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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학원폭력과 파시즘
[교수논평] 학원폭력과 파시즘
  • 김선욱 숭실대
  • 승인 2005.03.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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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회에 대한 기사가 여론을 환기시키면서 학원폭력 문제가 다시금 우리의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중 고등학교를 다녀본 우리들은 학원폭력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님을 알지만, 이 문제에 유념하게 되는 것은 이 시대가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와 같은 군사주의 시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폭력문화가 학원에서, 심지어 대학에서까지도 만연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새삼스러운 놀라움 때문일 것이다. 철학자의 입장에서 이 문제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폭력이 재생산되는 구조가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폭력이란 본인의 의지에 반해 정신적, 신체적으로 무엇을 강요하는 것이다. 사상과 이념, 즉 생각에 있어서의 폭력은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고, 특정한 사상 체계를 자신의 것으로 갖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문화적인 폭력은 특정한 삶의 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여 자신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행동방식이 규정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러한 폭력의 본질은 다원성의 몰인정과 획일화의 강요이다. 차이와 다름이 발견되는 순간 바로 교정 작업과 징계가 뒤따를 때 신체적 폭력은 자연스러운 하나의 귀결로서 간주되기도 한다.

 

이처럼 폭력은 획일주의의 표면이고, 차이의 몰인정의 필연적 결과이다. 마찬가지로 학원폭력은 획일적이고 파시즘적인 학교문화의 한 양상일 뿐이다. 수많은 대안학교에서처럼 아이들의 다양성이 충분히 인정되고 자율성이 확실하게 보장되는 가운데 일진회가 자리 잡을 수 있는가? 구조적 폭력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가? 기존의 학교 문화에 대한 본질적 검토 없이는 학원폭력의 근원적 해결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우리의 학교에서는 제도적으로 파시즘적 문화가 재생산되는 구조가 가동되고 있다는 것이다. 크게는 한국의 전통사회 가치를 보존하려는 한국의 학교들의 노력이 바로 그것이다. 정확하게 문제를 지적하자면, 중 고등학교에서 시행되는 도덕교육 자체가 파시즘을 재생산하는 기계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도덕교과서는 타인과 공동체만을 고려하는 삶을 가치 있는 삶으로 규정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건강한 배려를 중요하게 가르치지 않는다. 바람직한 자아실현이란 타인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교사나 상급자에 대한 예절은 강조되지만, 학생에 대한 선생의 예의나 하급자에 대한 상급자의 예절은 언급되지 않는다. 자율적 판단에 따르는 삶보다는 타율적 규정에 대한 준수를 강조한다. 사회와 국가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면서 개성에 충실한 삶에 대한 규정이 모호하다. 국가에 대한 개인의 책임만 강조할 뿐, 국가에 대한 개인의 권리나 개인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의무는 무시한다. 온갖 갈등을 불온시하는 태도를 교육하며 법과 규칙에 대한 맹목적 순종을 강요한다. 나라의 법은 말할 것 없고 학교의 교칙까지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요한다. (김상봉, '도덕교육의 파시즘' 도덕교육 제 36호.)

 

학원폭력은 보다 심층적인 질환의 표피일 뿐이기 때문에 질병에 대한 근원적 진단과 치료가 없이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우리 교육의 병인 파시즘 문화의 재생산 구조를 명확히 인식하고, 교육을 통해 재생산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적 차원에서 관습의 형태로 의식 속에서 재생산되는 구조를 짚어내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존댓말을 사용하고 강요하는 문화에 대한 반성, 수직적 위계질서를 강요하는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파시즘 문화를 재생산하는 기계인 중 고등학교 도덕교과서의 근본적 재검토와 수정작업이 학원폭력 해결에 있어 가장 시급한 과제가 될 것이다.

 

김선욱 / 숭실대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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