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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그리 멀지 않은 철학
현실과 그리 멀지 않은 철학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21.07.15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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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정세근 충북대 교수(철학)
정세근 충북대 교수(철학)

이 난의 원고 청탁에는 요구사항이 많다. 연구의 한계와 성취, 현실과의 괴리감, 다른 전공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써달란다. 시사 칼럼이나 단순한 전공 소개가 되지 않도록 하란다. 충성! 

연구의 한계라기보다는 연구자의 한계지만, 철학자는 ‘하라는 이야기는 안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기 좋아한다’는 것이다. 학술회의의 주제가 있는 데도 거기에 집중하기보다는 자기 말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다. 기획 의도와 어긋나는 데도 ‘교수님께서 이렇게 발표하시겠다’는데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주제에 충실히 하고자 한 교수가 오히려 밑지는 경우가 생긴다. ‘정의’, ‘불평등’, ‘과정의 공정성’, ‘의무’, ‘인권’ 등의 현대적 개념이 개입될 때 교수 간의 발표 격차는 더욱 심해진다. 학문 격차가 결코 아니다! 주제에 충실한 사람이 오히려 격차를 보인다. 왜? 잘하는 분야가 아니라, 잘해야 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전문성이지만 자칫하면 ‘역시 철학하는 사람들은 엉뚱해’로 끝날까 걱정이다. 

철학의 성취는 세상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철학의 본령이다. 그런 점에서 자부심도 있고 공부도 재밌다. 술 먹을 때 다른 전공자들이 뜬금없이 ‘그래, 철학자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어온다. 말이 없으면 ‘그래, 철학자는 말이 없잖아!’라며 까닭 없이 잘난 척을 부추긴다. 정말 모르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대한민국에 철학이 없어서 이 꼴이다’라고 노상 떠들면서 정작 철학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잘 나가는 공대 교수들도 ‘철학이 필요해’라고 떠들면서도, 철학 교수들에게는 조금도 도움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힘든 일을 해야 하긴 하는데, 그건 네가 해’라는 말로 들린다. 청소는 해야겠는데, 나는 하기 싫으니 남보고 하라는 세태다. 

현실과의 괴리감은 철학이 가장 클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나는 철학이야말로 현실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철학일 수 없다고 떠든다. 어떤 철학자도 현실로부터 문제를 찾아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이를테면 공자는 ‘예악(禮樂)의 붕괴’로부터, 소크라테스는 ‘상대주의의 도전’으로부터 자신의 길을 찾는다. 그렇다고 해서 철학자들이 ‘현실 문제’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래서 철학자들의 관심을 ‘문제 현실’이라고 부른다. 칸트의 예를 들어보라고? 칸트는 흄이 제시한 경험론의 사고로부터 ‘독단의 꿈’에서 깨었다고 '순수이성비판' 앞머리에 쓰고, 오늘날의 UN과 비슷한 국제연맹을 제창하여 ‘영구평화론’을 쓰며, 나아가 일본에 유럽인들이 개항을 강요하는 것을 비난한다. 칸트를 보고 동네 사람들이 시계를 맞췄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동네 밖으로 안 나갔다고 해서 그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는 매일 밤 여러 사람과 술을 마셨다. 나처럼. 

괴리감은 오히려 전공 속에서 느껴진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 고대와 현대와의 차이, 분석과 종합의 차이, 고문과 시쳇말과의 차이, 여러 외국어의 차이 등이다. 그리스, 독일, 프랑스, 영미, 중국, 그리고 한국철학의 차이도 한몫을 한다. 한국도 유가, 도가, 불가 이렇게 나뉜다. 나아가, 순수와 참여의 괴리, 이론과 실천의 괴리, 강단 철학과 실제 철학의 괴리, 그들의 문제와 내 문제의 괴리를 생각하면 참담해진다. 

나의 경우, 다른 전공과 나눌 이야기가 참으로 많다. 대학에 있으면서 좋은 점은 전화 한 통이면 웬만한 물음이 풀린다는 것이다. 전공에 따라 개념의 용법이 다르지만 그들의 맥락을 근처에서 알 수 있어서 좋다. 이를테면 인문사회는 기능(機能: function), 생물학에서는 기작(機作: mechanism), 의학에서는 (발병) 기전(機轉: pathogenesis)이라는 말을 비슷한 뜻으로 쓰는 것도 느낀다. 의사 동료에게 ‘기능론적 장애’가 뭐냐고 물었더니 ‘의사가 잘 모를 때 쓰는 말’이란다. 병인을 잘 모르지만 아프긴 아픈 것이란다. 

늘 느끼지만 교수될 만해서 교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교수 노릇하다 보니 교수가 된다. 나만 그런가?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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