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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준 교수 “우리가 알던 마르크스 사상은 원본이 아니었다”
강신준 교수 “우리가 알던 마르크스 사상은 원본이 아니었다”
  • 김재호
  • 승인 2021.07.14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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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엥겔스 전집(MEGA) 번역 이끄는
강신준 동아대 경제학과 특임교수 인터뷰

 

“메가, 고전사상에 접근하는 모범”

“그림이나 문학 위작 논란처럼 학술 저작도 정본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지난 9일 <교수신문>과 인터뷰한 강신준 동아대 특임교수(경제학과)는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그는 최근 마르크스-엥겔스의 유일한 정본 전집 ‘신(新) MEGA(Marx-Engels Gesamtausgabe, 이하 메가)의 첫 번째 성과물을 두 권으로 출간했다. 강 교수는 메가 한국어판 『잉여가치론 1』(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1861~63년 초고 제2분책)을 번역했다. 흔히 『자본』제4권으로 알려진 『잉여가치론』의 제1권이 여기에 해당한다. 

 강신준 동아대 특임교수(맑스 엥겔스 연구소 소장)는 인터뷰를 통해 학술연구에서는 문헌적 인식과 위작에 대한 예민한 반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진=김재호

이 기나긴 여정의 중심에 바로 강 교수가 있다. 강 교수는 같은 학과에서 오랫동안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동아대 맑스 엥겔스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강 교수는 “학술연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문헌적 인식과 위작에 대한 예민한 관심이 요구된다”라고 말했다. 정본의 중요성을 인식한 건 故 정문길 고려대 명예교수(행정학과)의 가르침과 탄식으로부터다. 강 교수는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라는 위상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학술문헌에 대한 낮은 관심이 아쉽다”라며 “일본이 많이 가지고 있는 마르크스의 자필 증정본, 정본, 필사본이 우리에겐 하나도 없다”라고 밝혔다. 

그래서 그는 “‘서양고전번역원’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번역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필진들이 많고,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서양 사상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번역이 가능할 것”이라며 “앞으로 물리적 노동을 인공지능이 한다면, 인간에게 남는 영역은 인문사회다”라고 강조했다. 토대를 갖춰야 인공지능 이후를 대비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어판 총 17권 도서출판 길과 판권 계약 주도
한국연구재단 지원과 후원회원 도움으로 번역 가능

 
인터뷰 한 날, 강 교수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하 보건의료노조)에서 한 달 동안 진행해온 마르크스 『자본』강의를 마쳤다. 그는 산별노조 운동의 정당성, 이론적 목표와 전술 등에 대해 총 8회 강의했다. 강 교수는 “식민지 직후에 ‘전국노동조합평의회’이라는 산별노조가 있었다”라며 “그 이후 정치적 소용돌이와 노동법 개악으로 계급적 노동운동의 산별노조 대신 기업별 노조가 들어섰다”라고 설명했다. 유럽만 해도 산별노조가 사회적 표준협약을 체결하여 노동자 차별, 특히 비정규직 차별이 드물다.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설립된 대표적인 산별노조가 바로 보건의료노조다. 

“노동자 자신이 변혁을 주도해야 한다.” 강 교수는 『자본』에 담긴 함의를 이렇게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사회변혁을 위해선 경제적 토대와 정치적 상부 구조를 동시에 바꿔야 한다”라며 “노동조합이 경제적 토대, 노동자정당이 정치적 상부구조 변혁을 이끌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산별노조는 취업준비생, 해고자, 은퇴자 등도 모두 조합원으로 포괄하여 명실상부한 임노동자의 계급적 이해를 사회 전체에서 대변한다. 

