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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은 사회적 금기를 넘어도 좋은가
학문은 사회적 금기를 넘어도 좋은가
  • 박강수
  • 승인 2021.07.12 09: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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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충’의 발생학」 논란, 쟁점 정리

① ‘보이루’ 각주 수정한 철학연구회의 대처는 적절했나
② ‘한국남성성’에 대한 논증 방식은 엄밀했나
③ 혐오 표현을 동원한 논의가 학문의 이름으로 허용될 수 있는가

 

 

「’관음충’의 발생학: 한국남성성의 불완전변태과정의 추이에 대한 신물질주의적 분석」은 윤지선 세종대 초빙교수(철학)의 논문이다. 2019년 5월 학술대회에서 발표됐고 같은 해 12월 철학연구회의 학회지 『철학연구』 127호에 게재됐다. ‘한국남성집단을 곤충 군집체에 빗대 내부의 성장 매커니즘을 들여다봄으로써 한국의 디지털 성범죄와 그 가해자들이 갖는 특징을 분석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논문이 사회적 논란으로 점화된 것은 올해 2월부터다. 유튜버 보겸이 명예훼손 혐의를 제기하며 시작된 사태는 이후 당사자와 유튜버, 언론, 학자, 국회의원의 말을 타고 전방위로 번졌다. 참고문헌 누락 등 논문 형식의 부실함, 내용의 혐오적 성격에 대한 문제제기에 이어 저자인 윤 교수를 노린 ‘온라인 강의 난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논문 바깥의 상황이 논문 속 내용에 대한 논의를 덮어버리는 상황이다.

관련해 <교수신문>은 지난 두 달여간 네 편의 글을 실었다. 이충진 한성대 교수(철학)비판이 두 편, 다시 윤지선 교수의 반박이 두 편이다. 이 교수의 글은 한국 철학계가 이 사안에 공식적으로 반응한 최초의 비판이라는 점에서, 윤 교수의 글은 그간 트위터 등을 통해 단절적으로 전해지던 당사자의 해명을 종합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공방의 쟁점을 정리했다. 각각의 글 원문은 <교수신문>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보이루’ 각주 수정과 철학연구회의 책임

명예훼손 지적이 일자 각주를 수정한 철학연구회와 윤 교수의 대처가 적절했는지에 대한 공방이다. 문제의 18번 각주는 ‘보이루’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으로, 이 유행어가 유튜버 보겸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혐오표현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철학연구회는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표현하기” 위해 ‘보이루’는 당초 여성혐오와는 관계없이 만들어진 보겸의 인사말이었는데 이후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여성혐오용어로 전용됐다는 식의 서술을 추가했다.

이충진 교수는 이 같은 대처가 미흡했다고 본다. 이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수정된 각주를 읽은 사람들도 ‘보겸이 여성혐오용어를 만들었구나’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논리적으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일상적∙자연적 사유의 진행이 그렇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런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보겸은 피해를 입게 될 것이고, 일반 대중의 비논리성을 핑계 삼아 철학연구회의 불철저함이 면책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해당 표현을 삭제했어야 하고 이제 와서는 법적 판단, 사회적 논쟁과 무관하게 당사자에게 공개 사과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윤지선 교수는 “철학연구회가 보겸에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피해의 책임은 각주에 대한 왜곡된 해석을 대중에 전파하며 보겸을 여성혐오자로 오인하게 한 일부 유튜버에게 있지, 의미를 명료하게 수정한 학회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울러 윤 교수는 “일부 남성커뮤니티 집단에서는 ‘공식사과’를 쾌거의 기록으로 수집하는 문화가 있다”면서 “’남성혐오 낙인’이라는 검열기제로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어떠한 합리적 근거 없이도 사과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일부 남성들의 권능감이 한국사회에 파시즘처럼 퍼져 있다”고 되받는다.

 

이충진 한성대 교수. 독일 마부르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칸트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행복 철학』(2020), 『세월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2015), 『이성과 권리』(2000) 등 책을 썼다.
이충진 한성대 교수. 독일 마부르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칸트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행복 철학』(2020), 『세월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2015), 『이성과 권리』(2000) 등 책을 썼다.

