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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론비평_‘학벌사회’를 둘러싼 논란
담론비평_‘학벌사회’를 둘러싼 논란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5.03.07 00:0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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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 ‘묻힌’ 학벌

철학자 김상봉의 ‘학벌사회’(한길사 刊)는 두 겹의 책이다. 한 겹은 학자들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한 겹은 일반인들을 위한 것이다. 이 책에는 별도로 ‘학자들을 위한 서론’이 긴 분량으로 담겨 있는 탓이다. ‘학벌’ 문제가 논의되기 위한 철학적 토대와 우리 학문하기의 관행이 학벌문제를 어떤 식으로 잘못 다뤄왔고 눈감아 왔는지를 그 원인과 현상의 측면에서 문제제기 하고 있는 공격적 서문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 대한 학술논란은 여기에 대답하는 것으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계급론을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이 학벌 문제를 철저히 무시한 까닭은 서양의 계급론 교과서에 학벌이라는 항목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지나치기엔 너무나 강도 높은 비판이다.

이 책에 대한 학계의 여론은 조심스러운 편이다. 대표적인 계급론 연구자이자 최근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을유문화사 刊)이란 책을 펴낸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한국에서 학벌은 계급지위를 얻는 주요한 수단”이라며 김상봉의 책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이지만 단편적 논문만 나왔을 뿐인 학벌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뤘다”라고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신 교수는 학벌과 계급이 별개가 아니라 서로 순차적으로 연결된 개념이라는 지적으로 한발짝 비켜선다. 남춘호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우리 사회에 학벌문제가 제기된 배경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사무직과 생산직의 높은 수준의 임금격차”와 1960~70년대에 각 분야에 전문지식을 갖춘 인재가 없어 “차선책으로 일반적 인지능력이 높은 사람을 뽑자”는 식으로 학벌을 인재등용의 기준으로 삼았던 관행이 사회권력화되면서 학벌사회론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남 교수는 “김상봉의 책은 모호했던 학벌을 학문적으로 개념화시킨 것”이라고 그 의의를 평가한다.

사회학자들의 이런 우호적인 반응에 비해 계간 ‘창작과비평’ 봄호에 발표된 조순경 이화여대 교수(여성학)의 논평은 정면으로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조 교수는 ‘학벌사회’가 강준만 교수의 ‘서울대의 나라’(개마고원 刊)의 재판 버전이며 서울대를 학벌 차별의 유일한 현상으로 환원한 것은 문제라고 말한다. 그리고 학벌의 사회적 존재를 설명할 뿐 학벌로 인한 실질적인 차별이 어떻게 발생하는 지에 대한 사회학적인 조사가 되지 않아 ‘추정’만 있지 ‘증거’가 없다는 점, 학벌에 ‘올인’하면서 ‘학력’ 차별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비판을 가했다. 이런 비판에 대해 저자 김상봉 씨는 “서울대가 학벌의 하나의 전형이기에 타겟으로 삼은 것이지 다른 대학에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며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오해에 가까운 논평”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책세상 刊)로 대학서열체제 해체를 주장하는 정진상 경상대 교수(사회학) 또한 “사회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하지 않더라도, 학벌차별은 일상적으로 느끼는 것이며 학력차별은 학벌차별이라는 것의 내부에 존재하는 문제”라며 조 교수의 지적이 과도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렇듯 조 교수의 논평은 ‘학벌사회’의 근원적 문제제기에 가닿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즉 ‘차별’ 문제를 분과학문적으로 다루는 ‘여성학자’의 전공을 발휘하다보니 책의 미덕 중의 하나인 “학벌이 현대사회에서 가족과 문중의 기능을 대신한다는 통찰, 왜곡된 공동주체성 속에 개인주체성을 희생시키는 기제이며, 무엇보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자신의 사회적 주체성을 확립하는 하나의 전형적인 방식”이라는 것을 음미하지 못했다.

좀더 본질적으로 보자면 조 교수의 이번 서평은 ‘과학적인 정합성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경험에 토대한, 그리고 인문학적으로 때때로는 문학적으로 확장되기도 하는 사회에 대한 감각과 통찰’에 대해서 학계가 너무 인색하다는 인상을 준다.

전공의 ‘홈그라운드’에서 나와 ‘평원’에서 보자면 김상봉의 ‘학벌사회’는 서양철학의 주체성 확립의 방법인 ‘홀로주체성’을 ‘형이상학적인’ 차원에서 극복하기 위해 제시된 김상봉 고유의 ‘서로주체성’ 개념을 학벌이라는 한국 특유의 주체성 형성을 파악하는 기본적인 인식틀로 가져오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설득력이 있는가의 차원에서 논의를 전개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온지 한참 지났지만 아직 ‘학자들을 위한 서론’조차 관련 학계에 제대로 읽히지 않고 있어 뚜렷한 의견들을 들을 수 없었다는 점은 ‘양질’의 학술쟁점을 놓치는 것 같아 아쉬움을 남긴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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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2005-03-27 00:54:59
서울대 등을 졸업한 후 미국유학가서,
미국대학 박사소지 교수들에게 묻힌 '학벌'이 문제가 아닐까요!?


서울대등은 미국대학 유학을 위한 준비예과 과정이 아닐까요?!
'연구중심 대학'이라고 말들하지만,진실은 다르지 않습니까?!

서울대 등
국내대학의 학부과정은,외국대학으로 유학을 가기위한 준비과정/연습과정 정도가 된지 오래입니다.

미국박사 학위증 '학벌'등 "외국박사 학위 소지자"가 아니면
대학 등 전문지식인 사회의 자격이 없습니다.


국내 대학원의 연구부실 및 "국산박사의 질"을 떨어 뜨린것은 결국에는,서울대 출신,미국대학 박사학위 소지한 서울대 교수 패거리들 입니다.

말은 제대로 바르게 합시다.
솔직해야 하지 않습니까?!

교육계 2005-03-27 00:47:20
전문분야의 지식인이 부족했던 1960년~70년,80대년 이전에 "지적인지 능력"이 있다는 대학 졸업장 들을 여기저기에서 사용했고,그들은 임원이상으로 재직중 사망/은퇴중이며,그 후배들은 현재 기업의 임원급이상으로 물질주의를 풍미케 했다.

또한,박사학위 소지자가 부족했던 1980년대 이전까지의 대학들은 전임교원으로 석사증 소지한 자들을 전임강사로 임용했는데,그들 패거리들은 현재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그 당시,미국박사 소지자들은 무조건 대학 조교수급으로 특혜를 주었으니,현재 "총체적 미국화"현상,대학원 부실,국산박사과정의 질적 하락,미국유학을 위한 한국대학의 전락등을 가져 왔다.

정말로 큰 일 입니다.

게스트 2005-03-23 14:10:17
서울대의 어느 강사 왈 "서울대 박사도 다 교수 못되는 판인데, 다른 지방대들 다 박사과정 없애라!'라는 끔찍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지난번 서울대 강사의 자살 사건에 대한 리플이다-.
엘리트는 필요하나 엘리트의식 없는 서울대는 필요치 않다.

개밥 2005-03-10 16:43:08
딴 말이 필요없겠군요. 이 기자님 의견에 공감하면서,
"학벌"에 대해 제대로 논쟁하지 못하는 것은
결국 그 학벌의 혜택을 입고 있는 것이
우리 '학자'들이라는 데에 또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