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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사색과 꿀잠 위해 훌륭한 저녁 식사 필요”
“편안한 사색과 꿀잠 위해 훌륭한 저녁 식사 필요”
  • 김재호
  • 승인 2021.07.12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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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당신을 이어 말한다』 이길보라 지음 | 동아시아 | 276쪽

책 표지를 두르고 있는 띠에 이런 표현이 나온다. “나를 이어 당신도 말하고 글 쓰고 외칠 수 있게 되기를” 생각과 행동에서 침묵을 강요 당하는 세상에서 책의 부제처럼 “잃어버린 말을 되찾고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글쓰기, 말하기, 연대하기”는 매우 중요하다. 

저자 이길보라는 자신을 ‘글을 쓱 영화를 찍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이미 「로드스쿨러」(2008),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4), 「기억의 전쟁」(2018) 세 편을 만든 영화 감독이다. 책도 여러 권 집필한 작가이기도 하다. 서문에서 이길보라 저자는 농인 엄마랑, 동생이랑 옷 가게에 갔다가 낭패를 본 얘기, 택시에서 깜빡 잠이들어 택시기사분의 등골 서늘한 한 마디에 당황했던 일들을 서술했다. 그러면서 왜 그런 폭력이 일어나는지 페미니즘과 장애학 등에 대해서 공부했다. 이길보라는 “‘장애’를 만드는 건 장애인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 사회라는 걸 깨달았다”라고 적었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된 용어는 바로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이다. 코다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녀를 일컫는다”라고 한다. 책은 2016년부터 <한겨레>에 연재했던 글들을 새롭게 써서 출간했다. 이길보라 저자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8개월간 인도, 네팔,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중국, 티베트 등을 다녀왔다. 그동안 받았던 후원금과 펀딩을 통해서다. 모 종이회사 회장으로부터 받았던 후원금을 여행경비에 써도 될지 고민하던 이길보라 저자는 직접 회장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장애인 부모를 돌봐야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이후 그녀의 여행기는 『길은 학교다』(2009)로 출간됐다. 하지만 이 책을 그 회장에게 전달할지 고민만 하다가 시간이 흘렀다. 

장학금 형식으로 받은 후원금을 더 넓에 세계에서의 교육과 경험으로 써보고자 했던 저자 이길보라의 마음은 회장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과연 무엇이 좋은 교육일까? 후원금의 용도는 후원받는 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닐까.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착잡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이길보라 저자는 “부모의 장애를 긍정하고, 수어와 농문화를 받아들이고, ‘장애극복’ 라벨을 떼고, 장애를 해방시켜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몇십 년의 경험을 필요로 했다”라고 밝혔다.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 억압된 사회에 살고 있다. 

영화감독이자 작가, 농인 부모의 자녀로서의 삶

페미니스트이자 코다로서 철저히 본인이 경험하고 느낀 점들이 『당신을 이어 말한다』에 펼쳐진다. 여성가족부 회의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학연을 따지던 누군가를 만났던 일과 심사 과정 일어난 부조리한 사건, 부모님과 함께 농인 관련 영화를 보면서 주고 받은 대화들, 영국의 코다 여름 캠프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들, 초·중등학교 때와 여행 다니며 당했던 성적 폭력들. 생리대 대신 생리컵을 쓰며 느꼈던 해방감, 퀴어버레이드 ‘온라인퀴퍼’에 참여하며 느꼈던 자유로움 등. 책에는 영화 감독으로서 우리가 잘 모르는(?) 많은 영화들이 소개돼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 개인의 경험과 영화가 만나는 지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물론 영화는 개인의 경험들로 탄생한다.    

제3부 <‘필요함’의 목록들> 중 「우리에게 ‘잘 곳’ 아닌 ‘살 곳’을」에선 반가운 책 한 권을 만났다. 집에 가져다놓고, 아직 제대로 읽지 못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1929)다. 버지니아 울프 역시 그렇게 가난했고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자기만의 방’에 적었다. 다음 문장은 큰 울림을 준다. “훌륭한 저녁 식사는 훌륭한 대화를 나누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인이라고, 저녁 식사를 잘 하지 못하면 사색을 잘할 수 없고 사랑도 잘할 수 없으며 잠도 잘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경제적 여건과 팬데믹 상황으로 작은 방에서 홀로 끼니를 떼우는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에겐 혼자 있어도 사색할 여유가 과연 있는 것일까?

이길보라 저자가 보험이나 주식, 병원, 영화제 등 관련 일을 겪으며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느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유학 시절 체류허가증을 받는 순간 주치의를 등록하는 게 필수였다고 한다. 대형 병원에서 몇 마디 듣는 것보다 주치의로부터 자세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게 좋았다고 한다. 네덜란드에선 꼭 공부를 잘해야 의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저자의 여러 에피소드들을 들으니, 계급간 소통, 세대간 소통, 다른 민족과의 소통, 빈자와 부자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소통의 부재가 현재의 여러 위기들을 불러온 것은 아닐까.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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