 

2. ‘한국남성성’에 대한 논증 방식은 엄밀했나

논문의 핵심 논지 중 하나는 ‘한국의 특수한 남성성이 한국 특유의 디지털 성범죄를 낳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어린 남자 아이들은 한국 특유의 남성성을 내재화하면서 성차별적 성인남성으로 성장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한국남성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법촬영물과 여성혐오컨텐츠에 대한 노출, 이에 기반한 성적 비하와 조롱의 문화 등이다. 이 같은 주장이 적절한 근거와 논리적 체계를 통해 충분히 입증되고 있는가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이충진 교수는 논증의 핵심부가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디지털 성착취는 한국남성성의 특수한 현상’이라는 주장을 논증하는 방법은 “다른 사회와의 비교 연구뿐인데 논문에서는 그런 연구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윤 교수의) 논의는 귀납논증”이라며 “한국적 특수성은 전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논문 속에서) 입증되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한다. 즉, “디지털 성착취가 한국남자에게서는 발견되지만, 대부분의 비-한국남자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가설을 입증하는 내용”이 들어갔어야 한다는 것이다.

윤지선 교수는 분석 자체가 근거라고 반박한다. 윤 교수는 “디지털 성착취 시스템이 한국사회에서 집중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이미 해외 유수의 미디어를 통해 드러났다. N번방 사건 등은 이를 입증하는 사례다”라고 말한다. 그간의 디지털 성범죄 보도를 통해 한국적 특수성은 충분히 설명된다는 입장이다. 또 그는 “이미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디지털 성착취 가해자 발생의 매커니즘을 분석하려면 한국남성이 아닌 비-한국남성을 먼저 입증해야 한다는 것은 엉뚱한 주장”이라며 “연구의 필요성을 거세시키려 한다”고 반발했다.

 

윤지선 세종대 초빙교수.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현대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천개의 고원' 용어분석론」, 「가부장제 의미경제 구조분석을 통한 인공 임신중절 담론 재고찰」, 「디지털 성범죄 시스템의 형이상학적 분쇄도」 등 논문을 쓰고 『철학자의 서재3』, 『탈코르셋 선언』 등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윤지선 세종대 초빙교수.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현대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천개의 고원' 용어분석론」, 「가부장제 의미경제 구조분석을 통한 인공 임신중절 담론 재고찰」, 「디지털 성범죄 시스템의 형이상학적 분쇄도」 등 논문을 쓰고 『철학자의 서재3』, 『탈코르셋 선언』 등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다.

 

3. 혐오 표현을 동원한 논의가 학문의 이름으로 허용될 수 있는가

사실상 논란의 핵심이다. 해당 논문에서는 제목의 ‘관음충’을 비롯해 ‘한남유충’, ‘한남충’ 등 한국남성에 대한 비하 용어가 논의의 중심 재료로 등장한다. 연구 대상을 곤충에 빗댔기 때문에 연구 방법론도 생물학의 형식(발생학)을 취하고 있다. 이 방법론에 대한 비판은 김우재 중국 하얼빈공대 생명과학연구센터 교수를 통해 이미 몇 차례 이루어졌다. 결국 관건은 철학 연구에 생물학 개념을 동원할 만큼 ‘~충’이라는 표현이 필요했는가에 대한 문제다.

이충진 교수는 “’한남유충’, ‘한남충’, ‘관음충’ 등은 ‘지금 여기’ 사회의 금기를 한참 벗어난 혐오 표현이며 이런 표현을 사용한 논의는 혐오의 논의”라고 일축한다. “일기장이나 술집에서라면 모를까 학술논문이나 신문에서는 결코 등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혐오 용어를 학술지에 사용해도 좋은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방법은 한국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경험적 조사뿐이다. 만일 학회구성원들은 허용하는데 사회구성원이 허용하지 않는다면 학자들은 사회로부터 주어지는 불이익을 감내하고 (학문적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덧붙인다.

반면 윤지선 교수는 이 표현들이 “특정인을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고 연구를 위해 “전략적으로 배치된 유비적인 분석용어”라고 설명한다. 그 전략적 효과란 “(기존의) 여성혐오 용어에 대한 소수자들의 반격, 그리고 여성성 착취 범죄에 대한 엄중한 중지 요구” 등이다. ‘한남유충·한남충·관음충’은 피기득권의 시스템에 대한 분노가 투영된 전략적 개념이기 때문에 사용해도 좋다는 주장이다. 윤 교수는 “몇몇 분석용어 논란으로 전체 내용을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벗어나 연구주제와 목적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봐달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충’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이유는 논문 외부에 놓여 있는 비학문적-사회적 지향점 때문”이라며 “혐오 용어 사용이 효과적 수단이기 때문에 ‘한남유충’ 등의 용어 사용이 허용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그러면서 “논문의 목적은 논자가 논문 안에서 명시적으로 표기할 대상이지 독자가 행간을 뒤져서 읽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학문의 장을 사회 개혁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지만 학문 외적인 목적을 학문적 평가와 연계시키는 것은 학자의 세계에서 결코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박강수 기자 pp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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