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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열등감과 우월감을 벗어나야”
“동양철학, 열등감과 우월감을 벗어나야”
  • 박병기
  • 승인 2021.07.21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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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 박병기, 강수정 지음 | 인간사랑 | 352쪽

 

서양을 전제로 해야만 성립했던 '동양'이라는 개념
서양의 분석철학, 사상·종교가 통합된 동양철학 분리해
지금이야말로 있는 그대로의 동양철학과 만나는 적기

우리에게 동양(東洋, orient)이라는 말은 친숙하면서도 낯선 개념이다. 우리가 서양인이 아닌 동양인이라는 사실에서 친숙함이 나오고, 그 동양 또는 동양인이라는 이름이 스스로 지은 것이 아니라 서양인들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지어준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낯설음과 만나게 된다. 동양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아마도 고대 그리스의 알렉산더 왕이 자신의 영토를 기준으로 삼아 동쪽으로 침략을 감행하면서부터일 것이다. 그 후 범위가 그들의 목적에 따라 지속적으로 넓혀졌고, 그런 점에서 동양이라는 개념은 서양을 전제로 해야만 성립할 수 있는 상대적이고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

동양철학은 어떤가? 이 개념은 동양이라는 상대적인 개념에 철학이라는 수입개념이 더해져 성립한 것으로 보다 복잡한 성격을 갖는다. 19세기 중반 서구를 먼저 받아들이고자 했던 일본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인 철학은 필로소피(philosophy)의 번역어로 선택되어 동아시아 전반에 확산된 한자어이다. 주로 형식논리학을 기반으로 삼아 존재론과 인식론, 가치론 등을 하위 영역으로 거느린 서양철학은 근대 이후 인식론에 초점을 맞추다가, 20세기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을 분석하는 것으로 한 때 그 범위를 심하게 좁히기도 했다.

동양철학이 이처럼 불완전한 두 개념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다보니 서양철학에 대해 상시적인 열등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전통의 철학은 사상과 분리되기 어렵고 또 종교와도 특별히 구분될 필요가 없다. 종교가 절대적인 신을 전제하기보다는 보편적 하늘(유교) 또는 진리(불교) 개념을 토대로 성립하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고, 삶과 사회가 직면하는 근원적인 물음들에 대한 답을 사상의 차원에서 찾아 제시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동양철학은 철학과 사상, 종교가 통합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이런 통합성이 억지로 유일신 종교를 분리해내야만 했을 뿐만 아니라 사상과도 구별해내고자 했던 분석철학적 경향의 서양철학과의 비교 속에서 평가절하될 이유는 없다.

 

철학과 사상, 종교가 통합된 동양철학

일상의 삶 속에서 의미 물음과 문득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철학이나 종교를 떠올린다. 그럴 때 마음을 내어 책방의 철학과 종교코너를 찾는다. 양으로는 동양철학책도 만만치 않지만, 그 중 많은 책들이 한문투의 어법을 넘어서지 못해 제대로 읽기조차 어렵다는 또 다른 난관과 마주치게 된다. 아니면 점술이나 기복신앙 같은 것들을 부추기며 은근히 겁을 주는 수준의 것들일 가능성도 높다.

『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박병기, 강수정 지음, 인간사랑)는 그런 동양철학의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사상과 종교, 철학 사이의 긴밀한 연계성에 주목하면서 동양철학에 대한 열등감과 우월감을 동시에 배제하는 것을 일차적인 전제 조건으로 삼고자 했다. 부제로 명시한 것처럼, 핵심 인물과 개념을 중심으로 노자에서 휴정(休靜. 1520∼1604)에 이르는 동양과 한국사상가의 생각을 오늘 우리의 삶 속에 불러내는 방식의 체제를 택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오늘 우리 불교와도 맥이 닿아 있는 지눌을 호출해, 내 마음 속에 자리한 청정한 부처를 찾는 일이 어떤 의미로 재해석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서산대사의 법명은 휴정(休靜)이었다. 한국의 불교사상가인 휴정은 임진왜란 때 승병(僧兵)을 일으켜 싸우기도 했다. 그림=위키피디아

우리 삶은 물론 전통적인 방식으로만 전개되지 않는다. 오히려 표면적으로는 서구적인 방식, 그 중에서도 미국적인 방식을 표준으로 삼는데 더 익숙해져 있기도 하다. 미국사람 보다 더 미국을 사랑하는 듯한 지식인을 주변에서 찾는 일이 어렵지 않을 정도다. 코로나19로 이른바 선진국의 맨얼굴을 충분히 볼 수 있게 되었음에도, 여전히 미국의 방역은 최고 수준이고 우리는 형편없다는 왜곡된 인식을 부끄럼 없이 드러내는 어떤 사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문제는 더 이상 그런 삶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데서 생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삶의 내면에서 엄연히 작동하고 있는 사유와 실천의 습관을 형성하는 동양철학과 있는 그대로 만나야 하는 적기임을 확인해주는 근거 중 하나라고 할 만하다.

 

 

 

박병기 한국교원대 교수·윤리교육과 교수

서울대 윤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했다. 한국교원대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교원대 종합교육연수원장과 교육부 민주시민교육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등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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