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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존엄·과학발전은 양립 불가능한가
인간존엄·과학발전은 양립 불가능한가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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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28 15:48:37
발표되자마자 격렬한 찬반 논쟁에 휩싸인 ‘생명윤리기본법’ 시안에 대한 공청회(주최 과학기술부 산하 생명윤리자문위원회, 위원장 진교훈 서울대 교수)가 지난 2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공청회에는 과학계와 종교계, 여성계에서 많은 인원이 참석해 법안의 핵심인 ‘인간 배아복제 금지’와 ‘배아연구 허용범위’등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진교훈 위원장이 발표한 생명윤리기본법 시안은 “모든 생명체의 존엄성을 확보하고 신장시키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삼고”있다. 자문위가 6개월간의 고심 끝에 결론 내린 입장은 생명의 존엄과 윤리를 과학발전 앞에 두는 것이지만, ‘잉여배아 연구의 한시적 허용’등의 조항을 포함시켜 제한된 범위에서 연구가 가능토록 했다. 그러나 과학계는 생명의 비밀을 푸는 열쇠인 배아복제와 연구 없이는 불치병·난치병 치료 등 생명공학의 발전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서정선 서울대 교수(의학)는 “너무 빨리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온 성급한 결론은 아닌가”라면서 “생명공학은 이제 시작단계에 있을 뿐이다. 고통받고 있는 난치병 환자들의 존엄 또한 존중해야 한다”며 배아연구 허용을 주장했다. 이세영 고려대 명예교수(생명공학원)도 “생명공학이 일궈놓은 현실적인 성과를 무시한 채 발견되지도 않은 위험에 지레 겁을 먹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종교계와 여성계에서는 생명윤리기본법안을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였지만 어떤 목적으로도 ‘인간배아연구’를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명확히 했다. 가톨릭대 이동익 신부는 “어떤 이유로든 인간배아를 연구수단으로 상품화시켜 생명의 존엄을 훼손해서는 안된다”는 기본적인 입장과 함께 ‘폐기 직전의 냉동배아 연구 허용’도 더욱 엄격히 제한할 것을 촉구했다. 김상희 여성민우회 대표는 생명 탄생 과정의 결정적 주체인‘여성’의 입장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과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에 일관성이 없음”을 지적했다.

이날 공청회장에는 사안의 중대함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고, 한쪽에서는 동물학대 방지 피켓을 든 여러 단체의 회원들이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인간 생명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꿈의 과학’이라는 믿음과 ‘생명 존엄의 훼손’이라는 비판 속에서 생명공학 방향과 관련된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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