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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사회,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공존
플랫폼 사회,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공존
  • 이재열
  • 승인 2021.07.19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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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진단_플랫폼 사회가 온다 (상)_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과)

 

기술 진보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 지체 현상 나타나
정부는 규제 불일치 줄이고, 기업은 사회적 가치 늘여야

코로나19는 기술 진보가 가능하게 만든 미래를 갑자기 오늘의 일상으로 끌어당겼다. ‘디지털 경제’가 초연결 네트워크, 빅데이터, 인공지능, 플랫폼 등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새로운 수요통합형 경제를 지칭하는데 반해 ‘플랫폼 사회’는 그 정점에 있는 플랫폼이 사회 전반의 구조와 사람들의 일상에 깊이 파고들어 만들어내는 효과에 주목하는 개념이다. 

한국은 디지털 경제와 플랫폼 사회의 첨단 실험장이다. 초연결은 이미 깊숙이 우리 안에 자리잡은 미래다. 다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동안 제대로 활용되지 않았을 따름이다. 아날로그 시대에 태어난 ‘디지털 이주민’들이 정책 결정권을 가지다보니, 과거형 논리를 고수하는 정책이 기술 진보를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 지체’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닫힌 위계’를 매우 빠르게 ‘열린 네트워크’로 대체했다. 

이재열 서울대 교수(사회학과)는 한국의 토종 플랫폼이 더욱 성장하기 위해선 정부의 규제 불일치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지=픽사베이

그러나 변화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초연결 사회는 새로운 문제를 쏟아내고 있다. 급격한 쏠림과 양극화가 정치, 경제, 문화의 각 층위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통적 불평등에 보태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가 세대간, 계층간, 직업간 격차를 벌리고 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플랫폼에의 의존이 급격히 심화된 것이다. 전통적인 기업활동이나 자영업자들이 큰 고통을 겪는 반면,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렸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알리바바 등 기축 플랫폼 위에서 다양하게 분야별 플랫폼이 번성하여 사회-정치 구조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생태계를 형성했고, 사회경제적 흐름을 만들어낸다.

 

데이터화·상품화·큐레이션이 플랫폼 사회 메커니즘

플랫폼 사회에서는 세 가지 중요한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첫 번째는, 인간행동의 거의 모든 측면을 데이터로 기록하고, 이 데이터를 분석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이터화이다. 두 번째는 인간활동, 감정, 아이디어 등 모든 것을 교환 가능한 상품으로 가공하는 상품화다. 세 번째는 다양한 알고리듬을 통해 이용자의 선택을 돕거나 필터링하는 선택(selection)과 큐레이션인데, 대체로 각 개인에게 최적화된 맞춤형 추천이 가능한 개인화가 이루어진다. 과거 전문가들의 평가에 의존해야 했던 평판이나 추세에 대한 분석은 플랫폼상의 실시간 반응이 대체했다. 플랫폼 사회에서는 질적으로 서로 다른 것들도 모두 동량화(commensurate)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구독자, 팔로워, ‘좋아요’를 누른 숫자 등으로 가치 평가가 대체되곤 한다. 

기술과 제도, 그리고 일상 간에 긴장과 길항관계가 만들어내는 불일치와 어긋남은 플랫폼 사회가 유토피아적인 가능성과 디스토피아적인 위험을 동시에 내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확진자를 추적하고 관리하기 위해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속도로 개인정보의 수집과 감시가 확산되었다. 코로나 극복에 성공적이라고 자평하는 중국의 모델은 거의 완벽한 플랫폼 기반 데이터 수집과 AI를 이용한 판별 능력에 기반을 둔 감시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경제적으로는 플랫폼 기업이 수요와 공급이라는 양면의 네트워크를 통합하여 전통적인 시장의 영역을 대폭 확장하였지만, 동시에 많은 이용자들이 벗어나기 어려운 록인(lock-in)효과가 강화될수록 독점적인 지배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높인다. 승자독점의 위치를 점한 거대한 플랫폼 기업은 반경쟁적이고 민주주의에 파괴적이며, 국가별 규제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런데 이런 논쟁 이면에는 플랫폼을 독점한 G2국가인 미국이나 중국 간에 격렬한 냉전적 갈등과 자리잡고 있다. 고유한 플랫폼을 소유하지 못한 유럽연합은 데이터 주권의 문제를 매우 심각한 이슈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찾고자 노력한다. 

반면에 한국은 토종 플랫폼 기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산업정책이나 섬세하고 품질높은 규제제도를 갖추지 못한 결과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형 플랫폼사회로 가기 위해 정부는 규제의 불일치를 획기적으로 줄여야 하고, 또한 플랫폼 기업은 재무적 가치 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정당화 전략을 통해 똑똑하고 존경받는 기업으로 발전하여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조직사회학과 위험과 재난의 사회학 전공으로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소장, 미래기획위원회 민간위원 등을 지냈다. 현재 사회적가치연구원 이사,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한국사회과학자료원 원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경제의 사회학』, 『플랫폼 사회가 온다』(공저·엮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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