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08-18 17:31 (목)
진정으로 인문학을 살리는 길
진정으로 인문학을 살리는 길
  • 이덕환
  • 승인 2021.07.12 09: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학정론_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논설위원(서강대 명예교수)

정부가 인문·사회의 기초학술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문학의 중요성은 너무나도 당위적인 것이다. 그러나 법을 제정하고, 국가기구를 만들고,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인문학은 모름지기 이념·사상·종교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오랜 고민이 담겨있지 않다. 분열과 갈등에 시달리는 우리 현실에서는 학문의 자유가 더욱 강조되어야만 한다.

정부가 과학기술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과학기술 관련 법률이 24종에 이르고, 대통령이 의장을 맡는 과학기술자문회의가 있고, 과학기술 투자를 전담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있고, 27조 원이 넘는 국가연구개발 사업도 대부분 과학기술에 집중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정부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마냥 부러워할 수는 없다. 정부의 입장에서 과학기술을 온전하게 국가의 경제 성장에 필요한 산업화 기술을 창출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헌법 제127조에 따르면,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

인문학자들이 부러워하는 컨트롤타워도 과학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학자들에게 기술 개발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고, 연구개발 투자의 효율을 향상시키고, 행정 관리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사실은 과학자가 아니라 경직된 관료들을 위한 제도라는 뜻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정부의 엄격한 관리에 시달려왔던 과학자들의 현실은 안타까운 것이다. 톱다운으로 결정된 연구개발 정책의 틀 안에서 관료화된 통제에 꼼짝없이 포획되어 버렸다. 심지어 경직된 연구윤리가 멀쩡한 과학자들을 범죄자로 전락시키는 일도 다반사다. 그런 과학자들에게 창의와 자율은 그림의 떡이다.

정부 주도의 이념화·관료화의 부작용은 인문학자들에게도 낯선 것이 아니다. 정부가 떠들썩하게 밀어붙였던 ‘문화융성’이나 ‘인문정신문화’에 영혼을 빼앗겼던 아픈 경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적지 않은 재정 지원으로 달콤했던 BK21·HK·SSK·CORE·ACE·CK의 성과에 대한 거시적인 반성도 필요하다. 보수도 낮고, 미래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비정년 교수직의 증가는 절대 자랑거리일 수 없다. 투자는 하더라도 간섭을 하지 말아달라는 요구는 비현실적인 것이다.

인문학이 ‘추상적인 정신문화’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국제적 변화’와 ‘과학기술의 한계’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조심스러운 것이다. 화려한 관료주의적 수사를 앞세운 세계화·세속화의 미몽도 경계해야 한다. 인문학이 강조하는 ‘과학기술의 한계’도 어쭙잖은 것이다. 

무엇보다 스스로 만들어낸 억지 권위주의와 카더라·길거리 인문학의 현실을 획기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현대 과학에 대한 근본적으로 새로운 인식도 필요하다. 오래전에 폐기된 세계관·우주관·생명관을 고집하는 낡은 인문학은 설 자리가 없다. 이념적으로 편향된 내로남불식 포퓰리즘에 빠져버린 정부·정치에 의존한 인문학 부활은 환상일 뿐이다. 돈과 권력보다 학문의 자유를 지키는 일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덕환 논설위원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