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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우리 길 찾자”
“대학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우리 길 찾자”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1.05.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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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5-29 17:41:37
영남대 교수협의회(회장 권오중 사학과)가 대학평가제도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지난 10년간의 평가에서 줄줄이 ‘우수’, ‘최우수’ 평가를 받았지만 정작 대학의 형편은 그리 나아진 것이 없다. 성적표대로라면 지금쯤 대학의 위상은 명실상부한 ‘우수’대학으로 탈바꿈했어야 한다. 하지만 평가를 치르면서 ‘한강 이남의 최대 사학’이라 자부했던 대학의 위상은 오히려 흔들리고 있다.”

95년 대교협 대학종합평가 ‘우수’ 인정, 경영·무역학과 ‘최우수’ 인정, 99년 법학과·2000년 재료금속·전자정보공학부 ‘최우수’ 인정, 96년~99년 교육개혁우수대학 4년 연속 선정 등 평가성적으로 따진다면 남부럽지 않은 대학이 왜 이런 시름에 빠졌을까.

영남대 교협이 ‘평가 우수만이 살길인가’주제로 지난 3일 내부 토론회를 벌였다. 좋은 평가결과를 얻기 위해 겉치장에 요란을 떨어야 하는 대학의 입장에서 보면 이 문제의식은 다소 도발적이다. ‘최우수’ 성적을 받기 위해 보고서 작성에만 1억원이 넘는 예산을 쏟아붓는 곳이 생겨나고 있는 형편을 감안하면 줄곧 ‘최우수’를 독식하고 있는 대학의 문제제기는 배부른 고민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 섣부른 예단은 권오중 교협 회장이 행사 모두에서 밝힌 지적에서 불식된다.

"평가를 통해 맞지도 않은 옷을 입기 위해 너무 맹목적으로 달려온 것 아닌지, 우리대학이 진정 지향해야 할 철학과 비전에 대한 고민을 외부기관의 평가에 너무 쉽게 넘겨줘 버린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권 회장의 지적을 해석하자면 평가와 대학발전이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이고, 평가가 오히려 대학의 정체성을 흔들고, 갈 길을 가로막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결과를 받는다 한들 체감할 수 있는 대학발전으로 연결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 이는 평가를 받아본 대학이라면 공감하는 지적이다. 한해 수 차례 예정된 평가를 준비하는 데만 비용과 시간을 소진해 정작 예정된 자기발전계획은 실행에 옮길 여유조차 갖지 못한다는 것이 대학들의 불만이다.

이날 발제와 토론에 나선 영남대 교수들은 대학평가를 진행하는 기관의 평가목적과 평가를 받는 대학의 태도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발제를 맡은 최순돈 교수(재료금속공학부)는 “교육부가 지향해온 대학평가는 획일적인 잣대를 동원해, 기능위주로 평가하고, 제로 섬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이런 평가방식을 따라가다 보니 대학의 정책이 일관성없이 구색맞추기로 흘러가고, 기초·순수학문이 몰락하고 있다”고 평가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재목 교수(인문학부)는 “평가이데올로기는 중앙에 대한 지방사립대의 자생력, 자립의 비전, 독립을 보장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중앙에 대한 지방의 장기적 종속을 고착시키는데 기여해 왔다”며 “한해 예산의 100분의 1도 안되는 국고보조금을 받기 위해 대학의 힘이 너무 소진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타열 교수(토목도시환경공학부)는 최우수 평가를 얻어내기 위해 열중하고 있는 대학운영방식을 집중적으로 성토했다. 그는 “대학경영이 채찍과 당근의 논리에 기반을 둔 평가에 휘둘리면서 대학의 자체적인 발전노력 보다 교육부의 무차별적인 정책 강요에 예속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교수들이 내린 결론은 “평가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우리 갈 길을 찾자”는 것으로 모아졌다. 특히 평가를 평가해 그 손익을 구체적으로 따져봐야 한다는 최재목 교수의 제안은 주목해 볼 만 하다.

그는 “교육부나 중앙으로부터 서서히 독립하기 위해서는 그간의 평가에 대해 자체의 전문가와 외부의 전문기관을 통해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그런 손익계산에서 다른 대학과 차별화 되는 분야와 개혁프로그램을 개발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평가홍수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 대학이라면 영남대 교협의 제안을 새겨봄직하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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