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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팬덤, 이성애중심주의 케이팝을 넘다
퀴어 팬덤, 이성애중심주의 케이팝을 넘다
  • 김수아
  • 승인 2021.07.23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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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_『퀴어돌로지』 연혜원 기획, 스큅 외 11인 지음 | 오월의봄 | 392쪽

케이팝, 대안적 가족 모델과 섹슈얼리티를 담고
퀴어 팬덤이 스스로 경험을 서사화·역사화 하다

케이팝이 그 어느 때보다 주목을 받고, 글로벌한 문화가 되고 있는 현재 팬덤에 대한 연구, 팬덤의 저항성과 행위성에 대한 상찬 역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팬덤은 항상 이성애 관계를 통해서, 혹은 변형한 가족 관계 내에서 성별 이분법에 기초하여 논의되고 있다. 퀴어돌로지는 공고한 이성애중심주의에 의해 가려졌던 케이팝의 퀴어 팬덤을 적극적으로 다룬다. 서문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듯, 트위터라는 특정한 SNS 공간 외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진행된 적이 드물다는 점에서라도 이 책의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케이팝 아이돌의 퀴어함의 연대기를 구성하는 스큅과 마노의 글에서 드러나듯, 케이팝이 글로벌한 팬덤을 형성하면서 퀴어 팬덤이 적극적으로 케이팝을 해석하고 향유하고 있다. 케이팝의 섹슈얼리티와 미의 형상이 성별 이분법적에만 제한되지 않고, 남성 아이돌의 경우 ‘부드러운’ 남성성으로 인식되고 있어 이 자체로 퀴어하게 해석되며, 기존의 힙합-록이 구성하는 마초적, 초남성적 남성성에 대한 대안 모델로도 여겨진다. 대안적 가족 모델, 대안적 여성성과 남성성 등 대안으로 논의되는 케이팝 아이돌의 퀴어함은 팬덤의 해석과 재해석, 향유와 놀이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이 다루는 주제들은 퀴어 팬덤 스스로 팬덤 경험을 서사화하고 역사화하는 작업이다. “남성 아이돌의 팬덤인 레즈비언”이 진정성 담론에 의한 비난을 받기 쉽지만, 케이팝 남성 아이돌이 표상하는 퀴어함을 향유하는 실천이 레즈비언 실천일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권지미의 분석, 여성 퀴어 페미니스트로서 정체화한 사람이 걸 그룹의 팬덤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루는 아밀의 글은 팬덤의 실천이 어떻게 스타와 감정적 관계를 구성하는 개인적인 경험인 동시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실천일 수밖에 없는지를 드러내어 준다. 

특히, 아밀은 케이팝 아이돌의 감정 노동 구조 및 외모 중심의 상품화 구조를 알고 있는 퀴어 팬덤의 입장에서 아이돌을 사랑하는 것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것, 산업이 아이돌 스타는 물론 팬덤 역시 착취하는 구도를 구성하여 이익을 창출함을 고발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여성 퀴어들의 창작과 재창작의 시도, 대안적인 의미의 창출을 통해 소비와 즐거움, 생산을 연계시키고 있음을 드러내며 이러한 실천들이 산업의 착취적 구조에 대한 저항적 대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한다. 

퀴어 팬덤의 즐거움과 주체적 위치

올해 초 뜨거운 논란이 되었던 ‘RPS(Real People Slash)’ 팬픽에 대한 논의도 전개된다. 연혜원의 서문에서 실존 인물의 동의 없이 이루어지는 RPS의 구조가 윤리적 쟁점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케이팝 문화의 핵심 하위문화 현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RPS 문화 속에서 등장하는 퀴어 혐오의 양상으로, 아이돌 팬덤 문화 속의 트랜스젠더 혐오 역시 비판의 대상이다. 트위터에서 트랜스적 해석을 하는 퀴어 페스(퀴어 RPS) 팬덤에 대한 혐오가 만연함을 지적하면서 사실상 팬픽션 창작은 대상들 간의 횡단과 초월을 함의하는 트랜스적인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채윤의 분석에서는 톰보이를 사랑하는 팬덤의 욕망이 단지 이성애 흉내가 아니라, 다른 길을 찾는 움직임, 이상하고 낯설은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퀴어링에 있음이 강조되기도 한다. 

이 책은 퀴어 혐오에 기초한 사이버 불링 등의 팬덤 내의 배제를 통해, 한편으로는 진정성을 기준으로 하는 퀴어 내부의 선긋기를 통해 외부로 밀려나는 퀴어 팬덤의 존재와 의미를 짚으면서, 퀴어 팬덤이 아이돌 케이팝의 소비를 통한 즐거움을 생산하는 주체적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 책은 팬덤의 실천에 주목하지만 RPS의 ‘실존인물’ 문제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는데, 이를 퀴어 팬덤의 맥락에서만 다룰 수 없다는 점에서 후속 과제로 남아 있다. 이 책의 목표는 퀴어 팬덤의 놀이의 기록이자 경험의 역사화에 있으며, 그 목표를 충실하게 달성한 흥미로운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김수아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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