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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그랑제꼴, 사회적 약자 입학 방법 둘러싸고 논쟁
프랑스 그랑제꼴, 사회적 약자 입학 방법 둘러싸고 논쟁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5.03.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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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가 학생 할당이냐, 사교육이냐

프랑스의 엘리트만이 들어갈 수 있다는 그랑제꼴이 경제적, 인종적으로 차별받는 ‘사회적 약자’의 입학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에 휩싸였다. 이른바 프랑스판 'Affirmative action' 논쟁.

쟁론의 발단은 도미니크 티앙(Dominque Tian)이라는 프랑스 국회의원이 고등교육기관의 입학절차에 대한 수정법안을, 지난 2월 17일 국회에 상정하면서 시작됐다. 수정법안은 “고등교육기관의 모든 입학절차는 합당한 나이와 경험, 혹은 학위를 가진 모든 개인에게 열렸다”라고 규정하고, 일부 고등교육기관이 ‘모든’ 사람에 대한 교육 기회의 평등을 저해하고 있다며 이를 개선해야 한다고 발벗고 나섰다.

수정법안이 의도한 고등교육기관은 그랑제꼴 중 하나로서, 파리정치학학교로 알려진 시엉스포(Sciences-Po)다. 지난 2001년 새 학기인 가을학기부터 시엉스포는 경제적으로, 인종적으로 차별받는 지역 출신의 학생들이 그랑제꼴 입학에서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 하에, 일종의 ‘지역할당제’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시엉스포는 매해 교육우선지역(ZEP: zone d'education prioritaire)에 위치한 7개의 고등학교 학생 60여명을 고등학교 교사들의 평가에 따라 받아들이기로 했다.

▲프랑스 소르본 대학 전경 ©

당시 'ZEP 협약‘을 발표한 시엉스포는, “기존의 선발시험이 지원자와 시험 사이의 일치점과 수준은 나타냈지만, 오지 교사들만이 간파할 수 있는 잠재적 역량에 대해서는 나타내지 못했다”라고 평가하고, “(새로운 제도가) 사회적으로 불평등했던 기존의 입학시험을 보완할 것이다”라고 기대했다. 실제로 1998년 시엉스포의 1학년 학생 중 81%가 사회적 우위계층 출신이었다.

하지만 도입 4년째를 맞이하는 시점인 2005년에 접어들면서, 시엉스포의 입학절차가 오히려 역차별이라고 지적이 나오게 된 것이다. 즉, ‘ZEP협약’의 틀에서 시행되는 입학시험이 ‘모든’ 개인에게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시엉스포 협약에 사인한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만 열려있어 교육기회의 평등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수정법안에 대해 시엉스포는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 2월 18일 자 르몽드의 보도에 따르면, 시엉스포는 공식 성명에서 “국회가 교육우선지역 학생 선발에 끝을 맺게 했다”라고 비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수정법안의 논리라면 교육우선지역 출신들은 시엉스포 입학에 있어 할당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정법안은 시엉스포처럼 교육우선지역 출신 학생들에게 쿼터를 할당하는 게 아니라, 또 다른 그랑제꼴인 에섹(Essec)처럼 학생들의 그랑제꼴 입학시험 준비를 ‘도와주는’ 방식으로 교육적 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지난 2월 18일자 르몽드는 “수정법안이 에섹에 의해 주도된 시도에 보다 법률적인 가치를 부여한다”라고 분석했다.

비즈니스 스쿨인 에섹은 2003년 1월 ‘(그랑제꼴) 준비반, 나라고 왜?’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것은 에섹 입학을 희망하는 교육우선지역출신 그랑제꼴 준비생들에게 일종의 사교육을 실시하는 프로그램이다. 에섹의 재학생과 교수들이 교육우선지역에 포함되는 6개의 고등학교 22명의 학생들에게 3년 동안 보충수업을 실시한다. 에섹의 재학생은 봉사동아리 회원들이고, 교수들은 교육우선지역 출신이다. 교수들의 경우 일주일에 반나절씩 공부를 봐주고, 오페라나 영화관을 구경하는 등 문화적 자산을 전수한다.

하지만 이 방법 또한 아직 검증되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에섹의 ‘(그랑제꼴) 준비반, 나라고 왜?’ 프로그램의 조치를 받은 고등학생들이 오는 6월에서야 바깔로레아를 치르기 때문이다. 에섹 측이 의도한 목표가 시엉스포보다 좀 더 현실적인지는 6월이나 돼야 알 수 있다.

일단, 경제적으로, 인종적으로 차별받는 지역의 고등학생들의 그랑제꼴 입학 방법을 둘러싼 논쟁은 도미니크 티앙 의원의 수정법안을 재심의하기로 함으로써 일단락됐다. 이에 대해 시엉스포 측은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오는 6월 바깔로레아 결과에 따라 다시 한번 희비가 엇갈릴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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