지만 이 둘은 시장상황에 적응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동일할 것이다. 

 

이런 동일성은 하나의 주제에서 너무나 쉬운 의견일치로 나타나고 있다. 즉 연방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엘리트 대학 육성계획에 집권 사민당과 보수정당이 이구동성으로 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일 정치권은 향후 5년간 약 4억 유로를 엘리트 대학 육성을 위해 지원하기로 합의하였다.

 

이같은 합의는 독일대학이 국제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학과의 학문 후속세대를 지원하는 사업과 대학의 연구수준이 세계최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 10개의 엘리트 대학에 한해 집중 투자하는 사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대학이외 연구기관의 예산을 2010년까지 연간 3%씩 인상하기로 결정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해 독일 전체대학의 구조개편은 정치적 공방으로 날을 지새우면서도, 선택받은 소수를 위한 사업에는 이견이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상황이 지금 독일에서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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