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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신제도 어떻게 볼까: 교육 '내부'를 보자
내신제도 어떻게 볼까: 교육 '내부'를 보자
  • 강태중 중앙대
  • 승인 2005.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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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중 / 중앙대학교 교육학과

2008학년도 대학입학 전형에서는 이른바 내신(학교생활기록)의 당락 결정력이 커질 전망이다. 적어도 교육부가 예고하고 추진하고 있는 ‘제도 개선’ 방안에 따르면 그렇다. 그러나 논란은 아직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그와 같은 전망을 낳는 전형 방식에 대해 여러 입장들이 부딪히고 있다.

우선 내신에서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학생이나 학부모 그리고 학교에서는 내신의 영향력을 키우는 데 반대한다. 이를테면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이 몰리는 학교(일부 특수목적 고등학교와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 부유한 지역사회의 학교 등) 측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좋은’ 학교를 다닌다는 이유로 평가절하 당하는 것이 가당한 일이냐는 것이다. 대학 측에서도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성적이 조금이라도 높은 학생을 입학시키고 싶은 것이 대학의 욕심인데, 내신을 중시해서 선발하라면 그러한 학생을 고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고교간 격차’를 반영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평준화 지역의 여러 학교에서는 학교간 차별(고교간 격차 인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배정된 학교에 다녔는데, 그 이유만으로 개인의 능력에 관계없이 대입 전형에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항변한다. 교육부도 분명하게 고교간 격차를 감안하는 대입 전형을 허용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소위 평준화 정책이라는 학교 운영의 근간을 흔들 수 없기도 하지만, 오직 교과 시험 점수에 근거한 학교 우열에 집착하는 것이 타당하고 바람직한 대입 전형 방식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을 어떻게 정리하면서 타당한 대입 전형 방식을 모색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교육적인 원칙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대입 전형에서 관철시켜야 할 원칙을 세우고 일관되게 추구하는 일이 중요하다.

당초 학교 교육 정책에서 내신을 강조하게 된 연유는 두 가지이다. 학생들에 대한 평가를 가장 타당하게 내릴 수 있는 사람은 그들을 직접 가르치는 교사들이므로 교사들에게 평가의 권한을 준다는 것과, 입학 전형은 일회의 투기적 시험을 통해 이루어지기보다 학교에 재학한 모든 기간에 보인 활동과 성취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내신 산출을 위한 평가는 소위 절대기준에 따르는 것이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교육 목표에 도달한 정도를 보는 것이 핵심이지, 누구보다 잘했고 누구보다 못했는지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신에 대한 이러한 ‘철학’은 2008학년도 대입 전형 제도에서 많이 뒤집혔다. 이 제도에서 내신은 이른바 상대적 평가를 근간으로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성적 부풀리기니 내신 인플레니 하는 말로 알려진 고등학교 안에서의 문제들은 전형자료로서 내신에 대한 신뢰를 복구할 수 없게 추락시켰다. 그래서 내신의 영향력을 복원하기 위해서 교육부는 내신을 상대적 비교를 바탕으로 산출하도록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학교에서 평가는 교육목표에 비추어 학생들의 성취를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사이의 점수 우열을 비교하는 일이 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정책의 교육적 의미를 주목하기보다 정책의 사회적 파장을 우선 고려하여 채택하게 된 것이다. 내신을 영향력을 높이는 방안이 사회적인 문제(예컨대, 사교육비 부담)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결정인 것이다. 소위 절대 평가에서 상대평가로의 변화가 교육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고려하는 일은 소홀히 하였다. 따라서 상황이 조금 바뀌어 사회적으로 다른 문제가 제기되면(예컨대, 상대 평가에 따른 학급내 경쟁 과열) 제도는 다시 이전의 양태(‘절대 평가’)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장기적으로 보면 교육 정책이 소위 조삼모사의 형국을 띠게 되는 것이다. 교육적 이상을 향한 꾸준한 진보가 되지 못하고, 여론의 양극단을 번갈아 비위 맞추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육은 더욱 병들어 간다. 이 사태는 대입 전형 제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 교육정책이든, 교육 밖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육 안의 원칙을 견지하기 위해서 강구되지 못하면, 늘 같은 운명을 걷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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