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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근본적 가치전환을 위한 3가지 제안
교육의 근본적 가치전환을 위한 3가지 제안
  • 강치원
  • 승인 2021.07.20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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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치원의 ‘원탁토론 운동 30년, 내가 얻은 교훈 그리고 미래 교육’ ⑥
주관식 평가로 전환, 서울대 독과점 해소, 대학교육과 직업교육 국가부담을

이제 우리 교육의 근본적인 가치전환을 말할 차례다. 크게 세 가지다. 그 하나는 평가방식을 객관식 오지 선다형에서 주관식 서술형·구술형으로 바꿔야 한다. 진정한 창의성은 오지의 밖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연구와 교수와 학습과 평가’ 등 네 가지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운동경기가 평가방식이나 득점방식에 따라 결정되듯이 한 사회의 교육 방식은 그 사회의 평가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나는 평가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객관식이냐 주관식이냐’지 ‘상대평가냐 절대평가냐’가 아니라고 본다. 내가 아는 선진국에서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온 사회에 객관식 선다형 평가가 없는 나라들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100점 만점 객관식이다. 우리가 얼마나 치열한 경쟁의 사회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포스트 코로나시대 대비…주관식 서술형·구술형 평가로

국가가 획일적으로 관장하는 객관식 평가인 한국의 한국수학능력시험. 우리가 얼마나 치열한 경쟁사회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독일은 주관식으로 15점 만점에 0점을 포함해서 6단계 등급으로 평가한다. 프랑스는 18점 만점이고, 스웨덴은 5점 만점이다. 학교의 내신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수능에 해당하는 독일의 아비투어(Abitur)도 그렇게 평가한다. 그리고 대학이나 우리의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김나지움(Gymnasium)에 서열이 없다. 그래서 내신 반영이 가능하다. 대학 입학자격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900점 만점(아비투어 300점, 내신 600점)에서 300점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한국의 수학능력시험은 하루에 치며, 국가가 획일적으로 관장하는 객관식 평가다. 그래서 수능시험에서 문제지를 경비하느라 국가가 온통 난리법석이다. 독일의 아비투어는 16개 주별로 관장하기에 시험문제가 주마다 다르다. 또 주관식 평가이며, 하루에 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영어는 5시간에 걸쳐 하루 동안 자기가 다니는 학교에서 시험 친다. 아비투어 시험 5개 과목 중 한 과목은 대입 준비 학생 개인별로 20분간 구술면접을 친다. 그것도 주별로 말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교육의 역량이지 않을까. 

그런 나라들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어떻게 담보할까? 그런 나라들에서는 사교육비 걱정도 없다. 시험문제가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가르친 사람이 학생을 평가하는 철학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같은 사교육에 의한 교육격차도 없다. 앞으로 포스트 코로나시대 비대면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주관식 서술형·구술형 평가는 중요한 과제다. 진정으로 창조적 교육, 공동체적 교육을 이루고자 한다면 말이다. 우리에게는 영영 불가능한 일일까?  

서울대 독점적 서열구조 해소…지방거점대학 육성

둘째, 서울대의 독점적 서열구조를 해소하지 않고서 우리에게 진정한 교육개혁은 요원하다. 서울대의 서열을 해소하면 고려대나 연세대, 포항공대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아니다. 사립대학은 다르다. 한 공동체 안에서 엄청난 자원을 특정 대학에 쏟아 부으면서 국가가 직접 나서서 그 독과점 체제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병폐는 서울대 카르텔과 일정부분 연관되어 있다. 우리나라 대학에 경쟁력이 없는 이유는 바로 특정대학의 독과점 체제 때문이다. 서울대를 폐지하자는 것이 아니다. 서울대와 경쟁할 수 있는 대학들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지방거점 대학들을 육성하여 서울대와 학점교류를 추진해야 한다. 

대학의 서열화를 거론하면 프랑스의 그랑제꼴이나 일본의 도쿄대학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프랑스의 그랑제꼴은 고급 전문대학이며, 하나가 아니고 수많은 그랑제꼴들이 있다. 그랑제꼴에는 박사과정이 없다. 그래서 서울대와 전혀 다르다. 일본의 경우 같은 국립대학이라도 노벨상은 교토대학에서 나온다. 독일 대학에는 대학의 서열화가 없다. 대학의 경쟁력은 대학간 경쟁보다는 교수간 경쟁에서 비롯되는 법이다. 

교수 동종번식 해결, 교수연봉제나 성과급보다 더 중요

우리의 경우 대학의 경쟁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독과점 지원체제와 함께 교수의 동종번식에 있다. 대학 교수의 충원이 특정대학이나 모교 출신의 교수들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 대학의 문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교수 연봉제나 성과급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 

독일의 경우 전임교수의 첫 임용은 출신대학에서는 불가능하다. 다른 대학에 있다가 모교로 갈 수는 있다. 정년보장 교수는 C2, C3, C4로 3등급이다. 예컨대 C2 조건으로 전임교수가 된 사람은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대학에서는 C3, C4로 승급할 수 없다. 그래서 전임교수들은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대학을 이동하게 되어 있다. 한 대학에서 장기 근속한다는 것은 실력이 없다는 뜻이다. 교수의 대학간 이동을 통한 교수간 경쟁 등이 우리 사회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일까?

