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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하나로 전국 방방곳곳에 '획'을 긋다
글씨 하나로 전국 방방곳곳에 '획'을 긋다
  • 교수신문
  • 승인 2021.07.2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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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100주년 맞아 출간된 『일중 김충현의 삶과 서예』

 

2021년은 20세기 한국 현대서예사에 한 획을 그은 일중 김충현(1921-2006)의 탄생 100주년  되는 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 여덟 명이 각기 다른 관점으로 김충현을 조명한 일중 김충현의 삶과 서예를 펴냈다. 

김충현은 조선 후기를 풍미한 명문가 안동김씨의 후예다. 14대조는 김상헌(1570-1652), 12대조는 김수항(1629-1689), 7대조는 김학순(1767-1845), 5대조는 조선 23대 순조의 부마인 창녕위 김병주(1819-1853), 김병주의 손자인 증조부는 대한제국 말 영의정을 지낸 항일지사 김석진(1843-1910)이다. 5대 조모인 순조의 둘째 딸 복온공주와 부마 김병주의 제사를 모시는 곳이 ‘북서울꿈의숲’에 있는 창녕위궁재사다. 당시 공주궁이었던 이곳의 명칭은 오현(梧峴)이었는데, 김충현은 여기서 생장하고 혼인하고 장녀 단희를 얻은 후 분가했다. 이곳에서 증조부 김석진, 조부 김영한, 부친 김윤동, 김충현 오형제와 그 자식들로 구성된 5대 40여 명이 1950년 7월 초까지 43년간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다. 김충현의 형님인 김문현의 아들 김통년도 오현에서 중부(仲父) 김충현과 함께 생활했다.

책은 김통년이 쓴 「우리 집안의 내력과 일중 중부와 함께 지내던 오현」으로 시작한다. 글은 오현의 유래와 상징성, 선조의 절의정신과 유훈의 실천, 집안 서맥과 가학 전통으로 나눠진다. 필자는 집안 서맥의 시조를 김상용·상헌 형제로 보고, 그것이 김수증·수항 형제로, 김학순으로, 창녕위 김병주로, 김충현의 둘째 부친 김순동으로, 마침내 김충현·응현 형제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가학으로 글씨를 연마한 김충현 오형제 가운데 둘째 충현과 넷째 응현은 자신만의 색깔로 20세기 서단의 거목이 되었고, 김충현의 장녀 김단희가 현재 집안의 서맥을 잇고 있다.

「김충현 한문서예의 시기별 변천사」를 쓴 중국 유학생 쑤다오위(蘇道玉)는 김충현·김응현 형제의 서예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일부분인 이 글에서 필자는 김충현의 한문서예를 축적기, 탐색기, 태변기, 소요기로 세분했다. 그는 김충현의 한문서예를 중묘(衆妙)를 드러낸 ‘신융합’의 결정체라고 주장한다. 한문서예의 원조인 중국 서예학자의 관점에서 한국 서예가의 한문서예 특징을 도출해 내는 과정과 결론이 흥미롭다. 

「조선 500년의 꽃, 일중의 한글서예로 피어나다」를 쓴 정복동은 김충현이 법고창신의 교육관을 지니고 한글 고체와 궁체 연마에 힘썼다고 말한다. 한글서예에 대한 그의 애정과 집념은 애국의 표현이다. 증조부 김석진은 한일합방 후 분을 참지 못해 오현에서 자결했고, 조부 김영한은 일본식 교육을 거절하고 가학으로 자손들을 교육시켰다. 김충현의 한글서예 연구는 자신의 방식으로 선조의 절의정신을 계승한 것이다. 필자는 김충현이 한자와 한글, 고체와 궁체를 혼서 또는 병서하면서 서로 ‘어울림’의 조형을 추구했다고 평가한다.

「일중의 국전작품, 국한문 병진으로 창신의 서예를 열다」를 쓴 김수천은 김충현을 ‘국전의 역사’라고 말한다. 김충현은 국전에 서예를 포함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고, 그 결과 미술계에서 서예의 위상이 훨씬 높아졌다. 김충현은 한문서예와 한글서예를 동등하게 중히 여기고 국한문 병진만이 한국 서예가가 살 길이라고 생각했다. 필자는 해방 후 30년간의 국전 출품작을 통해 ‘일중체’가 탄생했으며, 국한문 병진을 통한 창신의 서예관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말한다. 

「일중서예의 선문, 균형과 조화의 응축」을 쓴 문희순은 문학 전공자답게 김충현 작품의 선문 경향과 특징을 예리하게 분석했다. 필자는 김충현의 선문을 균형과 조화, 청유연하(淸遊煙霞) 즉 자연에의 심취로 축약한다. 유가적 가정환경에서 생장한 김충현이지만 그의 작품에는 다분히 도가사상이 스며있다고, 즉 자연이 가장 깊게 자리하고 있다고 필자는 강조한다. 

「안동김문의 문예의식과 김충현」을 쓴 이종호는 오랫동안 안동김문을 연구한 한문학자다. 필자는 김통년이 집안 서맥의 시조로 본, 전주체(篆籒體) 서법 전통을 세운 김상용, 서화 감상 취미를 생활화한 김상헌 형제, 금석문 연구와 팔분서에 뛰어난 김수증, 전각 애호가인 김수항 형제, 김수항의 아들 6창 가운데 ‘삼주체(三洲體)’를 유행시킨 김창협, 필격이 청진(淸津)하고 고고(高古)한 김창업 형제, 신운(神韻)이 넘치는 문예적 역량을 지닌 김학순, 가학으로 자손을 가르친 김영한의 문예의식이 김충현의 법고창신적 서예술 세계의 뿌리가 되었다고 말한다.

「문현·충현·창현·응현·정현 5형제의 서예, 20세기 문인서예를 꽃피우다」를 쓴 배옥영은 시서에 뛰어난 김충현 오형제 문인서예의 바탕에는 가학이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가문과 가학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무의식 중에 전이묵화(轉移黙化)되는 문화유전자를 체득하였고, 한학에 대한 기반과 문장력은 물론 선조의 정신까지 전승하여 결국 문인서예를 활짝 피우게 되었다고 필자는 말한다.

마지막 글은 정현숙이 쓴 「김충현 금석문과 현판의 문화사적 위상」이다. 김충현은 1950-80년대까지 전국의 사적지, 유적지, 사찰 그리고 공공 건축물에 많은 비문과 현판을 남겼다. 김유신, 황희, 이순신, 윤봉길 등 애국선열과 충신 심지어 무명용사들을 기리는 곳에, 그리고 서울대학교, 한강대교, 대법원 등 국가 주요 건축물에도 그의 묵향이 남아 있다. 필자는 이처럼 한국사가 고스란히 투영된 김충현 금석문과 현판의 문화사적 위상은 참으로 크다고 말한다.

여덟 필자는 선조의 문예의식과 대대로 전승된 가학, 한문서예와 한글서예, 선문 경향, 금석문과 현판 등 다양한 각도로 김충현을 들여다보았다. 이런 인문학적 환경과 절의적 성품을 지닌 서예가가 이후의 한국 서단에서 다시는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이 책은 20세기 명필 김충현을 드러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정현숙 원광대 연구교수

원광대 서예문화예술학과에서 석사를, 미국 펜실베니아대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했다. 이천시립월전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서예학회와 한국목간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에 우현학술상을 수상했으며, 『신라의 서예』, 『삼국시대의서예』 등의 저서를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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