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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맞춤형 교육의 겉과 속
교수논평: 맞춤형 교육의 겉과 속
  • 배영찬 / 한양대
  • 승인 2005.03.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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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첨단 지식기반 사회를 주도하는 국가가 되기 위한 기본요건은 풍부한 천연자원의 확보나 미래기술의 선점보다는 지식의 창출 및 활용의 주체인 핵심 인적 자원을 효과 있게 육성할 교육제도를 어떻게 갖추었느냐에 달려 있다. 또한 첨단 산업의 특성상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속도 때문에 기술 자체 보다는 인적 자원의 역량 및 기술 습득 능력이 훨씬 중요해 지고 있다. IT산업의 눈부신 발전에 따라 산업 전반에 걸쳐 기술, 지식, 정보의 축적, 활용과 공유가 핵심인 지식집약형 산업구조로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고급 핵심 인력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전문 지식과 창의력을 갖춘 이른바 ‘골드 칼라’ 시대가 도래했다. 이러한 산업구조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한국대학의 공학 교육은 위기를 맞고 있다. 사회는 아날로그 시대적 공학교육에서 디지털시대의 글로벌 공학교육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때맞춰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맞춤형 교육’, ‘주문식 맞춤 교육’ 등으로 한국대학은 이제 맞춤교육 홍수를 이루고 있다.

 

최근 대학에 쏟아지는 비난으로 “대학교육이 산업체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대학이 기술과 학문의 발전 속도를 따라 가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교수진으로는 역부족이다”, 이것도 부족해 이제는 경제 부총리까지 가세해 “대학이 일자리 수요에 관계없이 막무가내로 사람들을 생산하고 있다”고 서슴없이 말하고 있다. 그러면 맞춤형 교육이 과연 학생들의 미래와 국가 발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

 

이러한 맞춤형 교육(learning-on-demand)이라는 별로 익숙하지 않은 용어가 언제부터 이렇게 주목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97년 말 불어 닥친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은 신규 졸업자를 채용하기보다 경력직을 우선적으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핵심인재로 육성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신규인력 채용을 대폭 줄이는 대신, 즉시 활용 가능한 경력직 인력을 수시로 선발했다. 기업의 인적 자원 채용 방식이 핵심인재 육성에서 외부에서 영입하는 방식으로 변화한 것이다. 즉 신입사원에 대한 추가 교육을 기업의 미래를 결정하는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인식 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기업 차원에서는 많은 비용을 절약 할 수 있게 됐지만 그 여파는 청년실업의 증가로 이어지게 됐고 심각한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이다.

 

물론 대학은 공학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교육시스템 개혁으로 탄탄한 기초학문의 바탕 위에 응용학문을 연계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 전문성과 실용성을 겸비한 21세기형 공학도를 양성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또한 국가경쟁력의 새로운 원천인 여성 이공계 인력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과 적극적인 사회진출을 위한 지원체제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대학은 기업이나 정부에서 요구하는 인력 생산 공장이 아니다. 공장에서 상품을 생산하듯 규격에 맞추어 인력을 성형 틀에서 찍어 낼 수도 없고 그런 규격화된 인력은 사회에 득이 되지도 않는다. 21세기는 창의적이며 독창적 아이디어를 창출할 줄 아는 골드칼라가 주도를 할 것이고 대학은 그러한 인재가 원하는 교육을 지원하기 위한 지식기반 환경을 개발하고, 첨단기술 기반 정보사회에서 급변하는 직업의 내용에 대한 즉각적인 해결책을 줄 수 있는 교수법을 개발하면 된다. 맞춤형 교육을 통하여 기업이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은 규격화 된 기능인일 뿐이다. 숨 막히게 변화하는 첨단 기술의 현장에서 그들이 배운 규격화된 지식으로 몇 년을 버틸 수 있을지 심각히 고려해 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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