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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내내 입시에 매달려 … 박봉에 폐과 위협
일년 내내 입시에 매달려 … 박봉에 폐과 위협
  • 허영수 기자
  • 승인 2005.03.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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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한계에 처한 교수 사회 ① 학생 모집에 내몰리는 지방대 교수

고등학교 정문 앞을 서성거리며 학생 모집에 나선 교수들의 우울한 표정은 지방대 교수의 현실과 위기를 보여준다. 지방대 교수들이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봉급을 갹출해 학생들에게 현금을 쥐어준다는 게 정설이다. 학생이 부족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지방대 교수들의 생활이 황폐해져가고 있는 것.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는 교수사회가 최근 크게 양극화된 것처럼 보이는 까닭은 교수를 수도권 대학 교수와 지방대 교수로 구분지을 수 있다는 점과 무관치 않다. 비단 지방대 교수 뿐 아니라 비정년트랙 전임교수와 계약제 교수, 국내박사와 기초학문 분야의 교수들이 한계 상황에 놓여 있기도 하다. 지역, 박사수여국, 임용 시기 등에 의해 구별되는 교수사화 문제는 더욱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다. 이번 기획은 나날이 교수사회를 피폐화시키는 현상을 짚어감으로써 한국 대학이 처한 현실과 문제점, 그로 인해 흔들리는 교수들의 초상을 그려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4년제 지방대 보다 학생 모집에 큰 어려움이 없는 서울 소재 2년제 대학을 권하고 싶다." 한 신진학자가 학술연구자포털사이트 하이브레인넷(www.hibrain.net)에 고민하는 글을 올리자 서울 소재 전문대를 권하는 재직 교수들의 답변이 줄을 이었다.

지방대 교수가 된다는 것은 10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다는 것이고, 교수로서도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수도권 대학 교수들과 다르게 연구·교육보다 학생 유치 업무가 제일 중요한 일상사가 될 수 있다는 것.

이는 학령 인구 감소에 상반되게 대응하는 수도권 대학 교수들과 지방대 교수들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강 건너 불'을 바라보듯 수도권 대학 교수들이 학생 부족을 피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면, 지방대 교수들은 이 문제를 가장 큰 현안으로 인식하는 차이를 보였다.

지방대 교수들이 느끼는 위기감의 실체는 분명하다. 학과의 통폐합, 퇴출 공포, 임금 삭감, 학생 모집 강요 등은 '학생 부족'이라는 현상과 늘 궤를 같고 있기 때문이다.

강원지역 대학의 신 아무개 교수는 단적으로 "모집난을 겪고 있는 대학은 교수들이 교육을 잘 하기 보다는 학생 모집 전문가가 되길 원한다"라고 표현했다. 수도권 대학 교수들이 느끼는 위기감과 지방대 교수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그 지점이 현저히 다르다는 것이다.

ㄷ 대학 임 아무개 교수는 "신입생 미충원은 곧 폐과를 의미할 수 있다"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입시와 홍보이고, 다음으로 학생 취업, 그 다음이 연구비 수주, 평가서 작성, 강의, 연구 순인 것 같다"라며 자조적인 목소리를 냈다. 수도권 대학 교수들이 연구와 강의를 첫손으로 꼽는 것과는 유다른 측면이다.

신입생을 유치하고자 하는 각 대학들의 몸부림이 부정적인 방식으로 교수들의 직무와 가치관의 변화를 불러온 것이 사실. 할당된 학생을 모집하기 위해 고교를 방문하거나 전화 홍보를 하는 것은 예사고, 교수들이 스스로 월급을 갹출해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도 다반사로 이뤄지고 있다.

ㄱ대학의 김 아무개 교수는 "돈을 줘서라도 학생을 데리고 와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할 정도로 심각하다"라며 지방대의 어려운 현실을 얘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현재 대학사회는 '지원자전원합격 시대'가 됐다. 그리고 학생이 모자랄수록 교수들의 지위와 영향력은 초라해지면서 부조리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학생 모집 때문에 지방대 교수들의 삶이 파행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해에 전북지역교수협의회가 창립을 선언하면서 교육인적자원부에 가장 우선적으로 건의한 것도 '교수들의 고교대상 직접 입시 홍보 금지'였다.

이 같은 교수들의 노동 과정 변화에 대해 손준종 우석대 교수(교육학)는 "지방 사립대 교수들은 통제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라면서 "다른 대학으로 전직할 기회가 협소한 상황이 교수들로 하여금 다양한 노동통제를 감내하도록 했으며, 교수들을 정서적으로 길들이고, 심각한 정체성 위기를 경험하게 한다"라고 진단했다.

최병두 대구대 교수(지리교육)는 "지방 사립 전문대는 특히 어려워서 극히 낮은 보수와 교사를 방불케 하는 책임시수를 강요받고 있다"라면서 "4년제와 전문대로 크게 양극화된 데다, 수도권과 지방으로 지역 양극화가 점차 진행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방대의 교수들의 위기감이 학생부족과 그에 따른 대학 재정난으로부터 비롯된 것과 달리, 수도권 대학 교수들의 위기감은 사뭇 다른 지점에서 파생되는 양상을 보인다.

대학들마다 앞다퉈 이뤄지고 있는 업적평가·승진기준 강화 흐름이 바로 그것. 학생 모집과는 거리를 둔 한편, 연구 증진을 가능케 하는 대학의 연구 환경·처우 개선 등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업적 평가 방식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는 평가에 따라 연봉의 차등을 심하게 두거나, 교수업적평가제가 승진 기회를 박탈하기 위한 도구로서 사용되기에는 아직 불합리한 구석이 잔존해 있기 때문.

또 SCI 논문을 게재하게 될 경우, 적게는 3백만원에서 많게는 2천만원까지 지원되고 있는 최근 대학가의 분위기는 연구 압박으로 작용했다. 보수·성과급 차별에 따른 위화감 조성, 연구 능력에 따른 교수 계층화 등이 위기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이세영 한신대 교수(국사학)는 "최근에 SCI 논문이 없으면 교수임용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대학까지 생긴 것을 보았는데, 학문 분야 특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없이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것에 문제성을 느낀다"라며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학계에 의미 있는 연구 풍토가 조성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평가 잣대 마련으로 교수사회의 적극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했다.

지난 해에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대학을 옮긴 강 아무개 교수는 "이전 대학에서는 굳이 강요 당하지 않더라도 학생을 모집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느꼈는데, 수도권에서는 그와 달리 연구를 제일 강조하는 것 같다"라며 수도권과 지방의 차이를 설명했다. 문제가 있다면 지금의 대학이 '연구중심대학'이라기 보다는 교육중심대학에 가깝다는 것.

업적평가제도 강화와 관련, 손준종 우석대 교수(교육학)는 "연구문화는 교수사회에 승자와 패자의식을 형성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연구 생산이 높은 교수는 승진 연구비 수혜, 해외연수 기회, 안식년 등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라면서 '연구의 강조'를 교수노동 통제의 핵심 기제로 파악했다.

대학이 교수 개인에게 객과적 기준을 들이대면서 교수들이 자신들에 대한 통제를 수용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또 평가에 의해 학문 활동이 관리·구획지워지는 특성도 지적됐다.

학생 부족 현상, 업적평가제 강화 등 외풍에 의해 교수의 학문 연구와 직무의 자율성이 축소되는 경향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교수로서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라며 고민을 교수들의 토로하는 전경은 우울한 풍경에 다름 아니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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