 

노동자가 직접 바꿔나가는 경제와 정치

1999년, 2005년 영국의 <BBC>는 청취자 투표를 통해 각각 ‘지난 1천 년 동안 가장 위대한 사상가’,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철학자’로 칼 마르크스(1818~1883)를 선정한 바 있다. 2013년 유네스코는 마르크스의 자필 원고 2개를 “인류의 기록유산”으로 정했다. 그만큼 중요한 위상을 갖는 마르크스 엥겔스이지만 우리가 학습한 내용은 정본이 아니었다. 강 교수는 “발췌·출처 불명, 무원칙한 편집, 우연적이고 개별적인 출판 등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마르크스는 레닌-스탈린주의에 의해서 걸러진 것들”이라며 “역사적 유물론의 요체가 담겨 있는 『독일 이데올로기』(1932) 역시 스탈린주의에 의해서 조작됐다”고 말했다. 이 책의 원래 원고는 단행본이 아니라 저널에 쓰인 것들이다. 그 당시 출판에 관여한 소련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가 어떤 의도를 담았는지는 메가 정본에 의해서 드러날 수 있다. 아울러, 강 교수는 “지금까지 마르크스 엥겔스 사상이 신용·금융이론에는 약하다는 게 정설로 여겨졌지만 일본의 메가 연구 대가인 오오타니교수는 마르크스의 화폐론을 재구성해 냈다”라며 “앞으로 메가가 모두 출간된다면 마르크스 엥겔스의 새로운 면모와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0년 국제 마르크스 엥겔스 재단이 암스테르담에 설립되어 메가의 전체 114권 중에 69권을 출간했다. 국내에선 도서출판 길과 함께, 강 교수가 주도적으로 한국어판 판권을 계약했다. 2012년 8권, 2018년 9권 총 17권이다. 나머지 작업들이 이어지기 위해선 후학들이 함께 참여해야 하는 사정이다. 그런데 번역 작업에는 오랜 시간과 매우 강도 높은 수고가 들어가지만 교수업적에는 잘 반영되지 못한다. 논문 1편과 동일한 성과로 간주된다. 강 교수는 “교수들의 성과물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공을 들였는지 정성적 평가가 반영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마르크스 엥겔스의 사상이 현재 대학생인 'MZ세대‘에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강 교수는 “메가 자체가 보여주는 건 고전 사상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모범을 보이는 것”이라며 “외국에선 마르크스를 만화로 소개해주는 등 작가들의 창의성으로 대중에게 전달되기도 한다”라고 답했다. 고전 사상에 접근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건 그 자체가 바로 진리를 찾아가는 길인 셈이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산발적인 유행들만 난무하는 시대에 진짜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선 메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조작되고 조악한 편집으로 출판된 마르크스 사상 

이번 메가 한국어판 작업에는 많은 후원회원들이 있었다. 강 교수에 따르면, 후원회원 중 어떤 이는 2013년부터 매월 70만 원을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강 교수는 “기업가들이나 정치 관계자들은 자칫 마르크스 엥겔스 번역에 후원했다가 피해를 입을지 여전히 조심하고 있다”라며 “2018년 한국연구재단 토대연구지원사업으로 조금의 진전을 이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후원 문의는 동아대 맑스 엥겔스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강 교수는 국내 큰 도서관들에 메가 원본 자체가 없어 직접 책을 사와야 했다. 메가 한국어판을 위한 작업에 학술, 출판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 강 교수는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얘기도 전해줬다. 바로 마르크스의 친필로 된 원고가 경매로 고가에 팔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재작년 어떤 원고 1장이 중국에서 치러진 경매에서 6억원 원 정도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상승하고 있다. 속으로 암호화폐보다 마르크스의 자필 원고에 투자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국내에 번역된 마르크스 엥겔스 사상은 중역이 많았고, 출판편집도 조악해 정본에 대한 번역이 필요한 실정이다. 사진=김재호

 

“걸러지고, 조작된 ‘마르크스 엥겔스’ 사상을 바로 세우다”

강 교수는 ‘MEGA 한국어판의 출판에 부쳐’에서 “기껏해야 30년도 채 활동하기 어려운 인간이 수천 년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세대와 세대가 서로 손을 맞잡아 ‘우리’를 이루어 개인의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담긴 역사적 개념이다”라며 후원회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또한 그는 “오늘이 끝이 아니라 내일의 시작이라는 사실, 그리하여 항상 오늘 속에서 미래를 함께 보는 시선이야말로 야만에서 문명으로 넘어가는 지평이다”라고 적었다. 

마르크스는 자기 이론을 왜곡돼 사용되는 걸 보면서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고 했다. 그의 사상은 그가 직접 남긴 원고에 담겨 있을 테고, 그 원고를 가감없이 그대로 복원하는 메가의 출판은 온전한 마르크스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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