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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학부제와 대학 자율성
[대학정론]학부제와 대학 자율성
  • 논설위원
  • 승인 2001.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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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28 15:56:02
'대학이 무너진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고 있다! 지난 3월 15일부터 4월 5일까지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이 전국 대학생 8백7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의 기본 인식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 이른바 ‘학부제’가 자리하고 있다.

위 설문에서 학생들은 자신들이 가장 잘 알고 또 가장 문제가 많은 정책으로 `모집단위 광역화(학부제)`를 꼽았다고 하며, 그 정책의 실패 원인 가운데 `교육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일방적 조치`를 가장 크게 문제삼았다고 한다. 조금 더 구체적인 통계도 있다. 최근 한국교육개발원이 교육인적자원부의 의뢰를 받아 전국 대학교수 4백22명과 대학생 1천8백95명을 대상으로한 설문조사에 토대해 작성한 ‘학부제 운영 성과에 대한 분석 연구’에 따르면 교수의 70.6%, 학생의 88.7%가‘학부제가 내실보다는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답변했다.

학부제의 기본 취지가 기존 학과간의 장벽을 낮추고 새로운 시대의 요청에 걸맞는 학제간 연구를 증진시키며, 학생들에게 전공선택의 기회를 넓히고 교육의 다양성을 제공하는 데 있음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교수건 학생이건 학부제의 명분에 반대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며, 정부에 의해 강요된 형식적인 학부제, 모집단위 광역화에 박수를 보내는 이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학부제’에 매달렸고, 왜 아직까지도 대학이 ‘학부제’에 발목잡혀 비틀거리고 있는가. 원천적으로 명실이 상부하지 않는 ‘학부제’를 안이하게 받아들인 ‘대학’의 ‘결정’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하겠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대학이 학부제의 명분을 살릴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갖고 있지 못한 현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대학의 권위가, 대학의 자율성이 요즘처럼 훼손되었던 때가 있었던가. 대학은 자신의 권위를, 자율성을 지켜나갈 수 있는 능력은 있는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비민주적 대학구조, 스스로 결정해놓고도 부정해버리는 무책임성이 그대로 용인되고 있는 현 대학 풍토속에서 자율성 운운하는 것은 자기기만임을 솔직히 인정하자. 대학의 자율성은 민주적 의사결정구조에 의에 뒷받침되지 않는한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민주적 의사결정구조는 그 결정에 승복하는 지혜를 기르는 공론을 만들어가는 장이 되어야 할 것인데, 아직 그같은 장을 누릴 복이 없는 처지이기는 하나 그 장을 희망을 키우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포기해서는 안되겠다. 공론이 추구하는 명분만은 잃지 말아야 하겠다.

‘일부’ 교수와 학생들의 반대에 부딪쳐 모집단위 광역화가 그대로 추진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인적자원부는 ‘일부’ 기초학문 분야의 과별 모집을 ‘일부’ 허용하고 상당 수 대학에서는 차제에 이러저러한 모집단위의 조정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학부제의 후퇴·왜곡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할 대학이, 민족문화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해야 할 대학이 政·敎 야합에 의해 추레한 몰골로 드러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교실붕괴’가 ‘대학붕괴’로 이어지는 현장에서 대학인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결단이 요구된다.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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