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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비이성의 연금술, '스승 이데올로기'
[문화비평]비이성의 연금술, '스승 이데올로기'
  • 이상길 전북대
  • 승인 2001.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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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28 16:00:05

이상길 / 전북대·신문방송학과

때로 죽은 말(死語)이 산 사람을 잡는 경우가 있다. 학창시절의 내 기억 속에서는, 불행하게도(!) ‘스승’이라는 말이 그랬다. 89년이었던가. 고작해야 일년에 한 번 기념일에나 들을 수 있었던 그 말이 갑자기 언론매체를 뒤덮은 적이 있었다. 전교조의 결성 때문이었다. ‘스승’이 노동자를 자처하다니, 그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수구언론의 개탄과 우려가 여론을 전교조에 부정적인 쪽으로 몰아갔다. 그 과정에서 천 오백여 명의 교사들이 해직 당하고, 제자들로부터 격리되었다. 노태우 정권은 껍데기만 남아버린 ‘스승’이라는 말을 이용해, 열악한 교육환경과 잘못된 입시제도를 비판하고, 노동조건의 개선을 용기 있게 요구한 진짜 ‘스승들’을 잡았다.


‘스승’이라는 말의 전과가 단 한 번에 그쳤던 것은 아니다. 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시위도중 경찰에 맞아죽은 사건이 일어났던 즈음에도, 그 말은 놀라운 위력을 발휘했다. 정권의 폭력성에 대한 분노가 ‘분신정국’이라는 극한적 저항상황으로까지 이어졌을 무렵, 당시 총리였던 정원식 씨가 외대를 방문했다가, 밀가루와 계란 세례를 받고 ‘폭행’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각 신문은 ‘스승의 멱살을 잡는 패륜아’들을 비난했고, 방송은 ‘교수의 신분’으로서 강의하러 갔다가 봉변을 당한 ‘환갑 넘은 노인’의 비디오를 틀고 또 틀어댔다.

 그 상황에서 정원식씨가 교육부 장관 시절 전교조 선생님들을 몰아낸 정책집행의 당사자였다던가, 그가 당한 폭행이라는 것이 사실은 병원 갈 정도도 안 되는 단순타박상이었다던가, 공인에 대한 밀가루나 계란세례는 외국에서는 일상화된 항의표시방법이라는 등의 논리는 아무런 변명이 될 수 없었다. 결국 정권의 부도덕성은 ‘도덕적으로 타락한 운동권학생들’에 대한 수구언론의 공분 속에서 슬며시 없었던 일이 되어 버렸다. 개인적으로는 스캔들을 만들어내는 언론매체의 능력과 그것을 영악하게 활용하는 정권의 순발력 못지 않게, 스승이라는 ‘공허한 말’이 한국사회에서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힘을 실감하게 된 계기였다. 그것은 정치적인 문제를 윤리로 변형시키는 놀라운 연금술의 化金石이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학계에 몸담게 된 지금,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그 화금석의 효력이 학문에까지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학창시절에 보았던 연금술의 주체가 수구언론이었다면, 새로운 연금술사는 바로 자기 자신 ‘스승’이면서 또 ‘제자’인 학자들이다. 이 연금술 역시 권위주의와 비이성의 연기를 피워낸다는 점에서는 옛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학술논문에서 ‘먼 스승’의 친일행각을 비판한 서울대 김민수 교수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재임용심사에서 탈락했고, 서울시립대 대학원생이었던 이명원 씨는 비평문에서 ‘스승의 스승’을 욕보였다는 이유로 제도권 내에서 학문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이성과 합리를 지향하는 대학사회에서 이런 일이 버젓이 일어날 수 있다면, 이는 무엇보다도 학자들이 내면화하고 있는 잘못된 ‘스승 이데올로기’ 때문일 것이다. 스승의 말이기에 반박할 수 없고, 스승의 요구이기에 부당해도 참고, 원하지 않는 일조차 해야만 하는 ‘제자들’만이 양산되는 학계라면, 학문의 발전은커녕 생활의 민주화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회 곳곳의 ‘스승 이데올로기’는 하루빨리 해체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특히 학계와 대학이 앞장서야 한다. 가장 핵심적인 과제는 대학원생들과 신진연구자들을 학문공동체의 동등한 동료로서 대우해주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불평등한 인격적 관계의 바탕이 되는 도제식의 교수-대학원생 관계를 철폐하고, 신진연구자들이 최대한의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안정된 강사료와 연구여건을 보장하는 등의 제도적 개선이 요구된다.
언어학자가 아닌 나로서는 ‘스승’이 점차 사어가 되어가는 까닭을 알지 못한다. 다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스승이라는 말의 아우라를 욕보이고 더럽힌 쪽이 노동자를 자처한 선생님들이나 선학을 비판한 후학들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 책임은 오히려 걸핏하면 스승의 권위와 사제간의 정을 내세우는 수구언론과 일부 학자들 쪽에 있다. 그들은 나이나 지위 혹은 봉건적 위계질서로 스승-제자의 관계를 쉽사리 환원시켜 버린다. 하지만 스승의 진정한 권위는 교육자로서 한 인격체가 지닌 ‘진실의지’, 그를 ‘통해’ 말하는 지식 자체, 그리고 그가 지닌 계몽의 용기와 열정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대학사회와 학계의 민주화는 이 권위를 되살릴 수 있는 역설적인 전제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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