대학진학에서 수시 모집이 유지되는 한, 부모가 교수로 근무하고 있는 대학에 자녀가 진학하는 경우 대체로 불공정과 편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 지나친 표현인가. 수시 모집이 유지되는 한 특정대학 교수의 자녀는 부모가 교수로 재직하는 특정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어찌하여 우리 사회에서 이런 경우 ‘제척사유’에 적용되지 않을까. 이보다 더 큰 제척사유가 어디에 있을까. 이런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우리가 안고 있는 대학의 독과점 체제가 극복되고, 진정한 대학 경쟁력이 보장된다고 본다. 

지방분권 이루려면 ‘지방거점대학’ 육성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들 인정하고 있고 또 언급하는 내용이지만, 서울대 출신의 진보적인 교수들도 서울대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서울대 출신에다가 서울대 재직 교수는 성골이요 서울대 출신에다가 다른 대학 재직 교수는 진골이라는 말이 한 때 유행한 적이 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진정으로 지방분권을 이루고자 한다면 지방거점 대학의 육성이 그 답이다. 그 지방분권을 표방하는 정부조차도 수도권 주택문제의 해결을 신도시 건설에서 찾고 있는 게 참으로 안타깝다. 국가의 중앙 권한, 즉 대통령과 행정부와 국회의 권한을 줄이지 않고 지방분권이 가능할까? 지방분권이 어려운 이유는 스스로 자신의 권한을 줄일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없기 때문이다. 수도권 주택문제의 해결은 지방분권에서, 지방분권의 해결은 지방거점대학 육성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서울 제1대학, 서울 제2대학……. 이런 방식은 어떨까? 그것도 어렵다면 서울대의 지방 이전은 어떤가? 언제쯤 가능할까?

대학교육과 직업교육, 국가가 부담해야

셋째, 대학교육과 직업교육의 비용까지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우리나라에 돈이 어디 있냐고? 나의 관점에서 보면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철학의 차이일 따름이다. 교육비는 보통 국가부담 공교육비와 민간부담 공교육비와 사부담 사교육비 등 세 가지로 나뉜다. 내가 아는 교육 선진국은 사부담 사교육비가 없다. 우리의 경우 대학생들도 엄청난 사교육비를 쏟아 붓고 있다. 영문학과와 영어전공 교수들이 대학에 있는데도 사설학원에서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부담 사교육비까지 고려하면 우리의 경우 쏟아 붓는 교육비에 비해 교육의 효율성이 엄청 떨어진다고 본다. 가르친 사람이 학생을 평가하지 않고 시험문제가 사람을 평가하는 우리 교육의 병폐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사교육이 줄어들고 공교육이 강화될까?

공교육비의 경우 학부형이 부담하건 조세를 통해 국가가 부담하건 결국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철학의 차이라고 말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철학의 차이가 인재의 가치관의 차이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학부형이 교육비를 직접 부담해서 형성된 인재는 ‘나를 키워준 것은 공동체가 아니고 부모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주의적, 이기주의적 가치관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국가가 교육비를 부담해서 형성된 인재는 ‘국가 공동체가 나를 키워주었다’고 하는 마인드를 갖게 되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으려 하고, 출산하지 않으려 한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육아와 교육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대학교육과 직업교육까지 교육비용의 사회화가 절실하다. 다만 어떤 사람이 대학교육을 받을 것인지, 직업교육을 받을 것인지 그 결정권 역시 국가에 주어져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 교육비용을 부담하건 결국 국민의 돈이지 않는가? 대학교육과 직업교육까지 육아와 교육의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는 방안, 언제쯤 가능할까?

교육개혁 실천방안으로 국민대토론회를 제안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교육개혁의 실천방안으로 국민대토론회를 제안한다. 국민대토론회의 공론장을 통해 국민공감대를 형성하고 실천적 지지 세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토론의 정신은 약자의 연대와 강자와의 협상이라고 믿는다. 촛불정신에 따라 기대했던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 그 방향은 훌륭했다. 정부는 국가교육위원회를 설립하고 그것을 국가교육회의로 바꾸었다. 5년이 다 되어 간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을 달성했는가? 국가교육회의는 아직도 국민의 아이디어를 찾고 있는 중이다. 언제까지 국민의 아이디어를 구하고 있을 것인가? 철학이 없기 때문이다. 교육개혁 방향에 철학적 확신이 없으니 국민공감대를 얻는 데에 게을리 했고, 따라서 실천력도 확보하지 못했다. 예컨대 사립대학 공영화 정책, 잔뜩 기대를 걸었던 정책 중의 하나다. 하지만 정부 스스로 폐기한 것을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확인했다. 

문재인 정부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다면 그 책임은 소통 부재에 있다.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정부와 여당은 어찌하여 국민들의 질문을 받으며 사과하고 해명하며 정책 결정의 고뇌를 털어놓는 기회를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정부 초기 공론화위원회는 배심원 방식의 토론을 거창하게 홍보했다. 예컨대 탈원전 정책을 배심원들끼리 모여 토론하고 결정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국민 일반은 도대체 탈원전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나 공감대를 갖지 못했다. 국민공감대 없이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대통령이 임명한 감사원장이 탈원전 정책을 감사하고, 검찰총장이 월성원전을 수사해도 속수무책이었다. 

우리 교육의 근본적 가치전환의 과제인 15점 만점 주관적 평가방식 확립, 서울대 독과점 해결과 지방거점 대학육성, 그리고 대학교육과 직업교육까지 교육비용의 국가부담 등을 제대로 추진하자면 국민공감대 형성이 절실하다. 그 국민공감대 형성은 국민대토론회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교육개혁을 위한 국민대토론회, 누가 대통령이 되면 가능할까? <끝>

강치원 호서대 특임교수 / 원탁토론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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